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4억6000만원’에 팔린 박수근 ‘노상’…후끈 달아오른 케이옥션 ‘새해 두번째 경매’ [가봤어요]

3개월만 최고수준 낙찰률…“미술경매, 열기 회복할 기미 보인다”
박수근, 윤형근, 이우환 등 ‘블루칩 작가’ 회화부터 민속품까지

22일 오후 4시, 서울시 신사동 본사에서 케이옥션의 올해 두번째 오프라인 경매가 개최됐다. [사진 김서현 기자]

[이코노미스트 김서현 기자] “4억6000, 4억6000, 4억6000. 땅땅땅. 낙찰입니다”

한국 근대 미술의 자존심, 박수근 화백의 ‘노상’이 경매 현장에서 4억6000만원에 팔렸다. 작품이 낙찰을 확정짓는 순간, 박수가 쏟아졌다. 현장 입찰자뿐 아니라 서면, 전화, 온라인 창구를 통해 실시간으로 경매에 임하던 컬렉터들까지, 한마음으로 주인을 찾아간 작품에 축하를 전했다.

지난 22일 오후 4시, 서울시 신사동에 위치한 케이옥션 본사에서는 올해 두번째 오프라인 경매가 개최됐다. 회화 작품부터 서예, 민속품까지 포괄해 총 78점(45억원어치)이 출품됐다. 이번 경매는 박수근을 비롯한 윤형근, 이우환, 박서보 등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꾸려졌으며 이성자, 천경자, 최욱경과 같은 여성 작가들, 야요이 쿠사마, 데이비드 호크니 등 해외 미술작가들도 함께 구성됐다.
 
박수근·김인승 등 ‘근대 미술사’ 족적 남긴 작품들 수요 돋보여

박수근 작가의 ‘노상’


이번 경매 대표작인 박수근 ‘노상’은 4억6000만원에 낙찰됐다. 해당 작품은 주요 전시 이력만 수 차례로, 프리뷰 때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지난 1995년 갤러리현대에 ≪박수근 30주기 기념전≫을 시작으로 ▲1999년 호암갤러리 ≪우리들의 화가 박수근≫展 ▲2010년 ≪박수근 45주기 기념전-국민화가 박수근≫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까지 박수근을 대표하는 전시에 모두 소개된 바 있다.

박수근 작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 전쟁을 겪어 폐허가 된 창신동에서 남은 일생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박수근은 함께 암울한 시대를 보낸 장터의 사람들을 애정 어린 눈길로 화폭에 담아내곤 했다. 이번 출품작 ‘노상’은 삶의 고난과 역경 가운데 변치 않고 지속된 창작열과, 자신만의 토속적인 기법을 개발한 박수근의 예술혼이 가득 담겨 있다. 

‘노상’이라는 제목에서도 엿보이듯, 박수근은 종종 바깥 공간을 배경 삼아 그림을 그렸다. 단순히 길을 걷는 사람부터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 그림을 그리는 소녀와 거리를 뛰노는 아이들까지. 박수근이 살았던 전후 시대, 작가와 사람들에게 노상은 바로 삶의 터전이자 휴식 공간이었고, 또 만남과 쉼의 장소였다. 

김인승 작가의 ‘무희(1946)’. [제공 케이옥션]

김인승 ‘무희’ 역시 낙찰액 3100만원을 기록하며 1300만~4000만원 선으로 설정했던 추정가 상단에 낙찰됐다. 이 작품은 김인승 작가의 주요 소재인 여성 무용수를 그린 작품이다. 차분하고 잔잔한 붓질로 단정한 형태를 표현했으며, 그윽하고 은은한 색조가 김인승의 아카데믹한 화풍을 잘 드러낸다. 김인승의 초기 여성인물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미가 커, 작품의 가치 제고를 견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인승 작가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한국 서양화 1세대 화가’로, 한국 근대화단에서 전형적 화풍을 구축한 대표적 작가로 평가받는다. 대상을 면밀하게 관찰해 정확하게 화면 위에 표현하고, 이에 주관을 가미했다. 이로써 새로운 리얼리즘의 표현을 시도했다는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가격 허들 낮춘 종이 작품 인기…여성작가 ‘이성자’ 작품은 아쉽게 유찰

김환기 작가의‘무제(1970)’. [제공 케이옥션]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접할 수 있는 ‘종이’ 작품도 좋은 낙찰률을 보였다. 종이에 유채로 그린 윤형근의 ‘무제’(1986)는 6800만원, 한지에 혼합 재료로 그린 김환기의 ‘무제’(1970)는 7500만원, 종이에 수채로 그린 이우환의 ‘조응’(1936)은 3800만원에 낙찰됐다.

특히 김환기의 뉴욕시대 1970년 작품 ‘무제’에서는 후기 전면점화로 바뀌어가면서 작가가 시도한 여러 조형 실험을 확인해볼 수 있다. 깊고 신비한 색감의 푸른색을 사용해 서정 세계를 심화시켰으며, 자연 풍경이 점·선·면으로 구성된 조형적 요소로 발전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성자 작가의 ‘Le Temps Sans Obstacle’. [제공 케이옥션]

또 이성자, 천경자, 최욱경 등 주요 여성 작가들의 작품도 눈에 띄었다. 한국의 이미지들을 서양의 추상사조에 접목시킨 이성자, 전통 한국화를 벗어나 독보적인 채색화풍을 구축한 천경자, 독자적인 추상세계를 구축한 최욱경은 모두 한국 화단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한 여성 작가들이다. 

하지만 이성자의 ‘Le Temps Sans Obstacle’은 아쉽게 유찰됐다. 이 작품은 그의 60년 작품 인생 중 1960년대 ‘여성과 대지’ 시기의 연작이다. 유년 시기의 아련한 기억을 비롯해, 이별한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반원, 네모, 원, 세모 등 추상 기호들로 빚어낸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 역시 직역하면 ‘장애물 없는 시간’을 뜻한다. 

케이옥션 관계자는 “지난 3개월간의 성과치를 비교했을 때, 낙찰률이 상당히 높았다”며 “유찰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작품이 낙찰돼 분위기가 아주 좋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글로벌 자산 시장이 조금씩 살아나고, 금리 인상 기조가 더 악화되지 않으리란 기대감이 경매 활성화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술 경매 열기가 앞으로 더욱 더 회복될 수 있으리란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 日 기시다 “인태·글로벌 과제 대처 위해 양국 공조 긴밀화”

2尹, ‘中 2인자’ 中리창 만나 “서로 존중하며 공동이익 희망”

3 윤 대통령 “한중, 양자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평화·번영에 긴밀히 협력”

4집값 상승장 오나…강남·서초·용산 아파트, 전고점 98~99% 수준으로 회복

5경북 고령군, K-Festival 2024 서비스 부문 대상 수상

6금융권 불합리한 PF수수료 적발…금감원 “관행 개선 추진”

7 대통령실 “연금개혁 3일 만에 대타협 어려워…22대 국회서 논의”

8 의협, 30일 전국 6개 지역서 촛불집회...“한국의료 사망선고의 날”

9천정부지 치솟는 코코아 값에...초콜릿·빼빼로 가격도 오른다

실시간 뉴스

1 日 기시다 “인태·글로벌 과제 대처 위해 양국 공조 긴밀화”

2尹, ‘中 2인자’ 中리창 만나 “서로 존중하며 공동이익 희망”

3 윤 대통령 “한중, 양자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평화·번영에 긴밀히 협력”

4집값 상승장 오나…강남·서초·용산 아파트, 전고점 98~99% 수준으로 회복

5경북 고령군, K-Festival 2024 서비스 부문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