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가 찜했던’ 서울옥션, 소더비 품으로?…판도 바뀌는 미술시장
[격변의 미술경매시장]② K-미술경매 시장, 지각변동 예고
영국 소더비, 서울옥션 지분 안고…한국 시장 재진출 추진
증권형 토큰(STO) 발행 허용 방침에 조각투자 시장 활기
치열한 눈치 싸움의 현장. 입찰자들은 경매사가 부르는 가격에 맞춰 경쟁적으로 번호판을 들어올리며 소리없는 경쟁을 벌인다. 미술품 경매시장이 격변기를 맞고 있지만 지난 24년간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은 1830배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글로벌 미술 전문 조사기관 아트프라이스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부터 2022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까지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추이를 분석한 결과, 전체 낙찰총액은 약 2조5354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출품 작품은 30만4846점, 낙찰 작품은 19만4044점이다.
단기간 성장을 이룬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에서의 지각변동도 예상되고 있다. 서울옥션이 세계 2대 경매회사 중 한 곳인 영국 소더비(Sotheby’s)에 지분 매각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 미술시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신세계가 서울옥션 인수에 관심을 보이며 미술경매시장 진출 의지를 보였지만 인수 가격에 대한 의견 차이 등으로 인수가 불발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280년 역사 소더비 vs 갤러리 힘주는 신세계
업계에 따르면 서울옥션은 글로벌 경매업체 중 하나인 영국 소더비에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26일 서울옥션이 소더비를 잠재 매도자 중 하나로 정하고 티저레터를 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업계의 시선이 쏠렸다. 티저레터란 잠재 투자자에게 매각물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제공해 투자관심을 유도하는 투자유인서다.
티저레터엔 이호재 회장(13.31%)을 포함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 약 31%를 매각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업계에 따르면 매각가격은 2000억원대가 거론된다. 양측은 이르면 다음 달 중 지분 인수도 계약을 마무리할 계획으로 현재 인수 가격 등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서울옥션의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 지분은 556만666주(지분율 31.28%)다. 이 외에 자사주 93만7249주(5.27%), 신세계 85만6767주(4.82%) 등이 주요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소더비가 이호재 회장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인수하면 서울옥션의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소더비는 크리스티(Christie’s)와 함께 세계 2대 경매 시장으로 평가받는 경매 전문 회사다. 1744년에 창립한 소더비는 28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90년인데, 2000년대 초 돌연 철수를 단행했던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재차 한국 시장 진출을 위해 서울사무소를 차린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아직 확인된 바는 없다.
신세계의 서울옥션 인수설은 지난해 8월부터 제기된 바 있다. 실제 신세계는 지난 2021년 12월 서울옥션 주식 85만 6767주(4.82%)를 약 280억원에 확보하고, 백화점 3사 중 유일하게 아트 MD(상품기획) 직군을 새로 만들기도 하며 미술 사업에 의지를 보였다.
신세계그룹은 1963년 신세계화랑을 시작으로 국내 업계에서 가장 먼저 미술품을 백화점 사업에 도입한 기업이기도 하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3층 아트 스페이스의 경우 매달 100여점의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옥션 지분투자 이유에 대해서는 “백화점 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갤러리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울옥션 인수 건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서울옥션 인수와 관련한 것은 지난해 공시 이후에 아직 진전된 게 없다”며 “계속해서 검토 중이고 지금으로서는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옥션 측도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공시에 나와있는 내용이 현재로선 전부로, 신세계와 매각 논의가 완전히 끝이 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증권형 토큰 발행·유통 허용되나
유통업계와 증권업계에서도 서울옥션의 거취에 관심을 쏟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증권형 토큰(STO) 발행과 유통을 전면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히면서 미술품 등 조각투자 시장 확대에 대한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옥션 주가는 올해 들어 40% 가까이 올랐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월 한 달간 서울옥션은 35.98%, 케이옥션은 39.85% 상승했다.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경매 규모에서 국내 1, 2위를 차지하는 최대 미술품 경매사다.
서울옥션이 소더비의 품에 안기게 되면 양대산맥인 케이옥션과의 경쟁구도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케이옥션은 지난해 초 상장 이후 시장 투명화와 대체불가토큰(NFT) 진출 등 사업 확장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STO에 대한 관심은 온라인 경매 시장 성장과 맞닿아 있다. 온라인 경매의 경우 처음 미술품 시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많이 개최되고 저렴한 가격대의 작품도 있어 소액으로도 투자 경험을 해볼 수 있어 최근 각광받고 있다. 미술품 경매시장에 뛰어드는 신규 고객의 나이도 점점 어려지고 있어 업계에서는 관련 시장에 대한 전망도 밝게 보고 있다.
글로벌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이학준 한국 지사 대표는 “2021년 전 세계적으로 미술품 가격이 폭등하며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며 “코로나19와 함께 아트테크(아트+재테크) 열풍이 시작됐고, 미술품 거래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되는 고객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어 일찍 미술품 거래를 시작하는 만큼 오랫동안 시장을 끌고 갈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어 업계 안팎에서 매우 긍정적인 변화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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