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미쳤어요” 20년간 눈물의 땡처리…토종 잡화브랜드 ‘쌈지’ [망했어요]
‘오늘만 팔고 간다’더니 ‘20여년 간 부도’ 정기전
쌈지길에 딸기테마파크까지...무리한 사업 확장
외국 패션브랜드 공세에 못 이겨 결국 '부도'
[이코노미스트 송현주 기자] ‘눈물의 폭탄세일’ ‘오늘만 팝니다’ ‘우리 사장님이 미쳤어요’
길을 가다보면 이러한 호객용 문구가 쓰여진 매장을 한번쯤은 봤을 법하다. 폐업한 가게 등에서 팔다 남은 옷을 대량으로 덤핑하는 걸 소위 ‘땡처리’라고 하는데, 여러 번 할인해도 팔리지 않는 재고 의류를 털어 내기 위해 마지막 단계에서 정상 가격의 10% 안팎에 팔아 치우는 것을 말한다. ‘재고로 남아 쓰레기가 될 물건’들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저렴한 가격에 처분하는 방식이다.
‘오늘만 팔고 간다’더니 일주일, 한달, 일년을 넘어 ‘20여년 간 부도’ 정기전을 이어가고 있는 브랜드 상설할인매장이 있다. 바로 국내 1세대 토종 잡화브랜드 ‘쌈지’(SSAMZIE)다. 쌈지는 천호균 대표이사가 1993년 설립한 가죽 제품 전문업체 ‘레더데코’를 전신으로 한다. 쌈지라는 이름은 레더데코 디자인실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던 천 전 대표의 부인 정금자씨의 아이디어다. 속담에도 쓰이고 레더데코의 주력 제품이던 핸드백과도 잘어울려 1999년 브랜드명으로 ‘쌈지’가 아예 바뀌었다.
대표 '딸기' 캐릭터...20대 주 고객층 '한국미+외국 트렌드' 인기
천 대표는 아이삭, 놈, 진리 등과 같이 쌈지 이외의 브랜드를 계속 론칭해갔다. 당시 쌈지의 캐릭터 ‘딸기’도 삐뚤빼뚤한 선이 매력적인 딸기머리 소녀는 한국을 대표하는 토종 캐릭터 중 하나 학생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딸기 캐릭터의 인기와 더불어 책가방, 필통 등 다양한 아동용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20대가 주고객층이었던 쌈지는 ‘한국적 미의식과 정서’를 바탕으로 외국의 패션 트랜드를 우리 정서에 맞게 디자인해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핸드백, 지갑, 구두에 이르기까지 각종 패션 잡화에서 아이디어 번뜩이는 제품들을 속속 선보이며 국내 대표 잡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창업 5년 만인 1998년 매출 544억원에서 20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2001년엔 코스닥 시장 입성까지 성공했다.
이후 천 대표는 회사 사세 확장을 위해 패션 이외 사업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실험적인 디자이너 브랜드였던 ‘마르틴 싯봉’의 지분 66%를 20억원에 인수하고, 테마파트 ‘딸기가 좋아’, 인사동에 독특한 문화공간인 ‘쌈지길’을 개관하며 매출 2000억원 규모에 직원 1000여명에 가까운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내리막길...영화·테마파크 등 무리한 사업확장 탓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많은 인기와 호황을 누리던 쌈지였지만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실적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2년간만 흑자를 기록했을 뿐 2003년부터는 줄곧 적자를 이어갔다. 주력 사업인 패션 부문이 2000년대 이후 내수경기 침체와 해외 수입 명품 브랜드 강세에 밀려 고전하기 시작한 데다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의 패션 욕구의 기대치에 못미친 영향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패션 외에 엔터테인먼트, 예술, 영화, 부동산, 테마파크 등 새로운 사업을 지속, 확장해나가며 패션 부문의 경쟁력은 더욱 떨어져갔다. 쌈지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2007년 영화사업에까지 진출하며 무방비도시, 인사동스캔들 등 2개의 영화를 제작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영화 제작을 위해 영화사 아이비전을 인수하면서 엄청난 자금이 들어간 데다 제작 투자한 영화마저 흥행에 실패하자, 쌈지는 결국 회사를 매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사기 행각으로 드러나 사채업자가 회사를 점거하고 임금체불이 이어졌다. 당시 쌈지는 돌아오는 어음을 결제하지 못할 정도로 자금 상황이 취약해졌고, 천 대표는 결국 2009년 쌈지에서 퇴진했다.
쌈지 역시 브랜드가 나온 지 18년 만인 2010년에 최종부도, 상장폐지가 확정됐다. 최종부도 처리되며 브랜드의 사업권 역시 다양한 회사에 넘어가 쌈지의 물건으로 팔리는 물건이 쌈지 브랜드의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아직도 상설할인매장이나 온라인 이커머스에 쌈지 이름이 쓰인 물건이 팔리고 있는 이유다.
쌈지는 부도를 맞았지만 천 대표는 최종 부도처리 전 쌈지의 문화 사업부 ‘어린농부’를 독립시켜 ‘쌈지농부’를 설립했다. 쌈지농부는 천 대표의 아들이 물려받고, 유아놀이교육 전문업체 ‘딸기봐봐’는 그의 딸이 대표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쌈지와 같은 부도난 토종 브랜드가 의외로 많다”며 “기존 주력사업이 잘되면 거기에 투자, 개발하지 않고 다른사업으로 무리하게 눈을 돌리면서 결국 부도를 맞게 된 케이스”라고 말했다. 이어 “한번 입소문이나 아이템으로 대박이 난다고 해도 꾸준한 인기를 얻기가 어려운데 그걸 지켜내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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