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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개 감자 품종개발에 성공한 임영석 학장의 '농업혁명'

[인터뷰] 임영석 강원대 의생명과학대 학장
美 수미감자보다 생산량 30% 높인 신품종 ‘골든킹’ 개발 성공
골든킹 온도변화·병충해에 강해, GMO 부작용도 없어
1000여 개 품종 교잡해 개발…전통 육종 개발 모델 제시

 
 
임영석 강원대 의생명과학대 학장이 지난달 26일 본인 연구실에서 GMO와 전통적인 육종방식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중앙UCN]
 
유전자변형식품(GMO)이 밥상에 오른 지 20년이 지났지만, 유해성 논쟁은 여전하다. 어느 쪽도 자기주장에 대해 뚜렷한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GMO를 찬성하는 쪽에선 유해성을 입증한 연구 결과가 없다고 말하지만, 반대 진영에선 장기적인 영향은 알려진 바 없다고 반박한다.
 
그러다 보니 경제논리는 물론, 식량 주권과 글로벌 농업자본에 대한 반감 등 온갖 이데올로기가 뒤섞여 난전을 펼치고 있다. 찬성 진영에선 일반 농산물 대비 값싼 가격을 강조하지만, 반대쪽 진영에선 특정 글로벌 기업이 GMO 특허의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점을 문제 삼는다. 식량 위기가 커지면 이들 글로벌 기업에 식량주권을 잃을 수 있다.
 
그런데 경제논리에서 전통적인 육종(종자개량)을 고집하는 학자가 있다. 임영석 강원대 의생명과학대 학장(생명건강공학과 교수)이다. 30여 년간 20개가 넘는 감자 품종을 개발했고, 이 중 일부는 미국에 기술료를 받고 넘겼다. 세계 최대 감자 주산지인 미국 아이다호에 임 학장이 개발한 품종이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70년대 미국에서 수미감자를 들여온 지 50년 만이다.
 
최근엔 수미감자보다 생산량을 30% 늘린 품종을 개발했다. 2년간 시험 재배하며 가능성을 검증했다. 온도 변화에 강한 것이 최대 강점이다. 기후변화로 생산량 감소를 겪고 있는 전 세계 농업계에 희소식일 법하다. 임 학장은 “유전자변형이 아닌 육종 방식으로 23년 만에 일군 성과”라고 말했다.
 
GMO 반대 학자로 알려져 있다.
유전자변형기술 자체를 반대하진 않습니다. 농가소득도 늘고, 소비자도 더 싼 값에 음식을 즐길 수 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필요한 형질을 지닌 품종을 전통적인 방법보다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죠. 저도 2006년 제초제 저항 유전자를 써서 감자 품종을 새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사람 몸에 정말 나쁜지는 학계에서 검증되지 않았고요. 단정할 수 없어요.
 
그런데도 반대 목소리를 내온 이유는.
재배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 때문입니다. GMO가 제초제를 흡수하지 않아서 살아남는 게 아닙니다. 제초제를 흡수하고도 살아남는 겁니다. 이렇게 자란 작물을 먹으면 사람 몸에 농약이 축적됩니다. 그런데 제초제에 내성을 지닌 잡초가 또 나오죠. 그러면 더 강한 제초제를 만들고, 제초제 저항력이 더 강한 GMO를 만들어야 하거든요. 악순환이죠.  
 
몇 년 전 토종 종자로 옥수수를 키우는 농가에 갔었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품종보다 맛은 고소했지만, 생산량이 기존 품종의 30% 미만이라고 하더라.  
저는 감자 품종에 집중했습니다. 덕분에 지난 13년간 감자육종소재은행을 운영하면서 감자 종자만 1000여 개를 모았어요. 예를 들어 자주색 감자를 만든다고 해볼까요. 저는 이미 자주색을 내는 품종을 갖고 있습니다. 기존 품종과 교배시켜서 맛과 생산량을 끌어올리는 식이지요. 유전자를 직접 넣을 때보단 느리지만, 제 나름대로 답을 찾은 셈입니다.
 
