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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택조합, ‘남의 땅’에 아파트 지을 수 있을까

[부동산 투자 주의보] ② 조합원 모집, 아파트 분양과 유사한 형태로 눈속임
토지매입 못한 채 사업비만 소진…토지주에게도 직간접 피해

지역주택조합이 다수 위치한 동작구 내 한 부동산 홍보물 모습. [사진 민보름 기자]

[이코노미스트 민보름 기자] 몇 년 전, 내 집 마련을 꿈꾸던 40대 직장인 A씨(영등포구)는 이른 퇴근길에 모델하우스를 구경하라는 한 홍보요원 손에 이끌려 ‘아파트 홍보관’이라는 곳에 방문하게 됐다. 홍보관 안팎에는 유명 연예인 얼굴이 담긴 광고물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당시 인근에서 청약을 받던 1군 건설사 브랜드 아파트보다 공급가격이 저렴했던 점이 A씨 마음을 ‘혹하게’ 했다. 홍보관 직원이 내민 표에는 계약금 및 중도금 납부 일정과 금액이 적혀 있어 마치 아파트 일반분양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파트가 지어진다는 곳에 대해 알아본 A씨는 해당 지역에선 신규 주택사업이 진행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홍보관 직원들은 아파트 분양을 하던 것이 아니라 ‘지역주택조합’의 조합원을 모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씨가 방문했던 홍보관 사례처럼 지역주택조합은 일부 업무대행사가 우선 조합원부터 모집하며 분담금 등을 받아 그 자금으로 사업부지를 매입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연로한 임대인이 세를 받아 생계를 꾸려가는 다가구 주택이나 상가가 많은 지역에선 토지주들로부터 부동산을 사들이는 등 개발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후죽순 지역주택조합, 돈 낸 조합원만 피해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입수한 ‘지역주택조합 현황 자료’를 보면 2017년 이후 서울시  설립된 지역주택조합은 총 19개다. 그러나 이 중 착공에 들어간 곳은 4개 조합에 불과했다. 부산에서도 지난해 5월 기준 총 98개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추진됐으나 최종 입주까지 완료를 마친 사업은 9개에 그쳤다. 

이 같은 사업지연의 주 이유로는 토지확보 문제가 꼽힌다. 지역주택조합은 통상 지역에 주택 등을 보유한 토지주들이 조합원으로 조합을 설립해 자신들의 땅에 도시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일반적인 조합방식과는 달리 아파트를 짓겠다며 조합원을 모으면서 토지매입 비용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상 토지소유권의 95%를 확보해야 사업계획승인을 받을 수 있다.

일부 성공사례를 제외한 지역주택조합 대부분이 토지주 설득에 실패하는 등 이 토지확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금을 제공한 가입 조합원들에게 가게 된다. 
사당2동 지역주택조합 홍보관 모습. 2018년 사업 추진 이후 5년 여 동안 아직 조합설립이 되지 않았다. [사진 민보름 기자]

대표적 사례가 서울숲 인근 유명 고급주택인 ‘트리마제’였다. 해당 부지에는 2000년부터 지역주택조합 방식으로 개발이 추진됐으나 일부 토지주들이 소위 ‘알박기’를 한데다 금융위기가 시장을 덮치면서 조합이 부도를 냈다. 이로 인해 결국 분양권리 등을 모두 뺏긴 일부 조합원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조합장 또는 업무대행사가 의도적으로 토지확보율을 속여 조합원을 모집한 뒤 받은 계약금을 임의대로 사용하는 사례도 흔하다. 

2월 15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이상주 부장판사)는 구로지역주택조합의 전 업무대행사 대표 류모씨와 전 추진위원장 이모씨에게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각각 징역 30년과 추징금 62억1909만원, 징역 12년과 추징금 550만원을 선고했다. 조합원 모집 대행사 이모씨는 사기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다. 이들은 토지사용권원(토지사용승낙서)을 확보한 토지가 전체의 20~30%에 불과한 데도 2021년까지 토지확보율을 60~80% 수준으로 올려 아파트를 짓겠다며 조합원을 모집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들이 피해자 402명으로부터 206억원을 편취한 것으로 판단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토지매입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서 조합원들에게 걷은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문제가 생기면 대표자를 바꿔가며 사업을 이어가는 지역주택조합들이 있어 문제”라면서 “지역주택조합 역시 결국 조합이므로 조합원들이 투명하게 운영하도록 감시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지주택 엮인 토지주, “땅주인들이 재개발도 못해”

이 같은 문제가 이어지자 2020년 7월 정부는 주택건설 대지의 50% 이상 사용권원을 확보해야 조합원 모집이 가능하도록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조합설립 인가 시에는 15% 이상 토지 소유권과 80% 이상 사용권원을 확보해야 하며 조합원 모집 신고 수리 후 2년 내 조합설립인가를 받지 못하면 총회 의결을 통해 조합 해산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지역에선 해당 법령 시행 전부터 추진된 지역주택조합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조합원뿐 아니라 토지주 일부도 피해를 호소하는 상황이다. 2018년부터 사당2동지역주택조합이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지역의 한 토지주는 “지역주택조합이 마음대로 구청 허가를 받아 외부에서 조합원을 모집하고 사업을 추진해 정작 토지주들은 재개발을 원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해당 지역에 지역주택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건영섬유 부지를 확보해야 한다. 지역주택조합에서는 이 공장부지 매입이 진행되지 않자 영업 중인 건영섬유 본사에도 항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지역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몇년 전부터 지역주택조합 측 직원들이 한창 오고가며 활동을 했으나 코로나19로 토지주들이 대면 접촉을 꺼리면서 조합 활동도 잠잠해진 것 같다”면서 “건영섬유 공장 주인이 부지를 매각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매물을 소개할 때 지역주택사업 개발 가능성을 언급하거나 관련 매물을 거래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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