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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날아 멀리 보라’ 동북아 국제무역 갑부 김기덕 [김준태 조선의 부자들 (23)]

조선-만주-러시아 잇는 중개무역
독립운동·교육사업 등에 자금투자
시대 변화 읽고 미래 사업 준비

 
 
김기덕(金基德 1892~1953년)
 
Q: 사업적 견지에서 만주로의 진출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퍽 유망하다고 봅니다. 조선 안에서 어디 큰 사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이미 다 자리를 잡은 셈이니까요. 지역이 넓은 만주 방면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Q: 앞으로 문화사업이나 교육사업에 얼마나 힘을 기울이실 작정이십니까?  
 
A: 지금에야 다하고 싶지만 어디 그렇게 됩니까? 나는 무슨 일이든 다 그러하지만, 그때를 당해서 일을 해놓은 뒤에야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그전에는 입 밖에다 말을 꺼내지 않으렵니다.  
 
Q: 지금 가진 재산이 얼마나 되십니까?
 
A: 글쎄요.  
 
Q: 토지는 얼마나 되십니까? 전 재산의 반 이상이 토지겠지요?  
 
A; 네 역시 토지가 많은 편이지요.
 
Q: 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흔히 백만원, 천만원 대에 이르는 거부가 되면 재물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이 생긴다고 들었습니다만.  
 
A: 돈이란 1000~2000원, 1만~2만원 때는 개인의 재산입니다. 하지만 백만원, 천만원이 되면 사회의 공재(公財)를 내가 잠시 맡고 있을 뿐인 거죠.  
 
Q: 그렇다면 지금 그 많은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주실 건지요? 유산 상속을 어떻게 하실 건지, 그리고 유산에 관한 동양의 도덕과 습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A: 자손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준다는 데 찬성하지 않으며 결코 좋은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손에게는 교육을 주고, 인격을 줄 일이지 돈을 물려줄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1935년에 발간된 잡지 [삼천리(7권 11호)]에 실린 대담 기사를 요약해 현대어로 옮긴 내용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제국 국책회사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다롄~창춘~하얼빈 철도 노선에서 운영하던 기차. [사진 위키백과]
 
이 대담의 인터뷰이 대상자는 김기덕(金基德 1892~1953년)이다. 그는 조선-만주-러시아를 잇는 중개무역을 통해 큰돈을 벌었다. ‘대담하며 의협(義俠)의 기풍이 풍부한 통쾌한 성품’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그는 독립운동에도 자금을 댔다. 또한 함경북도 청진에 청덕학교와 청덕전기학교를 세우고, 서울 한성실업학교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교육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 당시 자수성가한 부자들의 공통점이기는 하지만, 김기덕의 어린 시절은 매우 가난했다. 함경북도 부령의 한미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인근 청진으로 옮겨 살았는데, 1908년 개항 이후 청진은 동북 지역을 대표하는 국제 항구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 청진에서 김기덕은 국제무역과 해외 나라들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특히 일본어가 관건이라는 생각에 일본어 공부에 매진했다. 덕분에 그는 일본 상선회사의 측량기사로 일할 수 있었고, 오사카로 건너가 약 2년간 머물면서 일본 상인들과 폭넓게 교류하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이 그에게 큰 자산이 된다.  
 
1915년 조선으로 돌아온 김기덕은 청진에 해산물무역회사를 설립하였고, 북만주 지역에는 목재회사를, 다롄에는 곡물무역회사를 세워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연해주와 함경도 연안에서 잡히는 해산물을 내륙에 팔아 이윤을 남겼고, 만주 평야의 곡물을 수입해 판매했다.  
 
1932년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이 수립되면서 만주 일대에 건설 붐이 일고 목재 수요가 급증하자, 북간도지대의 광대한 숲에서 나무를 벌채하여 수출하기도 했다. 특히 두만강과 압록강 연안에 대규모로 목재회사와 제재(製材)회사를 운영했는데, 철도국에 다량의 침목과 전주를 납품하여 큰돈을 벌었다.  
 
