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68만명이 그냥 ‘쉬었음’ [임무송의 시사논평]
일도 구직도 안하고…‘쉬었음’ 청년층 40만8000명
좋은 일자리 줄어들고 채용패턴은 경력직 중심으로
취업난은 결혼과 출산 포기로 이어져…파국의 시작
[임무송 인하대 초빙교수·일자리연대 운영위원장] “그만해!...왜 포기하는 사람은 욕먹어야 되는데!...포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데!” (영화 ‘스물’ 속 대사 中)
2023년 3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쉬었음’이라고 답한 청년층(15~29세)은 40만8000명, 다행스럽게도 역대 최대라는 2월의 49만7000명보다는 줄었다. 하지만 30대까지 포함하면 68만3000명에 달한다.
쉬었음은 취업준비나 구직활동 없이 말 그대로 그냥 쉬었다는 의미다. 민태원이 ‘청춘예찬’에서 노래했듯이 생명을 불어넣는 봄바람이 부는 아름다운 계절에 피끓는 청춘은 왜 그냥 쉬어야만 했을까?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가 많을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고용노동부의 2022년 직종별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60만명 이상이 부족하고 기업이 적극적으로 채용하려 했으나 채용하지 못한 인원이 18만여명에 달하는데, 청년들은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그냥 쉬고 있다니, 참으로 심각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아닐 수 없다.
미스매치의 원인은 근로조건이나 작업환경이 열악하거나, 구직자가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청년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거나, 사람과 일을 이어주는 다리가 고장 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보조금으로 갭을 채워주고, 직업훈련 기회와 취업정보 제공을 늘리고, 고용서비스를 강화하면 문제가 풀려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무조정실의 ‘청년포탈’에 들어가면 중앙부처 취업지원 사업만 해도 무려 360건이 뜬다.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벌이는 사업까지 포함하면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역대 정부 모두 여러 차례 청년고용대책을 발표했다. 오늘도 여야를 막론하고 MZ(밀레니얼+Z)세대 정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청년기본법, 청년의 날, 청년고용의무제, 청년보좌역 등 그야말로 범정부적 노력을 전개하는데 상황은 더 나빠진다. 사정이 이렇다면 처방을 서두르기에 앞서 문제 인식과 진단부터 새롭게 해야 하지 않을까.
우선 청년 문제를 낱개로 분리하지 말고 청년의 시각에서 복합적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청년의 생애 과제에서 첫 번째 도전은 취업! 춘래불사춘이라고 취업시장은 아직 겨울이다. 코로나19 충격이 한창이던 2020년에 비해서는 다소 나아졌다지만, 올해 들어선 악화일로이고, 체감도를 보여주는 확장실업률은 20% 근처를 맴돈다.
경기 침체로 좋은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채용패턴은 경력직 중심으로 바뀌었다. 대기업과 공기업은 인턴도 경력이 있어야 하는 분위기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벌어진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취업했다가 실망해서 떠나는 청년이 부지기수다. 20대의 70%가 입사 1년 내 이직을 시도한다는 조사가 있을 정도로 이직률이 높다. 다수가 일의 내용을 잘 모르고 취업했기 때문이다.
워라밸 보장되고 연봉 높고 고용도 안정된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은 청년들도 잘 안다. 그렇다면 경쟁이라도 공정해야 하는데 정치가 약속한 정의는 말뿐이었으며, 일을 경험할 기회는 너무나 적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알바라도 하며 자격증 시험 준비’하겠다는 청년은 그래도 적극적인 부류에 속한다. 수도권 거주자조차 “우리 지역에는 기회도 정보도 없어요”라며 입석은 금지된 서울행 버스를 탄다.
취업난은 결혼과 출산 포기로 이어진다. 2022년은 0.78%이라는 역대 최저의 출산율과 1000명당 3.7건의 조혼인율을 기록하였지만, 이것이 파국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생물 종이 스스로 개체 수를 줄인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이 생존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시대의 청년들이 포기가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에 재생산 거부라는 가장 강력한 거부의 몸짓으로 체제 변혁을 외치는 것이라는 해석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청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어렵고 결정적인 문제는 주거 독립이다. 유명 부동산 앱 이름이 말해주듯이 이미 ‘집’은 포기하고 ‘방’을 구하는데도 너무나 버겁다. 대기업 취업자조차 근로소득으로는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없다 보니 결혼도 출산도 머뭇거리고, 원룸 월세 내기에도 빠듯한 일자리는 합리적인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
저성장과 만성적 청년실업을 앞서 경험하는 서구 선진국의 예를 보면 경제성장률 회복이나 인구감소가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치적으로 매력 없겠지만 청년실업은 단기에 해결이 불가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중장기적으로 노동체제를 바꾸는 접근이 필요하다.
대졸자 취업난도 중요한 과제지만, 니트(NEET) 청년이 은둔형 외톨이가 되지 않도록 하는데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당장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자기 관심 분야의 활동을 경험하고 학습할 기회를 사회가 제공해야 한다. 미래세대가 다양한 삶의 경로를 탐색할 수 있는 경험과의 연결을 통해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사회적 책임이다. 가칭 ‘일 경험 사회보장제’가 필요하다.
역설적이지만 청년이 집 밖으로 나서려면 주거가 해결되어야 한다. 중소기업 취업을 조건으로 달지 말고 청년이 자기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주거를 제공하면 청년의 상상력으로 새로운 일거리를 창조할 것이라는 제안에 공감이 간다.
