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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탐욕" 나라도 팔아먹은 '조선 최대 갑부' 민영휘 [김준태 조선의 부자들㉑]

대한제국 시기(1897~1910) 고종의 핵심 측근
"갑오농민전쟁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 탐관오리의 전형

 
 
지난회에서 일제 강점기 조선인 3대 갑부로 민영휘(閔泳徽, 1852~1935), 김성수, 최창학을 소개했다. 그런데 이 중 민영휘의 재산이 다른 두 사람을 압도한다. 정확한 계산은 어렵지만, 현재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1조원을 훌쩍 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떻게 그는 이처럼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을까?
 

'여흥 민씨 척족' 탐관오리, 친일행위로 돈 긁어모아 

 
민영휘의 본명은 민영준이다. 고종 때 권세를 휘두른 여흥 민씨 척족의 중심인물이었다. 명성황후와는 촌수가 멀었지만(민영휘의 7대조 민시중과 명성황후의 6대조 민유중이 친형제 간이다) 신임을 얻어 도승지, 평안도 관찰사, 판의금부사,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 핵심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한데 그의 평판은 매우 좋지 않았다. 탐욕스러웠던 그는 사람들을 갈취하여 재산을 모았다. 평안도 관찰사로 재임하던 시절이 정점이었는데, 얼마나 많이 토지와 금품을 빼앗았는지 “민영휘가 돈 긁기에 전력한 것이 갑오농민전쟁의 한 원인”이란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이 같은 행태로 성난 백성들에 의해 집이 전소된 적도 있었지만, 그는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가렴주구에 몰두하다가 지석영으로부터 “정권을 전횡하여 임금의 총명을 가리었으며, 백성을 착취하여 오로지 자신을 살찌우고 윤택하게 하는 데 여념이 없는 자로 …… 나라에 해독을 끼친 원흉이고 백성을 좀먹은 대악(大惡)”이라고 탄핵받았다([승정원일기]고종 31년 7월 5일). 결국 그는 탐관오리라는 죄목으로 전라도 영광군 임자도에 위리안치된다.
 
하지만 민영휘는 순순히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유배지에서 탈출하여 청나라로 도피한다. 동학농민전쟁 당시 청나라 군대의 파병을 앞장서서 주장할 정도로 친청(親淸) 인사였던 그는 청나라에서 재기를 도모했고, 1년도 채 안 되어 사면받는다. 이후 민영휘는 궁내부 특진관, 태의원경, 호위대 총관, 육군 부장(지금의 중장), 중추원 의장, 시종원경을 지내는 등 탄탄대로를 달렸다. 부정부패로 처벌받은 관리가 제멋대로 유배지에서 탈출하여 해외로 도피하였는데, 엄중히 처벌하기는커녕 사면해주고 고위 관직으로 복직시킨 것이다. 정상적인 나라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민영휘는 대한제국 시기(1897~1910) 고종의 핵심 측근으로 활동했는데, 위기가 닥친다. 을사늑약에 앞장선 대신을 처벌하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일본에 찍혀 정계에서 밀려난 것이다. 그가 권력을 잃자 그에게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이 재산환수 소송을 거는 등(1905년~1910년 사이 언론에 등장한 사례만도 15건이다) 소란이 일었는데, 이를 계기로 민영휘는 친일(親日)로 급격히 태세를 전환했다. 일본 황태자 방한 환영위원장을 자청해 맡았으며, 헤이그밀사사건이 일어나자 고종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위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왕가의 시조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위패를 조선에 봉안하는 신궁봉경회의 고문을 맡았고, ‘일한합방(일본 측의 용어)’찬성 운동을 벌였던 국민동지찬성회의 고문, 정우회의 총재를 지내며 일본의 한일 강제 병탄 과정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이 공로로 민영휘는 1910년 10월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1911년 1월에는 은사공채 5만원을 받는다. 자신의 이익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친일로서,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매국의 대가로 부귀영화 누리며 '금융인' 변신 

