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초의 승부사’ 손이천 경매사가 전하는 韓 미술시장의 ‘큰 그림’ [이코노 인터뷰]
‘포스트 조정기’ 준비하는 미술계…“작가와 컬렉터가 캐스팅보트”
치솟은 글로벌 위상, 이제는 1·2차 시장 협업해 韓 존재감 확보해야
[이코노미스트 김서현 기자] “한국 미술시장은 이제 막 시작 단계에 다다랐어요. 작가, 컬렉터(수집가)와 함께 커나갈 일만 남았습니다.”
‘0.1초의 승부사’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미술 경매 현장을 누빈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이사)는 지금의 국내 미술 시장을 이렇게 진단했다. 10년 넘게 경매사로 활동하며 지금까지 세 차례 국내 시장 최고가를 경신하기도 한 손 경매사. 그와 만나 올해 새롭게 바라볼 미술 경매 시장의 흐름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투명하고 변화무쌍한 미술 경매의 매력
손 경매사가 몸 담고 있는 케이옥션에서 진행하는 경매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오프라인 메이저 경매’, 일주일 단위로 판매되는 ‘위클리 온라인 경매’,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프리미엄 온라인 경매’다.
그중에서도 케이옥션이 자랑하는 요소는 프리미엄 온라인 경매 안에 마련된 ‘아트 섹션’이다. 작품이 주가 되는 경매 시장에서 작가 자체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코너로 작가와 직접 상의해 기획전을 구성한다.
“경매에서 판매되는 작품의 90%는 위탁자인 컬렉터로부터 전달받은 작품들이에요. 초반에는 2차 시장인 경매에서 작가로부터 작품을 직접 들여 판매한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시선도 있었어요. 사실 이런 젊은 작가들을 중계해서 창출되는 수수료 비중이 크진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획전을 선보이는 이유는 작가를 소개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손 경매사는 미술 경매의 매력을 시장의 명료함이라고 봤다. 고가의 작품들이 주는 아우라에 여전히 진입 장벽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 미술을 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플랫폼이라는 설명이다.
“초보가 작품을 가장 접하기 쉬운 시장이 바로 미술 경매 시장이에요. 대중을 상대로 하는 퍼블릭 마켓이기 때문인데요. 사실 갤러리, 아트페어에서는 판매를 전제로 전시가 이뤄지는 것과 달리 작품 가격을 확인하기 쉽지 않잖아요. 경매에 나오는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한정적인 대신 시장성을 갖춘 작가로 평가받기 때문에 대중이 더욱 편하게 작품을 접할 수 있죠.”
지난 2021년 폭발적인 인기를 끈 미술 경매 시장은 지난해 낙찰총액이 반토막 수준으로 급락하는 등 조정기에 들어갔다. 손 경매사는 이런 상황에서도 하강 국면을 극복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제가 케이옥션에 입사한 지난 2009년 역시 성과가 반토막이 나던 시점이었어요. 미술시장은 늘 유동적으로 움직여 왔어요. 지난 1998년 국내 미술 경매 시장이 첫발을 뗀 이후 재작년(2021년)을 포함해 총 세 번의 호황이 있었거든요. 현장은 이미 정체기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근육이 단련돼 있습니다.”
이어 시대별로 주목하는 작가, 화풍이 달라지는 미술계 특징도 함께 언급했다. 작품을 다루는 미술 경매 시장은 이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 호황이 찾아온 지난 2015~2018년에는 단색화 열풍이 불었어요. 거장 김환기의 작품이 당시 최고가 낙찰 순위를 뒤바꿔 놓았죠. 리스트를 가격 순서대로 세워보면 10점 중에 8점이 그의 작품일 정도였어요. 그리고 단색화 작품들이 많이 소비된 지금은 ‘포스트 단색화’라는 단어가 미술시장에 등장하고 있어요. 계속해서 변해가는 미술사 흐름처럼 경매 시장의 흐름도 변화무쌍한 거죠.”
드넓은 글로벌 시장으로…첫발 떼는 한국 미술
미국, 영국과 같은 서구권 시장이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미술시장에 최근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손 경매사는 일명 서구 기득권의 영향력이 만연하던 미술시장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미술 시장의 키워드를 꼽자면 여성 작가, 흑인 작가 등 ‘소수자’를 꼽을 수 있어요. 미술계가 생각보다 보수적이어서 이전까지는 백인 남성 카르텔이 공고히 자리잡혀 있었거든요. 그런데 4~5년 전부터 이런 틀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어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여성 작가 비중이 70%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죠. 열리는 경매마다 압도적 존재감을 자랑하는 일본 여성 작가 쿠사마 야요이 역시 대표적 예시입니다. 국내 작가 이불, 양혜규도 많은 관심을 얻고 있고요.”
지난해 9월 한국에서 세계 3대 아트페어라 불리는 ‘프리즈’가 5년 계약의 포문을 열면서 한국 미술 시장의 위상은 크게 치솟았다. 한국이 아시아의 미술 수도를 놓고 전통 강자인 홍콩과 경쟁한다는 평가를 놓고 손 경매사는 ‘시기상조’라면서도 국내 시장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홍콩에서 한국의 약진에 위기감을 느끼고, 지난달 열린 아트 바젤에 항공권을 뿌리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건 맞아요. 하지만 한국의 미술시장은 이제 막 자리를 잡는 단계에 있습니다. 여전히 한국 시장은 서구 시장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짙거든요. 대신 이제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접하며 자란 세대가 미술에 많은 관심을 키워나가는 때라고 생각해요. 전후 시대를 거치는 등 열악했던 과거 세대와 달리 양질의 환경에서 미술시장과 함께 커가는 거죠.”
업계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전쟁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작가와 컬렉터를 중심으로 1차 시장인 갤러리, 아트페어부터 2차 시장인 경매 시장이 더욱 치열하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때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열린 프리즈는 국내 미술시장의 위상을 드높이는 동시에 위기의식을 가져다줬어요. 결국 갤러리 차원에서는 해외 유수 갤러리와 경쟁해야 하는 셈이거든요. 작품이 가득 찬 망망대해 속에서 컬렉터들도 작품을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하고요. 다 함께 협심해서 성장해야 하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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