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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좌에서 극우까지 프랑스 대선이 보여준 정치의 다양성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여러 정치적 의견과 정파가 공존
극우 약진에도 중도 마크롱에 패
세금·정년 논쟁 극우·극좌 포퓰리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가운데)과 이에 맞서는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오른쪽) 국민연합(RN) 프랑스 대선 후보, 극좌 성향의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 프랑스(LFI) 후보의 공보물. [로이터=연합뉴스]
 
대통령 중심제의 프랑스 제5공화국(1959년~)을 세우고 1959~69년 대통령을 지낸 샤를 드골(1890~1970년)은 프랑스의 정치에 대해 인상적인 말을 여럿 남겼다.
 
“정치는 지나치게 중요해서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결론이 이르렀다.”
 
지금도 자주 회자하는 이 말은 정치적인 담론 형성과 정책 실천놀에서 시민의 참여와 적극적인 투표, 정치에 대한 언론과 시민사회, 그리고 사법당국의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정치적인 입장과 사안에 따라 다양하게 이용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정치에 대한 허무주의를 부른다는 지적도 있는 발언이다.
 

극우에서 극좌까지 모든 정파가 대선 후보 낸 프랑스 정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달 24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재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 앞에서 양쪽 엄지를 치켜세워 자축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치인들은 자신의 말을 스스로 믿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는 것을 보면 놀란다.”
 
이 말은 정치인의 고질적인 거짓말과 말 뒤집기에 대한 비판이 기본이다. 이와 함께 선거 때만 되면 등장했다가 그 직후엔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일쑤인 과도하고 과장되며, 실현 가능성이 낮은 약속과 허풍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정치인들이 대중에게 마구 해대는 유토피아적인 약속과 발언의 허황됨과 허무함에 대한 야유다. 선거 때만 돌아오면 달콤한 말로 유권자의 표를 구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돌아서서 국민이나 공동체가 아닌 개인이나 파당의 이익을 구하기에 골몰하는 정치인들의 세태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4월 10일 1차 투표를, 24일 결선 투표를 치른 2022년 프랑스 대선을 보면 드골의 말이 시대를 넘어 여전히 영감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46가지의 치즈가 있는 나라를 운영하는 게 어떨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샤를 드골의 이 발언은 프랑스 국민이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로 자주 인용돼왔다. 한국에선 ‘1000가지 김치를 만들어 먹는 국민을 설득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는 말로 변형돼 유통되기도 했다.
 
생각이 다양할 뿐 아니라 그 범위가 극과 극이고,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며, 때론 충돌까지 하는 국민을 이끄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표현한다. 정치 고유의 고충과 프랑스 내정의 전통적인 어려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이번 대선은 프랑스가 참으로 다양한 정치적인 의견과 정파가 공존하는 사회임을 잘 보여줬다. 극우에서 극좌까지 거의 모든 정파가 고루 데선 1차 투표에 후보를 냈다. 극우에선 마린 르펜 후보와 에릭 제무르 후보가 나란히 나왔다. 한 가지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이들은 결코 합당하거나 후보 단일화 같은 정치 공학적인 공작에 나서지 않았다.
 
극좌에선 장 뤼크 멜랑숑 후보가 출마해 중도 좌파와 다른 생각을 하는 좌파가 있음을 보여준 것은 물론이고 1차 투표에서 700만 명 이상의 지지로 22.00%를 득표해 3위에 올랐다. 중도좌파가 표방하는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옛 공산당이 내세운 민주사회주의, 좌파 포퓰리즘, 환경 사회주의, 대안 글로벌리즘, 유럽통합 회의주의, 좌익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전통의 중도 좌파 정당이 긁어주지 못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셈이다.
 
거기에 환경을 최우선시하는 환경주의자에, 농민의 이익을 전면에 두고 거기에 일부 노동자의 이익을 강조하는 후보까지 등장했다. 그야말로 백 가지 말이 난무하고, 백 가지 꽃이 피는 형국이다.
 
유권자는 그야말로 자신의 말을 대신 해주는 정치인, 자신의 하고 싶은 정책을 내세우는 후보를 지지하면 된다. 정치 공급이 국민의 수요를 충당한 셈이다. 나와 생각이 맞는 정치인은 없고, 하나같이 답답한 소리만 한다는 비난이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후보가 대선에 등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득표율이나 당선 가능성, 후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누가 주류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다른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거나 정당까지 합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내 표를 갉아먹어서 나의 당선을 막는다며 상대를 비난할 일이란 더더욱 있을 수가 없다.
 
생각이 다르면 따로 정치하는 건 프랑스 정치에선 상식이다. 서로 약간의 생각이나 정책 차이만 있으면 따로 출마해서 국민의 선택이나 심판을 받는 것이 일반화한 셈이다. 246가지 치즈를 먹는 국민을 대하는 정치권의 자세다. 건전한 경쟁, 합리적이고 공정한 정치적 대결의 자세가 아닐 수 없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는 이런 다양성 때문에 부러움을 살 수밖에 없다.
 