그런데 이후 민영휘는 보통의 친일 귀족들과는 색다른 길을 걸었다. 매국의 대가로 얻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한량 같은 삶을 살던 이들과 달리 금융인이자 기업가로 변신한다. 그는 1912년 한일은행의 이사로 취임하였고, 1915년부터 1920년까지 은행장으로 재임하였다. 그의 두 아들도 전면에 나섰는데 미국 오하이오대학에서 수학한 큰아들(양자인 민형식이 있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둘째 아들이다) 민대식이 1920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일은행장에 취임하였으며,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대를 졸업한 둘째 아들 민규식도 1920년 한일은행 상무이사에 취임한다.
 
이들 삼부자는 풍부한 현금자산(민영휘가 축재한 재산과 은행의 자본)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는데, 초기에는 광목을 직조하는 부국직물 합명회사, 저마(苧麻, 모시)를 가공하는 ㈜조선제마, 주류를 생산하는 ㈜조선양조, 견직물을 직조하는 ㈜조선견직와 동광제생사 등을 설립하여 직접 경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부국직물과 조선제마 등이 얼마 지나지 않아 폐업하는 등 처참한 실패를 겪자, 이들은 일제가 설립한 국책회사인 ㈜조선토지개량, ㈜조선신탁, ㈜조선미곡창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경성전기, ㈜조선맥주, ㈜경성천연빙, ㈜조선경남철도에 자본을 투자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망할 위험이 없으면서 배당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기업의 주식을 사들인 것이다. 이러한 투자 경향은 민영휘가 죽은 뒤에도 계속 이어졌는데, 오미일의 [관료에서 기업가로 –20세기 전반 민영휘일가의 기업 투자와 자본축적]이라는 연구에 따르면, 1940년 기준 민대식의 주식배당 수입이 26,240원, 1944년 기준 민규식의 주식배당 수입이 36,914원 62전이었다고 한다. 배당금으로만 연 4억~6억원을 벌었을 정도로 주식 투자에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잡지 [삼천리]를 보면, “민영휘씨가 재리(財利)에 눈이 밝아 지금, 이 순간에도 뒤에 앉아 재물을 불리고 이익을 늘린다는 말이 있다. 그는 어떤 분야든 이익이 남을 것 같으면 자금을 대어준다고 한다. 종로 상계라든지 대금업자라는지를 막론하고 민영휘씨와 관계를 맺은 곳이 상당히 있는 모양이다.”, “일본 재산가 스미모토, 미쓰비시, 미쓰이에는 비교할 수 없다고 해도 그다음은 간다고 말할만한 처지이다.”라는 기사가 나온다. 이익이 나올 수 있는 곳이라면 소매상이나 대부업자에게도 돈을 빌려주었다는 것으로, 총자산이 웬만한 일본 재벌들 못지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돈이 많으면 뭐 할까? 사람들에게 갈취하고, 친일의 대가로 받은 돈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까? 일본에 철저히 협력하며 불린 재산이 과연 떳떳할까? 민영휘도 이런 세상의 인식이 마음에 걸렸는지 기부를 열심히 했다. 1920년대 동아일보에 등장하는 민영휘의 기부 관련 기사만도 80여 건에 이른다. 그는 또한 교육사업에도 많은 돈을 내놓았는데(휘문고등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윤치호의 평가를 보자. “신문 보도에 따르면 민영휘 씨가 자신이 설립한 휘문의숙에 10여만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민 씨가 도덕, 명성, 재력 면에서 조선 최고라고 평했다. 당치도 않은 소리다. 민씨를 도덕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아무리 극악무도한 방식으로 돈을 벌더라도 그 가운데 일부를 공익사업에 투자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면죄부가 된다고 조선 청년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중략〉 학교 하나를 후원한다고 해서, 아니 아무리 많은 학교를 후원하더라도 이런 작자들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1921년 6월 26일)” 그렇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기부를 많이 했더라도 부도덕한 방법으로 돈을 번 이들을 우리는 용인해서는 안 된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김준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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