청년 감소는 지역소멸의 또 다른 모습이다.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는 기회 자체가 없기 때문인데, 생태계의 핵심은 역시 일자리다. 산학민관이 협업해서 대기업의 현지 채용을 늘리고, 스마트팩토리와 일-생활 균형이 결합된 고도화사업장 모델을 확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젊은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미래에서 벗어나려면 기득권의 벽이 겹겹이 둘러싼 낡은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 창조적 파괴로 진입 기회를 늘리고 경쟁은 공정하며 약자를 포용하는 세상,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노동체제의 재구성’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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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쉬었음’이라고 답한 청년층(15~29세)은 40만8000명, 다행스럽게도 역대 최대라는 2월의 49만7000명보다는 줄었다. 하지만 30대까지 포함하면 68만3000명에 달한다.
쉬었음은 취업준비나 구직활동 없이 말 그대로 그냥 쉬었다는 의미다. 민태원이 ‘청춘예찬’에서 노래했듯이 생명을 불어넣는 봄바람이 부는 아름다운 계절에 피끓는 청춘은 왜 그냥 쉬어야만 했을까?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가 많을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고용노동부의 2022년 직종별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60만명 이상이 부족하고 기업이 적극적으로 채용하려 했으나 채용하지 못한 인원이 18만여명에 달하는데, 청년들은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그냥 쉬고 있다니, 참으로 심각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아닐 수 없다.
미스매치의 원인은 근로조건이나 작업환경이 열악하거나, 구직자가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청년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거나, 사람과 일을 이어주는 다리가 고장 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보조금으로 갭을 채워주고, 직업훈련 기회와 취업정보 제공을 늘리고, 고용서비스를 강화하면 문제가 풀려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무조정실의 ‘청년포탈’에 들어가면 중앙부처 취업지원 사업만 해도 무려 360건이 뜬다.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벌이는 사업까지 포함하면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역대 정부 모두 여러 차례 청년고용대책을 발표했다. 오늘도 여야를 막론하고 MZ(밀레니얼+Z)세대 정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청년기본법, 청년의 날, 청년고용의무제, 청년보좌역 등 그야말로 범정부적 노력을 전개하는데 상황은 더 나빠진다. 사정이 이렇다면 처방을 서두르기에 앞서 문제 인식과 진단부터 새롭게 해야 하지 않을까.
우선 청년 문제를 낱개로 분리하지 말고 청년의 시각에서 복합적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청년의 생애 과제에서 첫 번째 도전은 취업! 춘래불사춘이라고 취업시장은 아직 겨울이다. 코로나19 충격이 한창이던 2020년에 비해서는 다소 나아졌다지만, 올해 들어선 악화일로이고, 체감도를 보여주는 확장실업률은 20% 근처를 맴돈다.
경기 침체로 좋은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채용패턴은 경력직 중심으로 바뀌었다. 대기업과 공기업은 인턴도 경력이 있어야 하는 분위기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벌어진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취업했다가 실망해서 떠나는 청년이 부지기수다. 20대의 70%가 입사 1년 내 이직을 시도한다는 조사가 있을 정도로 이직률이 높다. 다수가 일의 내용을 잘 모르고 취업했기 때문이다.
워라밸 보장되고 연봉 높고 고용도 안정된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은 청년들도 잘 안다. 그렇다면 경쟁이라도 공정해야 하는데 정치가 약속한 정의는 말뿐이었으며, 일을 경험할 기회는 너무나 적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알바라도 하며 자격증 시험 준비’하겠다는 청년은 그래도 적극적인 부류에 속한다. 수도권 거주자조차 “우리 지역에는 기회도 정보도 없어요”라며 입석은 금지된 서울행 버스를 탄다.
취업난은 결혼과 출산 포기로 이어진다. 2022년은 0.78%이라는 역대 최저의 출산율과 1000명당 3.7건의 조혼인율을 기록하였지만, 이것이 파국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생물 종이 스스로 개체 수를 줄인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이 생존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시대의 청년들이 포기가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에 재생산 거부라는 가장 강력한 거부의 몸짓으로 체제 변혁을 외치는 것이라는 해석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청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어렵고 결정적인 문제는 주거 독립이다. 유명 부동산 앱 이름이 말해주듯이 이미 ‘집’은 포기하고 ‘방’을 구하는데도 너무나 버겁다. 대기업 취업자조차 근로소득으로는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없다 보니 결혼도 출산도 머뭇거리고, 원룸 월세 내기에도 빠듯한 일자리는 합리적인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
저성장과 만성적 청년실업을 앞서 경험하는 서구 선진국의 예를 보면 경제성장률 회복이나 인구감소가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치적으로 매력 없겠지만 청년실업은 단기에 해결이 불가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중장기적으로 노동체제를 바꾸는 접근이 필요하다.
대졸자 취업난도 중요한 과제지만, 니트(NEET) 청년이 은둔형 외톨이가 되지 않도록 하는데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당장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자기 관심 분야의 활동을 경험하고 학습할 기회를 사회가 제공해야 한다. 미래세대가 다양한 삶의 경로를 탐색할 수 있는 경험과의 연결을 통해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사회적 책임이다. 가칭 ‘일 경험 사회보장제’가 필요하다.
역설적이지만 청년이 집 밖으로 나서려면 주거가 해결되어야 한다. 중소기업 취업을 조건으로 달지 말고 청년이 자기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주거를 제공하면 청년의 상상력으로 새로운 일거리를 창조할 것이라는 제안에 공감이 간다.
청년 감소는 지역소멸의 또 다른 모습이다.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는 기회 자체가 없기 때문인데, 생태계의 핵심은 역시 일자리다. 산학민관이 협업해서 대기업의 현지 채용을 늘리고, 스마트팩토리와 일-생활 균형이 결합된 고도화사업장 모델을 확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젊은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미래에서 벗어나려면 기득권의 벽이 겹겹이 둘러싼 낡은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 창조적 파괴로 진입 기회를 늘리고 경쟁은 공정하며 약자를 포용하는 세상,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노동체제의 재구성’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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