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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 키웠지만 수익성은 ‘뚝’…흔들리는 국내 CRO 시장

[위기의 CRO 시장 진단]①
CRO 매출 합계 1조원 육박…국내 기업 57% 차지
외형 키워도 수익성 낮아…비용 투입에 실적 갈려
다국가 임상 늘어나며 해외 CRO엔 잇단 ‘러브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한 동안 국내 임상시험 시장은 규모를 빠르게 확대했다. 그러나 국내 임상시험수탁기관(CRO)들은 좀처럼 수익성을 개선하지 못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국내 임상시험 시장이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지만, 국내 임상시험수탁기관(CRO)들은 수익성을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 CRO가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인건비 등 비용 투입이 늘어나면서 덩치를 키우고도 이익을 많이 남기지 못하면서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국내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CRO가 지난해 올린 매출의 합계는 9885억원으로, 전년 대비 16% 증가했다. 이들 기업은 2020년까지만 해도 6772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듬해 8532억원으로 규모를 키우는 등 2년 사이 47% 성장했다.


특히 국내 CRO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국내 임상시험 시장은 사실상 해외 기업의 무대였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을 기점으로 국내 기업의 영향력이 빠르게 확대됐다. 2020년에는 국내 CRO들이 해외 CRO들의 매출 합계도 따라잡기 시작했다. 국내 CRO들이 지난해 올린 매출 합계는 5652억원으로, CRO 시장 내 전체 매출 규모의 57%를 차지한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이 매출을 집계한 국내 CRO 57개 기업 중 주요 업체들도 지난해 매출이 증가했다. 마크로젠은 지난해 전년 대비 7% 성장한 138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씨엔알리서치와 LSK 글로벌 PS의 지난해 매출은 각각 485억원, 371억원이다. 씨엔알리서치는 전년 대비 매출이 12% 증가했고, LSK 글로벌 PS의 매출은 같은 기간 5% 성장했다.

비임상시험을 주로 수탁하는 기업들도 외형을 키운 건 마찬가지다. 임상시험을 주로 대행하는 기업들보다 매출 성장세는 더 가파르다. 노터스라는 사명을 썼던 HLB바이오스텝은 지난해 86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대비 34% 증가한 수준이다. 역대급 수요예측과 일반청약 경쟁률로 올해 제약·바이오 업계의 기업공개(IPO) 시장에 훈풍을 불어넣은 바이오인프라도 전년 대비 16% 오른 35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 CRO들이 이런 성장세를 나타낸 배경에는 코로나19가 있다. 감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한 동안 풍부한 유동성과 시장의 관심에 힘입어 국내 기업은 물론 해외 기업들까지 신약 개발에 속도를 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연구개발(R&D)도 이어졌다. 덩달아 임상시험의 여러 과정을 도맡아 수행하는 국내외 CRO는 실적을 개선하고 자금을 유치하는 데 수혜를 입었다.

국내 임상시험 시장이 활발해진 점도 기업 실적이 확대되는 데 바탕이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이 기관이 지난해 승인한 임상시험계획승인신청(IND) 건수는 지난해 711건으로 2019년 이후 4년 연속 700건 이상을 기록했다. IND는 기업이나 기관이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다. 국내에서 진행된 임상시험 건수가 가장 많았던 2021년에는 842건의 IND가 승인되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국내 CRO, 덩치 키웠지만 수익성은 줄어

국내 CRO는 짧은 기간 눈에 띄게 성장했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우선 외형을 키운 만큼 수익성도 함께 개선한 기업이 많지 않다. 수십 개 기업 중 규모 있는 영업이익을 올린 기업은 손에 꼽는다. 국내 CRO 중 주요 기업을 20여 곳 추렸을 때 적자를 기록한 기업의 수도 상당하다.

당장 씨엔알리서치와 LSK 글로벌 PS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19%, 57% 하락했다. 상장 기업인 에이디엠코리아는 같은 기간 전년 대비 7% 성장한 149억원의 매출을 올리고도 적자를 기록했다. 클립스비엔씨도 같은 기간 매출이 17% 확대됐지만, 2021년에 이어 지난해도 24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냈다.

몸집만 불린 국내 CRO와 달리, 국내 법인을 둔 해외 CRO들은 외형과 내실 모두 동반 성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CRO인 아이큐비아의 국내 법인 한국아이큐비아는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각각 1006억원, 56억원을 달성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8% 성장했고, 영업이익은 85% 증가했다. 

국내 기업이었으나 중국 기업에 인수된 드림씨아이에스는 2022년 전년 대비 49% 성장한 38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5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61% 증가한 수치다. 아이콘클리니컬리서치코리아도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 각각 전년 대비 15%, 23% 성장했다. 다만 한국파렉셀은 지난해 매출이 11% 성장하는 동안 영업이익이 36% 감소했다.

해외 기업의 실적이 전반적으로 성장한 건 CRO 서비스 비용이 국내 기업보다 높은 데다, 다국가 임상시험을 추진하려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 CRO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CRO의 한 사업개발팀 관계자는 “해외 CRO는 서비스 비용이 높지만 규모가 크고 레퍼런스가 많다”며 “임상시험의 불확실성을 낮추려는 기업은 아이큐비아를 비롯한 해외 대형 CRO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술 수출을 노리거나 다국가 임상을 진행하려는 기업도 해외 CRO에 의존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국내에서 가장 많은 IND를 승인받은 기업도 해외 CRO들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한국아이큐비아는 지난해 32건의 IND를 승인받았다. 또 다른 해외 CRO인 피피디(PPD)는 같은 기간 28건의 IND를 승인받으며 한국아이큐비아의 뒤를 이었다. 노보텍아시아코리아와 한국파렉셀, 랩콥코리아는 각각 18건, 15건, 11건의 IND를 승인받았다. 지난해 10건 이상의 IND를 승인받은 국내 기업은 각각 17건과 16건의 IND 승인을 얻은 종근당과 대웅제약뿐이다.

국내 CRO 관계자는 “해외 CRO가 임상시험에 필요한 시설이나 역량을 갖췄을 것이란 인식이 팽배한 데다, 해외 기업과 협력한다면 해외 진출 가능성이 커질 것이란 기대에 국내 기업들이 해외 CRO를 선호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임상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속도와 비용”이라며 “임상시험은 정해진 기준에 맞는다면 어디서든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국내 기업이 이를 충족하는 품질의 임상시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다국가 임상을 추진하는 기업이라도 토종 CRO와 협력하는 게 유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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