위성에서 본 북한 나진항 전경. [사진 구글어스]
 

일본 북진정책 고려, 전략 요충지 선점

 
그런데 김기덕이 벼락부자 중에서도 최고의 벼락부자라 불릴 정도로 막대한 재산을 갖게 된 것은 이들 사업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사업을 통해 얻은 이익 대부분을 토지에 투자했다.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와 무역 환경을 면밀하게 관찰한 그는 러시아와 만주·한반도·일본을 잇는 새로운 거점 항구가 신설될 것으로 예상하고, 청진에 인접한 지역이자 대초도와 소초도 두 섬이 천연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나진에 주목했다.  
 
그리고 10여 년에 걸쳐 나진 일대의 땅을 사들였다. 그러던 1932년 8월 25일, 일본 정부는 “대륙정책을 결행하는 최대의 관문”으로 나진항 건설을 결정했다. 이에 김기덕이 소유한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오르게 된다.
 
당시 언론의 평가를 보자. 김기덕과 함께 나진의 땅을 양분하고 있던 인물이 홍종화였는데,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남아있다.  
 
‘이는 김기덕과 홍종화 양씨가 남보다 일본을 잘 연구하고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중략〉 만주와 몽고가 일본의 유력한 시장이 되고 일본의 북진주력의 경도점(傾到點)이 된다면, 지리상으로 보아 본토와 연락하는 주요 지점으로 두만강 남단이 선정될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십 수 년을 두고 나진, 웅기의 땅을 사 모으기에 열심이었던 것이니 선견지명이 있었다 할 것이다.’ (* 웅기는 오늘날 선봉 지역이다. 북한이 1993년부터 2010년까지 동북아시아의 국제적인 무역, 금융, 관광 기지로 건설하기 위해 ‘나진 선봉 경제 무역 지대’를 만들었을 정도로, 천혜의 항구이자 요충지였다)
 
국가보훈처가 1930년대 국민부(남만주 지역의 최대 민족주의 계열 독립군 정부)가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북간도로 파견했던 모연대(模捐隊)의 자료를 지난 8일 국내에 처음 공개했다. 사진은 모연대의 대장 장한성과 모연대에 대해 보도한 당시 신문 기사. [사진 국가보훈처]
 

시대 변화 꿰뚫고 대비하는 통찰력 갖춰

 
아무튼 이때 김기덕은 나진에 150만 평, 웅기에 300만 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진항의 방파제 노릇을 하는 대초도와 소초도도 김기덕이 미리 사들였는데, 직접적으로 항구로 사용할 땅이 모두 그의 것이었다. 항구 건설용 토지 수십만 평은 일본 총독부에 의해 수용되면서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보상받긴 했지만, 그조차도 처음 구매한 가격에 비하면 몇 십 배에 이르는 액수였다. 더욱이 나진항이 국제적인 무역도시·경제도시·군사도시로 개발되리라는 기대에 주변 땅값은 백배가 넘게 폭등했는데, 그가 가진 토지가 300만 평이 넘었으니 시세차익이 막대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김기덕에 대해 서두에 소개한 잡지 〈삼천리〉는 “미지수의, 무한대의 금(金)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반도를 들썩이게 하는 분으로” “만주국이 성립하고 관북의 나진항이 극동의 중요한 국제무역항이자 군항이 되면서 거부로 떠올랐다.” “광막한 인생의 벌판에 빈주먹만 들고 나서서, 앞날을 내다보는 밝은 안목과 남보다 뛰어난 지략과 여기에 천재일우의 기회가 한데 뭉쳐서 일약 백만장자 소리를 듣게 되었다.”라고 극찬한다.  
 
이후 김기덕은 해방 후 남쪽으로 내려와 고려흥업주식회사를 창립, 중석(重石)을 해외에 수출하여 성공했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른 행적도 불분명한 상태여서 안타까움이 남는다.  
 
요컨대 김기덕이 사업에 성공하고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고 선제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당시 동북아시아 국제무역의 핵심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일본어 실력과 일본에 대한 경험을 쌓았고, 만주국 건국과 철도 부설로 목재 수요가 폭증하리라는 것을 예측했다. 이 중 백미는 나진항 개발을 예상하고 십 년을 준비했다는 점이다. 동북아 국제정세와 경제 질서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 치밀한 분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김준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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