품종 등록까지 과정이 어떻게 되나?
교배 1세대로 1000개 정도를 만듭니다. 그중에 100개, 10개, 마지막엔 후보 품종 2개를 남기죠. 여기까지 4~5년 걸립니다. 그다음엔 후보 품종을 계약 맺은 농가에 공급해서 2년간 시험합니다. 그렇게 해서 독창성·연속성·균일성 등을 인정받으면 국립종자원에 새로운 품종으로 등록됩니다.
 
그렇게 만든 품종으로 GMO와 경쟁할 수 있나?
지난해 품종 등록한 ‘골든킹’(금왕) 감자가 대표적인 성과입니다. 과자 브랜드 중에 ‘수미칩’이라고 아시나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만든 감자 품종 이름 ‘슈페리어’(수미)에서 딴 겁니다. 국내에서 한 해 수확하는 감자의 70%가 수미 품종이거든요. 그런데 수미 품종보다 생산량을 30% 넘게 늘렸습니다. 대부분이 특대 등급이라 상품성도 좋고요. 병충해에도 강합니다.  
 
기존 품종에 한계가 많았던 건가?
감자는 어떤 환경에서든 잘 자라는 작물로 알려져 있죠. 기근 때 주식 대신 먹는다고 해서 구황작물이라고 하고요. 그런데 기후변화가 문제였습니다. 감자는 기온이 섭씨 25도 미만이어야 잘 자랍니다. 지구 평균기온이 올라가면서 감자가 점차 자라기 어려워요. 한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감자 생산량이 5%씩 준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지금까지 감자 품종 21개를 개발해왔다.
전 세계 최대 감자 산지가 미국 아이다호 주입니다. 지난 2019년 현지 회사에 8개 품종 권리를 8만 달러에 넘겼어요. 한국 종자 산업 역사상 미국 기업에 기술료를 받고 권리를 이전한 사례는 많지 않아요.  
 
최근엔 산업용 대마(헴프)로 눈길을 돌렸다.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이 주관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강원도가 연구비를 나눠 내는 사업입니다. 저는 한국형 헴프 품종을 개발하는 역할을 맡았고요.  
 
감자와 관계가 있나?
감자가 잘 나는 곳에선 대마도 잘 자랍니다. 기후가 선선해야 하거든요. 강원도 정선과 대관령 지역이 옛날부터 대마 주산지로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감자와 대마를 번갈아 키울 때 땅이 더 비옥해진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어요. 그간 마약으로 오용될 수 있어 강하게 규제했는데, 최근엔 잘 정제하면 의료용으로 가치가 높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의료용으로 쓰는 데 조건이 있나?
환각 성분 비율이 0.3% 미만이어야 합니다. 품종 개량은 뇌전증 치료 효과가 있는 칸다비디올(CBD) 함량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주로 키우는 품종은 7~8% 수준에 그치거든요. 이걸 10~15% 수준까지 높인 것이 최근에 제가 개발한 ‘핑크페퍼’입니다. 해외에서도 그간 음성적으로 키워왔기 때문에 품종 개량이 더뎠어요. 우리가 경쟁력을 가질 만한 분야입니다.
 
학장인데 작업복 입은 사진이 더 많다.
언젠가 집사람이 그러더라고요. ‘당신은 농부들하고 사진 찍을 때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더라’고 말입니다. 학장으로 역할을 할 땐 가끔 연기하지만, 현장에 있을 땐 연기를 하지 않게 돼요. 현장 가면 농업인 분들하고 호형호제하면서 막걸리 먹고 그럽니다. 그땐 저도 한 명의 농부일 뿐이죠. 학생들에게도 육종학자에게 답은 현장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감자에 몰입하는 이유가 있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감자만 한 작물이 없다고 봅니다. 단적으로 중국은 벼에서 감자로 주식을 바꾸려고 하고 있어요. 벼농사를 지을 물이 갈수록 줄어드는 바람에 쌀 생산량이 줄고 있거든요. 탄소배출권 문제도 있죠. 또 북한 기아문제를 해결할 열쇠도 된다고 봐요. 참여정부 때 북한 환경에 맞는 슈퍼감자 품종을 개발하고 있었거든요. 정부가 바뀌면서 중단돼 아쉽습니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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