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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한마디에 촉각…천당·지옥 오가는 삼성‧SK

[논란의 반도체법]⓵
대규모 지원금 앞세우고 추가 조건 대폭 늘려
규제 일부 완화했지만, 기업들은 '글쎄'
尹대통령 "우리 기업 배려해 달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들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미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지원법에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미국 현지 투자 기업에 대규모 세액 공제 등 ‘지원’ 안이 공개되면 미소를 띠다가도 초과 이익 공유나 중국 투자 금지 등에 대한 ‘제약’이 발표되면 울상을 짓고 있다.

지난해 8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미국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에 서명했다. 해당 법안은 반도체 생산 보조금에 390억 달러, 연구·개발(R&D) 지원금으로 110억 달러 등 5년간 520억 달러(약 68조 원)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시장에 투자하면서 조 단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자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1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파운드리 1위 기업인 TSMC 등 주요 기업들이 대규모 미국 투자를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약 500만㎡ 규모 파운드리 기초공사를 시작했다. 현재 당초 예상한 투자액은 약 170억 달러로 우리 돈 22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기업이 반도체 지원법으로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이 총 설비투자액의 최고 15% 수준인데, 이를 근거로 계산하면 25억5000만 달러(약3조3000억원)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TSMC도 지난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건설할 공장 투자 계획 규모를 지난해보다 3배 늘린 400억 달러(약 52조6000억원)로 발표했다. 인텔은 오하이오주에 200억 달러(약 26조3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최대 1000억 달러(약 131조5000억원) 규모로 증설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미 상무부가 보조금 지급을 원하는 반도체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28㎚(나노미터·10억분의 1m) 미만 첨단 기술 관련 신규 투자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발표했고, 기업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미 중국에 진출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경우 추가 투자가 문제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왔다. 

여기에 추가 요구사항까지 나오면서 기업들의 고민은 더 커졌다. 미 상무부는 반도체 기업이 보조금을 신청하려면 ▲미국 반도체 공장 근로자와 공장 건설 근로자를 위한 보육 서비스 보장 ▲주식 환매 제한 ▲특정 초과 이익을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을 지난 2월 발표했다.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도 민감한 사안인데, 이런 조건까지 추가되면서 기업들의 속내는 더욱 복잡해졌다. 

이후 미 정부가 완화된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 세부 규정을 발표하면서 우리 기업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 기업들의 경우 중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최첨단은 아니어서 ‘10년 내 5% 확장’ 규정을 주로 적용받을 수 있다고 해석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 대한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에서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생산하고 있는데, 중국 투자가 막힐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우려가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바뀐 게 없다”는 견해도 있다. 우리 기업과 정부가 미국 정부를 비롯해 의회를 대상으로 중국 내 공장으로 첨단 공정 적용을 허용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사항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첨단 공정을 적용해 미세공정을 전환하고 생산성을 늘리는 게 메모리 반도체 사업성을 높이는 핵심인데, 첨단 장비를 도입하는 규제가 지속되면 타격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 세계 최초 3나노 반도체 시제품에 사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美, 철저한 자국 이익 우선…韓 “배려해 달라”

이런 상황은 미국 정부가 철저히 자국 중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에서 나온 결과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해 8월 반도체 지원법과 관련해 “법 시행의 첫 번째 목표는 미국의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 국가 안보를 해치는 어떤 지원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반도체 지원법 세부 사항 조정 시 미국 정부의 결정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우려하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달 초 미국을 방문하고 반도체 지원법과 관련해 “한미 양국 정부와 산업계가 그동안 반도체 공급망을 같이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우려가 되는 부분이 있다”며 “언론에서도 나오고 있지만 과도한 정보를 요청한다거나, 중국 비즈니스와 관련해서 제한을 많이 건다거나 (하는 부분이 특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워낙 변동성이 큰 산업인데 초과 이득 이런 부분들도 어떤 식으로 시행하느냐에 따라 상당히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3월 30일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반도체 지원법,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통상 현안과 관련해 “미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우호적인 방향으로 배려해 달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미 정부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보조금 지급 대가로 핵심 기밀로 여겨지는 민감한 정보를 요구하는 데 대해 “과도한 수준의 정보 제공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우려가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타이 대표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를 통해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동맹국 간의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구축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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