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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B의 치명적인 리스크 관리 실패

[SVB 파산 나비효과] ⑥
저금리 시기 중장기채에 투자…금리위험 간과
헤지 규모 줄여 미실현손익 따른 자본 충격 고스란히
국내 은행 SVB와 다르지만 금리리스크 관리해야

[김선욱 IBA홀딩스 대표]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은 예금의 급격한 유출(뱅크런)로 인해 발생했다. 미국 금융 시스템에서 뱅크런이 발생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뱅크런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때도 발생하지 않았다. 미국이 뱅크런을 경험한 가장 최근이 1994년이다. 

김선욱 IBA홀딩스 대표
작년 연준이 급격히 금리를 인상하기 전, 10년 동안은 유동성이 풍부하고 시장금리가 낮아 미국은행들은 대출을 주고 남은 잉여 예금으로 수익률을 쫓아서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의 채권에 투자했다.

일반적으로 단기 국채 또는 장기 국채, 공적 보증을 받는 주택저당증권(Agency MBS)와 같은 안전 자산에 투자했는데 미국 은행이 잉여 예금을 국채나 Agency MBS에 투자하는 일은 저금리 시대에 흔한 일이었다. 이번 문제는 SVB가 예금으로 중장기 채권에 투자하면서 생긴  자산-부채간 만기불일치의 문제라기 보다 작년 급격한 금리 인상이 초래한 보유채권의 시장가치 하락에 대한 리스크 관리 실패와 SVB의 독특한 예금조달구조 한계성에 따른 문제로 볼수있다.

주요 조달재원인 예금구성의 질적 불안정성 

SVB 뱅크런 사태의 배경은 SVB의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에 있다. SVB는 미국의 기술 부문을 위한 은행이었다. SVB는 지난 10년 동안 눈부신 성장을 경험했다. 고객 기반은 주로 기술과 생명공학에 중점을 둔 신흥 성장 기업과 틈새 시장의 중간규모 기업으로 구성됐다. 반면, 개인 고객은 7%에 불과 했다.

테크 기업들의 자본유치가 활발했던 2018년에서 2022년 사이에 SVB의 수신은 500억 달러에서 2000억 달러로 4배 증가했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예금을 대출로 운용하는데 예금이 단기간 과다하게 유입되는 바람에 대출수요 초과분을, 저금리시대에 늘 그랬듯,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금리가 높은 상품인 국채, Agency MBS 등 중장기채에 투자했다. 2022년 말 SVB는 총자산의 55%에 해당하는 1200억 달러의 채권을 보유했으며 이는 모든 미국 은행 평균의 두 배 이상인데 그만큼 코로나, 통화 완화 시기에 붐을 이루었던 테크 기업들에게 폭발적으로 자금이 유입됐다는 의미다.

결국, 과다한 규모로 손쉽게 유입된 돈은 통화긴축 시대로 접어들면서 빠르게 이탈했다. 게다가 법인고객 예금은 일반적으로 개인고객 예금보다 가격에 더 민감하고 이탈 속도가 빠르다. 왜냐면 상대적으로 거액이기 때문이다. 테크 기업은 투자받은 자금을 은행에 예치했는데 자금성격상 규모가 대부분 컸다.

SVB의 예금 잔고 중 25만 달러 미만인 계좌에 있는 돈은 3%에도 못 미쳤다. 이는 업계 전반의 평균인 40%보다 훨씬 낮다. 25만 달러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예금보험이 적용되는 최대 금액이다. 자연스럽게 FDIC 보장액수 이상을 예치한 법인 고객은 주거래 은행의 재무 상태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경우 예치금을 신속하게 인출하려는 의욕이 강하기 마련이다. 

예금 고객층이 다양하지 않고 테크 기업에 쏠려 있으며 거액 예금이 많았던 불안한 예금조달 구조가 SVB 파산을 초래한 뱅크런의 근본적 배경이다.

지난 13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웰즐리 지역에 위치한 실리콘밸리뱅크 지점 앞에서 고객들이 예금인출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시장리스크 관리의 실패

지난 8일 SVB는 점증하는 예금이탈 재원 마련을 위해, 대차대조표상의 매도가능증권(AFS) 부문에 보유하고 있던 국채, Agency MBS 등 215억 달러 어치 채권을 18억 달러의 손실(8.4%)을 보면서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매각하고 손실 보전을 위해 22억5000만달러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보도로 인해 고객들을 패닉에 빠졌고 SVB 주가는 폭락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뱅크런을 촉발했다. 

다음날인 3월 9일 하루동안 SBV 총수신 4분의 1에 해당하는 420억 달러가 인출되면서 40년 업력의 미국 16위 상업은행 SBV는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여기서 SVB의 치명적인 리스크 관리 실책이 있다. 

첫번째는 이자율이 낮을 때 금리민감도가 높은 중장기 국채, MBS에 큰 돈을 투자 했다는 것이다. 국채와 MBS는 신용 위험 관점에서 매우 안전한 투자이지만 중장기채인 경우 상당한 금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은행 대차대조표는 투자자산을 중도 매도가능자산(AFS)과 만기 투자목적으로 보유하는 만기보유(HTM) 자산 두 그룹으로 나눈다. 

HTM 포트폴리오는 시장금리 변동에 따른 가격변동이 없어서 대차대조표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AFS 자산은 시장가격 변동에 따른 미실현 손익을 자기자본에 반영한다. 

지난해 지속적인 금리 상승으로 AFS 자산의 시장가격은 급락했고 미실현손실 형태로 자기자본도 꾸준히 감소했다. 이는 은행 경영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예를 들어, 늘어나는 예금인출에 대응하고자 작년 2분기부터 연방주택대출은행 차입을 통해 부족한 자금을 조달했는데 자기자본이 일정수준 밑으로 떨어지면서 차입에 제약이 생기는 식이다. 경영진은 ASF(매도가능)자산을 손절하고 단기채 위주로 자산을 재구성하려 했다.

두번째 실수는 금리 위험을 헤지하지 않은 것이다.  SVB는 지난해에 AFS 자산에 대한 이자율스와프(IRS) 파생상품 계약을 종료했다. 사실상 금리 헤지를 하지 않았다. 금리인상으로 채권 가격이 하락했지만, 은행은 금리 헤지 규모를 줄임으로써 대규모 채권 투자로 인한 미실현손실이 자기자본을 갉아먹는 것을 방어하는데 실패했다. 

고정금리대출 헤지수단 충분치 않아…딜레마에 빠진 국내 은행

일각에선 우리나라 은행들의 예금고객 구성은 다양화돼 있고 개인 고객의 비중이 높은데다 유가증권 보유량이 미미하므로 SVB 같은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부분적으로 맞다. 국내은행의 예금고객은 개인 42.9%, 법인 31.8%으로 SVB와 큰 차이가 있다. 또 예금보험 대상인 소액 예금이 대다수인 상황을 고려할 때, 뱅크런 위험은 확실히 낮다.

그러나 유가증권 보유 규모가 작아서 금리리스크 노출 염려가 없다는 말은 맞지 않다. 금리리스크에 노출된 자산은 유가증권(채권)만이 아니고, 대출도 포함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정금리인 유가증권 규모는 적지만, 은행이 보유한 고정금리 대출규모는 상대적으로 크다. 현재 이 자산의 금리리스크 노출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데, 정부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고정금리대출을 더 늘리라 요구하고 있고 마땅한 헤지 방법을 못 찾는 국내 은행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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