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현물'에 갇힌 한국…'파생'으로 질주하는 글로벌 시장
- [가상자산 황금시대]②
투자자 보호 명분으로 문 걸어 잠갔지만…자본 유출 부작용
혁신 상품 쏟아지는 해외 거래소…국내는 '역차별'에 경쟁력 상실

[이코노미스트 정동진 기자]기관 자금 유입으로 가상자산 시장이 확장되고 있지만 한국은 세계적 흐름에서 소외되고 있다.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을 중심으로 수조 달러 규모의 시장을 구축한 글로벌 시장과 달리 국내 시장은 현물 거래에 집중하며 제한된 시장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한 규제가 오히려 국내 가상자산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국제 시장에서 고립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파생상품이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기초자산의 가격을 기반으로 가치가 결정되는 금융 계약이다. 투자자들은 이를 통해 가상자산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도 미래 가격 변동에 투자하거나 보유 자산의 가격 하락 위험을 피하는 등 보다 정교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다.
가상자산 파생상품의 기본 형태는 미래 특정 시점에 정해진 가격으로 자산을 거래하는 선물(Futures) 계약이다. 이와 더불어, 특정 가격에 자산을 사거나 팔 권리를 거래하는 옵션(Options) 계약도 존재한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주로 거래되는 상품은 만기일 없이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는 '무기한 계약'으로, 전체 가상자산 파생상품 거래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통계는 파생상품의 시장 지배력을 명확히 보여준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파생상품 거래량은 꾸준히 전체 거래량의 약 70%를 차지하며 현물 시장 거래량을 압도하고 있다. 가상자산 데이터 분석 업체 코인게코(CoinGecko)의 2025년 2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10개 중앙화 거래소(CEX)의 무기한 계약 거래량은 2025년 상반기에만 39조달러(약 5경3800조원)에 육박했다.
이러한 시장 확장은 다양한 파생상품의 개발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비트코인 채굴 수익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해시프라이스 선물(Hashprice NDF)과 이더리움 스테이킹 수익률을 거래하는 스테이킹 수익률 스왑(Staking Yield Swap) 등이 대표적인 예다. 유럽파생상품거래소(Eurex)는 비트코인을 기존 가격의 100분의 1 가치로 거래할 수 있는 나노(Nano) 선물을 출시해 소액 투자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도 했다.
현물 거래에 집중된 한국 시장
한편 국내 시장은 현물 거래에 집중돼 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 점유율이 가장 높은 업비트(두나무)와 빗썸의 수수료 수익 비중을 살펴보면 총 매출 중 거래수수료 및 전송수수료 비중이 90% 이상에 달한다. 2024년 말 기준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시가총액 107조7000억원, 일평균 거래 규모 7조3000억원, 거래 가능한 실 이용자 수는 970만명 등 글로벌 시장에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지만, 사업 구조가 지나치게 편중돼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높은 거래 수요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가상자산 관련 기조는 여전히 보수적이다. 금융위원회는 미국 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국내 출시를 허용하지 않아 왔다. 지난 7월 23일에는 금융감독원이 국내 자산운용사들에게 상장지수펀드(ETF) 내 가상자산 관련 기업의 비중 확대를 자제하라는 구두 지도를 내리기도 했다.
국내에서 가상자산 파생상품이 허용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 있다. 법률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행법상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은 금융투자상품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또 파생상품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기초자산으로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금융당국 역시 "관련 법(자본시장법) 개정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규제로 인한 자본 유출과 역차별
국내의 엄격한 규제 환경은 자본의 해외 유출이라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2024년 하반기 실태조사'에 따르면 해당 기간 동안 국내에서 사전 등록된 해외 거래소나 개인지갑으로 이전된 가상자산 규모는 무려 75조9000억원에 달했다. 이러한 흐름에는 국내에서 제공되지 않는 다양한 상품들에 대한 수요가 해외로 향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그 중에서도 파생상품 거래 수요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역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국내 거래소는 엄격한 규제 하에 현물 거래만 제공하는 반면, 해외 거래소는 파생상품을 포함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여러 거래소를 이용해 다양한 투자 옵션을 선택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정부의 이러한 조치가 국내 거래소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2단계 입법이 시장 개방과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단계 법안이 이용자 자산 보호와 불공정 거래 방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2단계 입법은 가상자산의 발행·유통 및 사업자 규제를 포함해 보다 개방적이고 경쟁력 있는 시장 환경을 구축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현물 ETF 중개를 막고 파생상품은 논의조차 못 하게 하는 것은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전반적인 축소를 불러올 수 있다"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규제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국내 가상자산 사업은 고사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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