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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대응에 실패한 카카오, 소비자에게 남겨 놓은 숙제 [한세희 테크&라이프]

데이터센터 화재, 카카오가 일상 지배하는 상황 보여줘
카카오 이중화 시스템 재난 상황 준비했다 보기 어려워

 
 
지난 16일 오후 경기 과천의 한 카카오T 주차장 무인정산기에 시스템 장애를 알리는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기간통신은 유선전화도, 이동통신도 아니고 바로 카카오톡임을 보여준 사건이 얼마 전 있었다.
 
주말인 15일 발생해 3-4일 간 이어진 카카오 장애 사태다. 15일 오후 3시 30분경 카카오톡에 장애가 생겨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없게 되었다. 카카오T, 카카오페이, 다음 메일,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등 카카오 계정과 인프라를 활용한 서비스도 모두 장애가 발생했다.
 
톡은 문자메시지나 다른 메신저로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카카오T에 의존하던 택시 기사나 톡채널로 주문을 받아 판매하는 사업자들, 유료 웹툰과 웹소설 창작자들에게 카카오 네트워크의 장애는 생계의 문제이다.
 
이번 사태는 카카오가 플랫폼 지배력을 앞세워 사업을 확장, 일상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망으로 진화했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심장 또는 두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신경망 전체가 작동을 멈춘다. 카카오라는 국민 신경망이 마비된 것이 이번 사태다.
 

리튬 배터리에서 시작된 신경망 마비 불꽃

우리는 인터넷이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카카오톡 전송 버튼을 누른 후 화살표가 조금만 오래 남아 있어도 우리는 답답함을 느낀다. 그 당연한 일상은 왜 깨졌을까?
 
이번 카카오 ‘대란’의 출발점은 카카오가 입주한 데이터센터(IDC)에서 발생한 화재다. IDC는 인터넷 서비스에 필요한 서버와 네트워크 등을 대규모로 구축해 대여하는 시설이다. 기업이 개별적으로 이런 시설을 구축하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보통 전문 기업의 IDC를 빌려 쓴다.
 
카카오는 SK C&C의 판교 IDC에 공간을 빌려, 여기에 서비스를 운영하고 데이터를 저장하는 서버를 둔다. IDC에서 정전은 치명적이다. 입주 기업들의 서비스가 모두 중단된다. 그래서 IDC는 자체 발전기를 갖고 있으며, 전기가 끊기고 자체 발전기가 돌아가기 전까지 IDC를 가동시킬 무정전 전원 장치(UPS)도 설치한다. UPS는 거대한 배터리라 생각하면 쉽다.
 
그런데 장애가 생길 경우 최우선적으로 작동해야 할 UPS에서 불이 나 버렸다. UPS 역시 최근 배터리 추세에 따라 납축전지에서 리튬이온 전지로 바뀌어 가고 있다. 리튬 배터리는 에너지 효율이 높지만 불안정성이 커 폭발이나 화재 위험도 높다. 또 한번 불이 붙으면 잘 꺼지지 않는다. 스마트폰이나 전기차 배터리 화재 사고가 간혹 발생하는 것과 비슷하다.
 
통상 IDC 같은 시설에 불이 나면 우선 연소 반응을 억제하는 가스를 뿌려 불길을 잡는다. 하지만 판교 IDC 화재 현장에선 이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소방당국은 물을 뿌려 화재를 진압하기로 한다. 가동 중인 전자 장비에 물이 들어가면 피해가 커지기 때문에 SK C&C는 IDC 전체 전원을 차단한다. 카카오를 비롯해 이 IDC에 입주한 기업들의 서비스가 영향을 받은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화재’라는 재난의 영역이고,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SK C&C가 관리할 부분이라 하겠다. 4000만 카카오톡 사용자들이 의아해하는 부분은 그 다음이다.
 
사고나 장애가 발생했을 때 지연을 최소화하며 서비스를 재개하는 대응 시스템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가? 카카오톡 장애가 10시간씩 이어지면서, 아예 처음부터 제대로 된 대응 시스템이 갖춰져 있긴 했는가 의구심까지 나왔다.
 
왠만한 규모의 인터넷 서비스는 혹시 모를 재해나 사고에 대비해 시스템과 데이터를 여러 곳에 분산해 둔다.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에서 기능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사진이나 업무 자료, 문서 등을 외장 하드나 클라우드 서비스에 백업해 두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인터넷 기업은 이것을 더 큰 규모로, 보다 철저하게 수행한다는 차이가 있다.
 
물론 카카오도 이런 준비는 해 두었을 것이다. 카카오는 판교 IDC를 중심에 두고 안양 등 국내 4곳의 IDC에 업무를 분산해 두고 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이 터졌을 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설계돼 있지 않았거나, 사고에 대처하는 직원 훈련이 제대로 안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카카오는 “모든 데이터를 국내 여러 데이터센터에 분할 백업한다. 장애 대응을 위한 이원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번 같이 데이터센터 한 곳 전체가 영향을 받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다”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애매하게 표현하긴 했으나, “사용자 데이터 유실 확률은 0%”라는 카카오 임원 발언과 묶어 생각해 보면 사용자 데이터는 여러 곳에 분산돼 안전하지만, 서비스를 실행하는 시스템 부분 이원화는 판교 IDC 내 다른 위치에 구축돼 있었다는 뜻으로 들린다. 물리적으로 같은 곳에 이원화 시스템을 두었다면 재난 상황에 충분히 준비했다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 대비한 재해복구(Disaster Recovery) 시스템을 철저히 구축하려면 본 시스템과 같은 복사본을 멀리 떨어진 IDC에 두고 실시간 동기화까지 실행한다. 이러면 사고 때 지연 시간을 분 단위로 줄일 수 있으나 비용이 엄청나다. 주로 대형 금융권에서 많이 쓰인다. 복사 시스템을 두되 평소엔 대기 상태로 두어 부담을 줄일 수도 있고, 데이터만 일정 간격을 두고 백업하는 방식도 있다.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재난 대응 부실 논란이 불거진 카카오와 계열사들의 주가가 급락했다. 지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에 설치된 화면에 카카오 계열사 네 종목의 주가 그래프가 표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플랫폼은 국가 기간 인프라인가?

무료이고 민간 기업의 사업일 뿐인 카카오톡에 이런 높은 수준의 DR 투자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 카카오톡은 이미 필수 통신 인프라다. 게다가 톡을 넘어 카카오의 여러 서비스들이 이미 많은 사람들의 생업과 밀접히 얽혀 있다. 이 괴리가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이번 일로 우리는 큰 불편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큰 불안을 안게 되었다. 실질적 기간망 역할을 하는 카카오톡이 한순간에 마비될 수 있음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부적으로 허술할 수도 있는 한 민간 기업의 네트워크에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맡겨 놓고 있었다. 세금 안내와 고지서 납부, 운전면허증 같은 국가 기능까지 위탁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전쟁 같은 비상상황에 카톡 먹통되면 어떡할 건가”라며 말을 보탰다. 카카오톡 같은 인터넷 사업자의 정보통신 시설 관리 의무를 법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다시 나온다.
 
하지만 민간엔 민간의, 국가엔 국가의 역할이 있다. 불편을 주는 민간 기업을 제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비자들의 다른 선택이다. 네트워크 효과를 가진 플랫폼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심판이라는 어려운 일이 이번엔 일어날 수 있을까?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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