분열로 1위 놓친 극우, 1차 투표 100만표도 못 얻은 중도좌파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 프랑스 대통령 후보가 이달 24일 프랑스 파리의 파빌리온 다르메농빌에서 열린 프랑스 대선 2차 투표 결과에 대한 1차 여론조사 결과 발표 후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또 하나 눈여겨 볼 점은 결선 투표에서 보여준 극우파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생각이다. 드골은 일찍이 이성적이고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애국주의와 극우들이 추구하는 내셔널리즘의 차이를 이렇게 설파했다.
 
“애국주의는 자국민 사랑을 우선하는 것이고, 내셔널리즘은 자국민 외의 사람에 대한 증오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24일의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는 지난 2017년에 이어 현직 대통령인 중도의 에마뉘엘 마크롱(45)와 극우 포퓰리즘 정치인인 마린 르펜(54)이 격돌했다. 극우 포퓰리스트로 분리되는 르펜은 국민연합(RN)이라는 정당을 이끈다.
 
이 정당은 국가주의·국수주의·민족주의 등으로 번역되는 내셔널리즘을 지향하면서 반이민·반이슬람·반유럽연합(EU)·반글로벌리즘·보호무역·반엘리트주의 등을 내세운다. 과거 국민전선(FN)이라는 이름으로 강경한 포퓰리즘을 주장하던 이 정당은 2017년 대선 경선 투표에서 대패한 뒤 과격한 발언을 줄이고(사실은 그런 생각을 숨기고), 생활 중심의 달콤한 공약으로 표 모으기에 열중해왔다.
 
그러다 보니 이 정당의 정체성, 심지어 극우의 분류도 희미해지게 마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오래전에 나왔던 드골의 발언은 극우 내셔널리즘 정당인 르펜의 국민연합의 정체를 밝히기에 그저 그만이다.  
 
결과만 보면 공동체를 생각하자는 상식적인 주장을 내세우면서 사실은 그 뒤에 이주자·이슬람 등에 대한 혐오를 감춘 극우의 차이를 프랑스 유권자들은 잘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는 프랑스 유권자 4874만 중 73.69%인 3592만 명이 투표했으며 유효표가 3514만에 이르렀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7명의 후보가 100만 표 이상을, 3명이 500만 표 이상을 득표했지만, 전통의 중도 우파와 좌파 모두 부진했다.
 
중도좌파는 100만 표도 얻지 못했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마크롱에게 밀렸던 기득권 중도 좌·우파 정당은 이번 선거에서도 세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심지어 극우 세력에게도 여전히 밀렸다.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 결과. [이코노미스트]
 
이들은 결선 투표에서 다만 극우 세력이 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극우가 아닌 마크롱 대통령을 지지하는 활동을 하는 데서 정당의 건전성과 정체성을 보였을 뿐이다.
 
1차 투표에서 LREM(전진하는 공화국)의 마크롱 대통령은 27.80%(956만545표), RN(국민연합)의 르펜 후보는 23.10%(810만9857표)를 각각 득표해 1, 2위를 차지했다. 극좌 성향의 LFI(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를 이끄는 장뤼크 멜랑숑 후보는 22.00%(760만5225표)로 3위에 올랐다.
 
또 다른 극우 성향의 레콩케트(재정복)를 이끈 에릭 제무르는 7.1%(244만2624표)를 얻었다. 극우 세력이 분열하지 않았다면 1차 투표에서 30% 이상을 득표해 1위를 차지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중도우파인 공화당(LR)의 발레리 페크레스 후보는 4.8%(165만8386표)를 얻어 역대 드골주의자 대선 후보로는 가장 적은 득표를 기록했다. 전통적인 중도 우파 정당의 몰락이 가속했다는 평가다.
 
환경주의자인 야니크 자도는 4.6% (158만7534표)를, 중도우파로 농민·노동자 보호에 적극적인 레지스통(저항)의 장 라셀 후보가 3.2%(109만5700표)를 각각 얻어 100만 표 이상을 얻었다.
 
전통의 프랑스 중도좌파인 사회당의 안 이달고 후보는 1.7%(60만4217표)에 그쳤다. 프랑수아 미테랑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을 배출했던 프랑스 중도 좌파가 정치적으로 몰락한 모습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결선 투표에서 극우 르펜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하면서 프랑스에서 20년 만에 재선에 성공한 현직 대통령이 됐다. 프랑스에선 2002년 자크 시라크(1995~2007년 재임)가 재선했지만, 그의 뒤를 이은 니콜라 사르코지(2007~2012년)와 프랑수아 올랑드(2012~2017년)는 단임에 그쳤다.
 
프랑스 제5공화국의 대통령 임기는 7년이었지만 2000년 국민투표로 5년으로 줄었다. 시라크의 전체 재임 기간이 12년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7년 임기의 대통령에 이어 2002년 5년 임기의 대통령에 재선됐다.
 
5년 임기의 대통령에 재선한 것은 마크롱이 처음이다. 마크롱은 2017년 대선에서 만 39세라는 역대 최연소로 당선한 기록을 세운 데 이어 이번에 재선 기록도 새롭게 만들었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말을 스스로 믿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는 것을 보면 놀란다.”
 

