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따라잡기④ 도시는 무엇으로 살아남는가, 강북의 기회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도시 주민들, 생애주기 걸쳐 야외활동 급증 추세
역사·문화 콘텐츠 많은 강북 거리, 매력 발산해 기회 잡을까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 어느새 20년 가까이 ‘강남모방’으로 일관하던 도시개발에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이는 주로 ‘아파트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외형만 모방했을 뿐, 강남 성공의 이면에 있던 각종 도시 인프라(사통팔달의 교통망 확충, 강북에서 강제 이전해 온 공공기관, 유명학교, 중산층의 이동 등)를 도저히 똑같이 흉내 낼 수 없었기에 당면한 한계였다. 하지만 그 또한 전부는 아니다. 사람과, 도시에서의 삶과, 세상이 모두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집 밖으로 나가는 현대인
현대 도시에서 인간의 활동은 집보다 집밖에서 더 많이 이뤄진다. 잠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보자. 1970년대까지만 해도 집에서 생로병사의 모든 일들이 이루어졌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집에서 아이들이 크고, 집에서 늙고, 집에서 죽었다. 장례 역시 집에서 치르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도시인들의 생로병사는 모두가 집밖에서 이루어진다. 산모들은 아이를 산부인과에서 낳고, 심지어 산후조리도 집밖에서 한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이라는 외부공간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 와서도 인터넷 강의 등 스마트 기기 속 공간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자녀양육을 마친 부모들도 미뤘던 여가활동과 노후준비를 외부에서 한다.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활동력 있는 노인들은 다양한 동호인 활동이나 교육 및 친교프로그램으로 하루를 분주하게 보낸다. 이들은 좀 더 나이가 들면 데이케어 시설이나 실버하우스나 요양병원, 요양원으로 점차 옮겨 가고 있으며 삶의 마지막을 병원에서 마무리한다. 이런 일련의 활동이 모두 집이 아닌 곳에서 행해진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윗세대들은 기를 쓰고 집을 마련하려 했고, 이제 겨우 부족한 집들이 확충되는 시기가 왔다. 그런데 정작 집이 아니라 집밖에서 더 많이 시간을 보낸다니. 이제 도시의 모습과 구성이 달라져야 할 이유는 더 뚜렷해졌다.
그러나 집밖의 다양한 서비스와 활동에 대한 대가 역시 지대(땅값)에 따라 결정된다. 강남은 집값만큼 땅값도 비싸다. 그러니 그곳에서 제공되는 서비스 이용요금도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 공공서비스의 대가는 주민이기만 하면 누릴 수 있지만 주민이 되기 위해서는 높은 집값을 지불해야 한다.
강남모방의 한계는 이러한 경제적 요인도 작동한다. 만약 집값이 계속 오른다면 고비용의 생활구조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또한 착각이다. 집값이 아무리 올라도 그게 바로 현금으로 지출할 수 있는 돈은 아니다. 그저 마음만 든든할 뿐, 집값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그 뿐인가.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고, 의료기술과 건강상태가 좋아지면서 오랜 시간 경제적 문화적 활동이 가능해졌다. 너무 비싼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평생 강남에서 생활하는 일은 심지어 일부 강남 주민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결국 좀 더 지속가능하기 위해 이제 우리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도시에도 가성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중요하다.
강남엔 없고 강북에는 있는 것
온라인 쇼핑이 보편화 되면서 사람들이 어디 살든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물건에 대한 접근성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어졌다. 해외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도 ‘직구’(해외 직접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문제는 오프라인에서 제공되는 경험적 서비스는 지역에 따라, 공급자의 기획력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강남에는 없고 강북에는 있는 것이 있다. 강남에는 최고(最高, 가장 비싼 것)는 있으나 최고(最古, 가장 오래된 것)가 없다. 최고(最古)란 오래되어 낡았다는 뜻도 되지만 시간과 기억의 축적이라는 ‘문화자산’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근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는 공간들이 대부분 서울 강북이나 지방대도시의 구도심 인 이유가 여기 있다.
이들의 첫 시작은 저렴한 임대료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지역과 공간이 갖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의 힘이 더 크다. 강남구에서도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신사동 가로수길의 성공은 처음에 경제적 유인에서 출발했다. 대로변이 아닌 이면도로라서 임대료가 좀 더 저렴했고, 사람들을 끌어들일 매력적 요소도 충분했다.
도로여건이나 부지규모의 영세성, 각종 건축제한으로 개발이 용이하지 않았던 이면도로 상가들은 과감히 거리와의 경계를 허물고 나왔다. 고층빌딩의 상가는 사람들을 차로 불러 모으지만, 가로형 상가들은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머무르게 하고, 거리 속에 상업 컨텐츠를 발산한다.
한계 역이용하는 똑똑한 도시기획자들
강남에서 시작한 이 ○○단길, ○○거리는 이제 강남보다 강남 이외 지역에서 더 많이 살펴볼 수 있다. 서울 연남동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구획정리가 된 저층단독주택지 밀집 지역이었다. 주택가였으니 주차공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상업기능을 담기에도 부적절했다.
다만 중심상권에서 밀려나 이곳에 정착한 사례가 많아지면서 이미 상업기능이 많이 침투한 상태였다. 인근 연리단길이나 홍대거리 등에 기존 문화적 자산이 있었기에 배후인구 또한 어느 정도 담보가 됐다. 이렇게 ○○단길, ○○거리는 모두 중심에서 밀려난, 높은 임대료를 피해 안착한 사람들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환경을 개선해 보려고 해도 건물 신축에는 많은 제약이 있었다. 만약 허물고 신축(개축이 정확한 표현)을 하게 되면 도로용지로 땅 일부를 공공에 기부체납해야 하는 데다, 층수제한까지 있어 충분한 사업성을 담보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리모델링’이다. 연남동에서 확산된 리모델링은 반지하 공간과 외부 계단을 활용했다는 특징이 있다. 반지하, 외부계단 모두 충분한 공간 활용이 어려울 때 사용하는 궁여지책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재탄생한 건물이 오히려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고, 매력이 돼 버렸다. 이와 달리 신축을 하기 용이하고 사업성이 좋은 지역에서는 매력적인 공간보다 판매가능한 공간만을 최대화하는데 집중한다.
향후 집값이나 땅값 전망에 대해 먹구름이 가득하다. 지금의 인구변화 추세로 보면 큰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 보인다. 그렇지만 저평가된 공간에 매력적 요소를 입히는 일, 제약과 한계 속에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진정한 도시개발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여전히 서울 강북의 개발여건은 용이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 제약과 한계가 창의와 매력을 만들어 간다는 측면에서 앞으로의 기회는 강남이 아니라 강북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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