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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FDA ‘신속심사 바우처’ 제도가 나온 이유 [김한조 바이오 뉴스 돋보기]

소아 희귀질환 약 개발에 뛰어들게 하는 인센티브 역할
신속심사 바우처 가진 기업, 검토 기간 1년에서 6개월로 단축

 
 
화이자(Pfizer)와 바이오앤테크(BioNTech)가 코로나19 mRNA 백신 특허 소송에서 모더나(Moderna)에 맞소송을 걸었다. [REUTERS=연합뉴스]

모더나 vs 화이자, 특허 소송의 승자는?

최근 화이자(Pfizer)와 바이오앤테크(BioNTech)가 코로나19 mRNA 백신 특허 소송에서 모더나(Moderna)에 맞소송을 걸며 반격했습니다. 모더나는 화이자가 mRNA 백신을 만드는 데에 중요한 두 가지 기술을 베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세포가 코로나 면역반응을 유발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동안, mRNA 입자를 안정화하는 기술입니다.
 
화이자는 해당 기술을 과학자들의 이전 연구를 토대로 자체 개발했다고 반박했습니다. 관련 기술이 이전부터 수정·발전해 왔으며, 다수의 과학자가 개발하고 발전시켜온 기술에 대해 모더나가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정 공방은 계속될 것이고 이 공방의 승자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특허 제도 자체가 연구 성과의 독점성을 인정해 주는 댓가로 연구 내용을 공개하도록 장려하는 제도라는 점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만한 지점입니다. 누군가에게 독점적인 법적 권리를 보장해 주고 경제적인 면에서 독점이 갖는 비효율성을 떠안게 되더라도, 기술의 공개를 통해 전체적으로는 국가 및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 특허 소송에서 누가 이길지 그리고 어떤 결말이 맺어질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분명한 것은 인류가 두 회사의 기술적 성과로 인해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도전에 그나마 응전할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좀더 좁은 시야에서 보면, 이 코로나19 백신 관련 특허 소송은 물론 유전자 가위의 특허 소송, 보톡스 제품을 둘러싼 특허 소송 등의 사례들은 기업들이 기술의 보호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세계 최초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탄생

최근 대변 속 장내 미생물을 이용한 치료제가 미국 보건 당국의 승인을 받으면서 세계 최초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가 탄생했습니다.  
 
스위스 제약사 ‘페링 파마슈티컬스(Ferring Pharmaceuticals)’는 FDA가 자사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레비요타(Rebyota)’를 승인했다고 지난 1일 밝혔습니다. 허가된 적응증은 18세 이상 성인에서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 감염(CDI)’ 재발을 막기 위해 항생제 치료 후 사용하는 것입니다.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은 인체 소화기에 기생하는 박테리아로, 장내 미생물 균형이 무너져 개체가 과도하게 증가하면 설사와 염증을 유발합니다. 초기에는 항생제 투약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감염 사례의 최대 35%가 초기 진단 후 재발하며 그 이후 재발률은 더 높아집니다. CDI 첫 번째 재발 후 약 65%의 환자가 후속 재발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발성 질환에 대한 뚜렷한 치료제는 없다는 점에서 이번 레비요타의 승인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최근 가장 뜨겁게 연구되는 분야로 꼽힙니다.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쌍둥이가 왜 다르게 성장하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한 설명 가운데 유력한 것이 후생유전학과 마이크로바이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과 환경 사이의 관계를 주목하게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통념, 즉 유전자가 같더라도 환경이 다르면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는 이론에 힘을 실어줍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사람의 장 내에 서식하는 모든 생물종의 총합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유산균을 많이 섭취하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장내에 유익한 균의 비율을 늘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장 내는 사실 체외라고 볼 수 있고, 이런 이유로 입을 통한 외부 환경과의 상호 작용이 마이크로바이옴을 사람마다 다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의 장 속에는 수많은 균들이 살고 있는데, 사람이 음식을 섭취하면 장 내에 있는 이 세균들이 다양한 대사 과정을 거쳐서 음식물을 다양한 성분으로 변화시켜 흡수되거나 버려지게 합니다. 따라서,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마이크로바이옴의 차이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건강한 사람의 분변을 이식하여 약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사람마다 다른 면역체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쉽게 적용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레비요타의 예는 이 기술이 앞으로도 대단히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산균이 장에 좋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지만 이걸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이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네덜란드 바이오테크 기업 아르겐엑스가 신속심사 바우처 구매

최근 네덜란드의 바이오테크 기업 아르겐엑스(Argenx)가 미국의 블루버드바이오로부터 FDA의 신속심사 바우처를 1억 달러 이상의 가격에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블루버드바이오는 진테글로(Zynteglo)와 스카이소나(Skysona) 등 두 건의 유전자 치료제 허가를 취득하면서 두 건의 희귀 소화질환 신속심사 바우처를 획득했습니다. 이 중 하나를 아르겐엑스에 판매하기로 한 것입니다. 아르겐엑스는 이 신속심사 바우처를 자사의 성인 전신성 중증 근무력증(gMG) 치료제인 에프가티지모드 피하 주사제의 신속 심사에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 FDA는 새로운 약물의 허가를 내주기 위해 통상적으로 1년 이상의 검토 기간을 거치게 되됩니다. 이 신속심사 바우처를 가지고 있는 기업에겐 이 기간을 6개월로 줄여주고 있습니다.
 
세계 시장 기준으로 1년 매출액이 10억 달러를 넘으면 블록버스터 약물이라 말합니다. 6개월의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블록버스터 약물을 기준으로 하면 5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셈입니다. 게다가 신약은 시장에 먼저 나오는 제품이 대단히 큰 이점을 누리게 되기 때문에, 많은 제약사들에게 신속심사 바우처는 매우 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놀이동산에서 줄 서지 않고 빠르게 놀이기구를 타는 것과 유사해 보이는 이런 자본주의적인 일을 왜 FDA가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FDA는 이 바우처를 소아 희귀질환에 대한 약물을 개발하고 허가 받는 기업에게 일종의 인센티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시장 논리로는 약물 개발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게다가 소아 희귀질환이라고 하면 성인 대상의 약물 개발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결국 이 신속심사 바우처는 좀더 많은 회사들이 소아 희귀질환 약물 개발에 뛰어들게 하는 몇 안되는 인센티브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실제 약물 판매를 통해 얻는 수익보다 이 바우처의 판매가 더 큰 경제적 유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 신속심사 바우처 제도에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아마도 지나치게 자본주의적인 제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휙 하고 지나가서 바로 탑승을 하는 고객들을 보고 느끼는 불편함과 비슷한 느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티켓이 죽음을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 희망이 없는 어린이를 살려낸 대가로 받는 것이라면 좀더 넉넉한 마음으로 인정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 필자는 연세대학교 화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유기화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싱가포르국립대학교, HK이노엔 신약연구센터를 비롯해 다양한 연구소에서 15년 이상 신약개발 연구를 수행했다. 2019년 AI 신약개발사 스탠다임에 합류해 현재 글로벌전략본부장 및 합성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실험실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경계에서 두 분야의 융합을 위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김한조 스탠다임 합성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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