‘극과 극은 통한다’ 마크롱 정년연장에 함께 반대한 극좌·극우

프랑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있는 엘리제궁 전경. 2007년 5월 대통령 이·취임식에 앞서 내부 정원에 붉은 카펫을 깔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대선 결선투표는 극우 세력에 그동안 얻은 결선투표 지지율 중 최다라는 데서 유럽은 충격에 빠졌다.
 
극우 세력이 처음 결선 투표에 오른 것은 2002년 대선 때다. 당시 1차 투표에서 대선을 노리던 시라크 대통령이 19.88%를로 1위를, 극우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 후보(마린 르펜의 부친)이 16.6%로 2위를 각각 차지했다.
 
중도 좌파인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후보는 16.18%로 3위에 그쳐 결선 투표에 오르지 못했다. 결선 투표에서 장마리 르펜은 17.79%의 득표로 82.21%를 얻은 시라크 대통령에 참패했다. 극우의 당선을 막아야 한다며 좌우파가 시라크에게 몰표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2007년 1차 투표에선 중도우파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가 31.18%를, 중도좌파의 세골렌 루아얄 후보가 25.87%를 각각 득표해 결선에 올랐다. 극우 장마리 르펜 후보는 10.44%를 얻어 4위에 그쳤다. 그해 결선 투표에선 53.06%를 획득한 사르코지가 46.94%를 득표한 루아얄 후보를 꺾고 엘리제 궁에 들어갔다.
 
2012년 대선도 중도 좌·우파의 대결로 압축됐다. 1차 투표에서 중도 좌파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가 28.73%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27.18%를 득표한 현직 대통령 사르코지는 2위로 결선에 올랐다.
 
극우 국민전선은 장마리 르펜의 딸인 마린 르펜으로 후보를 갈았지만 17.90%로 3위에 그쳤다. 그해 결선 투표에선 올랑드가 51.65%로 당선했다. 사르코지는 48.36%를 얻었지만 114만 표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프랑스는 좌우로 갈라졌다.
 
그 뒤 2017년 대선에선 사회당의 현직 대통령인 올랑드는 1%대까지 떨어진 지지율 하락으로 재선에 출마조차 하지 못했다. 사회당 정권에서 산업부 장관을 지낸 마크롱이 앙마르슈라는 정당을 만들어 별도로 출마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결국 1차 투표에서 24.01%를 획득해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21.30%를 얻은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었다. 중도 우파인 공화당은 장 피용 전 총리를 후보로 내세웠지만 20.01%의 득표로 3위에 그쳐 결선에 나가지 못했다. 결선 투표에서 마크롱은 66.10%를 획득해 33.90%를 얻은 르펜보다 2배 가까운 득표율로 승리를 거뒀다.
 
지금까지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후보가 얻은 득표율의 약진을 보면 우려할 만하다. 2002년 1차 투표에선 16.6%(2위)를 결선투표에서 17.79%를 각각 얻었다. 2007년에는 10.44%로 4위에 그쳐 결선엔 오르지도 못했다.
 
2012년에는 17.90%로 3위에 머물러 역시 결선에는 가보지 못했다. 2017년 1차에서 21.30%로 2위를 차지한 데 이어 결선에서 33.90%를 얻어 성장세를 보였다. 그랬던 것이 이번 대선에선 마크롱과 르펜이 1차에서 23.80% 대 23.10%로 4.7%포인트 차이로, 경선에선 58.54% 대 41.46%로 17.08%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르펜은 1차와 결선 모두에서 역대 극우 후보 중 최다 득표를 한 것은 물론 당선인과 가장 적은 득표율 격차를 보였다. 물론 이것이 추세로 이어져 다음 대선에서 극우가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주목할 점은 기권과 무효표가 유난히 많았다는 사실이다. 올해 결선투표율은 71.99%로 2017년의 74.6%보다 떨어졌다. 프랑스 68혁명 직후 샤를 드골(1959~69년 재임)이 재선에 도전했던 1969년 투표율이 68.9%까지 떨어진 뒤 5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현재의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커지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독특한 것은 극우 포퓰리즘과 극좌 포퓰리즘이 서로 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극우 르펜은 현행 20%(유럽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인 프랑스의 부가가치세를 낮추겠다는 이야기를 전면에 세웠는데 극좌 멜랑숑도 여기에 동조한다.
 
현행 62세인 법적 정년을 65세로 미뤄 더 일하고 연금을 더 늦게 받게 하겠다는 마크롱의 정책에도 극좌와 극우는 함께 반대했다. 노동자들이 일찍 은퇴해 더는 일하지 않고 연금으로 생활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연금이 정년 전 임금에 비해 턱없이 작은 한국과 달리 비교적 두둑한 연금이 보장되는 프랑스의 특징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5년 뒤 대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금의 결과로는 더더욱 짐작이 어렵다. 그래도 주목할 점이 많은 프랑스의 2022년 대선이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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