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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편’ 6.25 전쟁이 남긴 ‘상흔’, 작품으로 치유하다 [E-전시]

이중섭, 장욱진, 도상봉이 그린 ‘각양각색’ 6.25 전후시대 작품들
여성, 동양인 차별 맞서 사회적 메시지 담은 이불 작가 설치물도

신사동 케이옥션 아트타워에서 29일까지 진행되는 3월 메이저 경매 프리뷰 전시 전경. 오늘자 경매가 진행되면 해당 작품들이 제 주인을 찾아가게 된다. [사진 김서현 기자]

[이코노미스트 김서현 기자] 케이옥션 아트타워에서 오늘(29일) 진행되는 3월 메이저 경매에 앞서 프리뷰 전시가 펼쳐지고 있다. 전후 시대를 보낸 근대 작가부터 독재정권 시기를 견뎌낸 현대 작가까지, 지난한 세월을 작품에 담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장에 한데 모였다.

이번 경매에서 주목해볼 첫 번째 요소는 격렬했던 근대 미술사를 이끌어간 주요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도상봉, 오지호 7인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최근 성황리에 개최된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근대 미술에 대한 관심이 촉발돼, 근대 작가군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 더욱 관심이 쏠린다. 

그중에서도 이중섭, 장욱진, 도상봉이 1950년대에 제작한 작품은 전쟁 직후 처참하고 피폐한 환경에서도 가지각색의 개성을 녹여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케이옥션 관계자는 “이번 경매 출품작을 통해 같은 시대상 아래 다른 개성을 펼친 작가들의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중섭 작가(1916 – 1956)의 1956년작,‘돌아오지 않는 강’. 추정가액은 2~3억원이다.

이중섭의 ‘돌아오지 않는 강’은 지난 1956년 작가의 작고를 앞두고 그린 연작 그림이다. 유사 도상이 다섯 점이나 남겨져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손꼽힌다. 함박눈이 내리는 가운데 한 어린아이가 창가에 기대어 어딘가 풀이 죽은 듯, 애틋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그 뒤로는 머리에 바구니를 인 여인이 눈 속을 헤치며 걸어가는 모습이 펼쳐져 있다.

그리움의 대상은 가족인 것으로 풀이된다. 작품이 제작되던 시기 이중섭은 모두와 떨어져 홀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세상을 뜨기전까지 그림 작업에 몰두한 작가의 애절함이 전해지는 작품이다. 

장욱진 작가의‘소(1953)’. 추정가액은 1억8000만원에서 3억원이다. [제공 케이옥션]


장욱진의 ‘소’는 1953년작으로, 한가운데 자리한 소를 필두로 오른쪽에 내려앉은 새, 배경으로 깔린 마을 등 향토적 소재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원근법을 무시한 화면 구도와 단순한 채색으로 그림에서 활력이 느껴진다. 

이처럼 장욱진은 단순함의 미학을 추구하며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펼친 작가로, 일상적 이미지를 정감 있게 그려낸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번 작품 역시 그가 주된 모티프로 사용한 지부, 자연의 모습이 담겨 있다. 유족에 따르면 장욱진이 살던 고향 내판의 흙이 온통 붉고, 그곳에 사는 소가 무척 예뻤던 것으로 전해진다.

도상봉 작가의 작품, ‘국화(1959)’. 추정가액은 1억6000만원에서 3억원이다. [제공 케이옥션]

도상봉의 작품 ‘국화’는 1959년작으로, 작가가 추구한 정물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눈앞에 있는 꽃과 백자항아리를 단지 아름답게 표현하는 데 치중하지 않고, 엄격한 관조의 시선을 담았다. 


도상봉은 평생에 걸쳐 정물과 풍경을 그린 작가에 해당한다. 전후 시대 그려진 작품임에도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 있는 그림을 그려나갔다. 특히 꽃과 조선 백자를 즐겨 그린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 경매 출품작 역시 노란 국화를 소재로 그려진 작품이다. 노란색, 흰색 국화가 섞여있는 모습이 화면의 분위기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며 작가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구도와 균질한 붓터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불 작가의 작품, ‘알리바이(alibi, 1994)’가 전시장에 놓여 있는 모습. 추정가액은 200만~500만원이다. [사진 김서현 기자]

권위주의적 독재시기를 살아낸 작가, 이불의 작품도 눈길을 가로잡는다. 이불은 사회적 메시지를 작품에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가가 태어난 연도는 1964년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기이자 유신헌법이 제정되기 8년 전의 해다. 그는 좌익 정치 운동가였던 부모님과 함께 경찰들과 정부의 감시를 이곳저곳 피해다니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번 경매 출품작 ‘알리바이(alibi)’는 작가의 20분짜리 영상 작품 ‘laughing’ 시리즈에 등장하는 설치물로,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나비부인에는 ‘순종적인 동양여인’이라는 편견의 희생양이 됐던 인물 ‘초초상’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초초상의 캐릭터를 빌려, 여성이자 동양인으로서 차별받은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케이옥션 관계자는 “알리바이에는 여성성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는 이불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며 “나비 날개 파편이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손 안에 박힌 모습이 시선을 압도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케이옥션의 3월 메이저 경매는 오는 29일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에서 진행된다. 이번 경매에는 총 114점, 약 102억원어치 작품이 출품됐으며 한국의 근현대작가 작품 외에도 알렉스 카츠, 조엘 메슬러 등 해외 작가의 유수 작품들도 소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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