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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원짜리 바나나맛을 단돈 50원에”…빙그레표 49살 ‘뚱바’ [1000억 식품의 비밀]

‘우유’ 대중화 일등공신…‘고급 과일’ 맛으로 승부
비건, 메로나맛 등 출시로 ‘연령층 확대’ 나서

빙그레 대표 효자상품,‘바나나맛 우유’는 내수, 수출 합산 매출 2000억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제공 빙그레]

[이코노미스트 김서현 기자]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고? 아니다. 우리 추억 속 바나나는 명백한 노란색이다. 학창 시절 머리를 짓누르는 학업에 지쳐 매점으로 달려가게 만든 ‘그것’이 늘 샛노란 빛깔로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바로 빙그레의 전체 매출 20% 이상을 책임지는 효자 상품, ‘바나나맛 우유’다. 

바나나맛 우유는 지난 1998년 300억원, 2001년 6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2007년 가공유 제품으로는 사상 최초로 연 매출 1000억원대를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 이후로도 꺾이지 않는 기세로 성장해 지난해 내수, 수출 합산 매출이 약 2000억원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낯선 우유·바나나를 친숙하게 맛보도록

“키 크려면 우유 마셔야지”라는 문장이 유행하기 시작한 시점은 생각보다 오랜 옛날이 아니다. 지난 1970년대만 해도 우유는 한국 사회에 명백한 불청객이었기 때문이다. 막걸리와 비슷한 비주얼에 밍밍한 맛, 게다가 습관적으로 나는 배탈까지. 당시 우유를 대하던 국민의 냉담한 평가다.

이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우유와 대중 간의 거리를 좁히는 과제에 즉각 응한 곳이 바로 빙그레(당시 대일유업)다. 대중이 우유에 더 친숙함을 느낄 수 있도록 ‘아이도 어른도 좋아할 만한 맛과 생김새를 지닌, 새로운 우유’라는 신제품 개발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이에 지난 1974년, 우유와 궁합이 맞는 과일을 찾다 최종 후보군에 오른 것이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던 고급 과일 바나나다. 당시 바나나는 수입산 고급 과일로, 한 개의 가격이 500~1000원 선이었다. 버스 요금 10원, 자장면 100원 시대에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가격대다. 이런 값비싼 바나나의 맛을 단돈 50원에 느낄 수 있는 바나나맛 우유는 이러한 측면에서 선물과도 같은 등장이었다.

배불뚝이 디자인, 문화재 ‘달항아리’에서 영감 얻어

마트 매대에 바나나맛 우유가 진열돼 있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바나나맛 우유’라는 단어를 꺼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다름 아닌 배불뚝이 모양의 달항아리 용기다. 학생들 사이에선 일명 ‘뚱바’라는 별명이 바나나 우유를 대신해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자습실에서 공부에 몰두하다 쪽 빨아먹는 뚱바 한 입,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 지칠 때쯤 맛보는 특유의 달달함은 학생들에게 소소한 낙이었다.

빙그레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우유 용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유리병과 비닐 팩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폴리스티렌을 이용한 지금의 용기다. 용기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도 숨어있다. 빙그레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용기 모양을 고민하던 개발팀이 ‘도자기 박람회’를 방문해,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항아리를 접하게 되면서 뚱바의 모티프가 단번에 정해졌다.

당시 우유 용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유리병과 비닐팩과 차별화를 둘 수 있는 소재로 폴리스티렌 소재의 ‘달항아리’ 용기를 채택하게 된 것이다. 최근 조선의 달항아리 작품이 여러 미술전시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수요를 예측하는 선구안이 예로부터 발휘됐던 셈이다.

달항아리 형태를 구축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바나나맛우유 용기는 다른 용기들에 비해 제작 과정이 복잡하고, 더 많은 비용이 든다. 흔히 사용하는 사출이나 압착 방식이 아닌 분리된 상, 하컵을 고속 회전시켜 마찰열로 접합하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해당 설비 제조사가 없어져 이런 용기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전 세계에서 빙그레 하나뿐으로, 그 희소성을 인지한 빙그레가 지난 2016년에 바나나맛우유 용기모양 자체를 상표권으로 등록하기도 했다.

한편 바나나맛 우유는 확고히 소비자 연령대를 다양화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이어갈 전망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지난달 출시한 메로나맛 우유, 오는 이달 말 출시 예정인 비건 바나나맛 우유다. 바나나맛 우유의 출발 지점이 우유 섭취 ‘권장’이었다면, 이제는 다양한 형태의 소비를 이끌어내겠다는 포부다. 

빙그레 관계자는 “메로나맛 우유는 앞서 출시한 바 있는 ‘메론맛 우유’의 재출시 요청에 응하면서 만들어졌고, 비건 우유는 최근 ‘건강한 식습관’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수요에 따라 기획된 제품”이라며 “중장년층에게 대표상품으로 각인돼 있는 바나나맛 우유가 더 다양한 세대를 아우를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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