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방식 택한 재건축 단지, 가구당 수천만원 수수료에 ‘후회막심’
[신탁 재건축 딜레마] ① 분양가 오르며 비싸지는 신탁수수료
“계약 해제하려면 80% 동의 필요”…손해 감내해야
[이코노미스트 민보름 기자] 2017년 일찍이 신탁방식 재건축을 택한 뒤 KB부동산신탁을 사업시행자로 낙점했던 여의도 공작아파트에서 최근 신탁수수료 재협상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브라이튼 여의도를 비롯해 서울 아파트 분양가가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이코노미스트’ 취재에 따르면 서울 내 신탁방식 재건축을 둘러싸고 일부 재건축 추진 단지 소유주들 사이에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재건축 사업이 진행될수록 가구 수와 예상 분양가에 따라 수천억원에 육박하기도 하는 수수료가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데다, 이처럼 높은 수수료를 지불할 만큼 신탁방식 재건축의 장점이 큰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탁방식 재건축은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가 직접 정비사업의 시행 주체가 되는 기존 조합방식과 달리, 신탁사가 수수료를 받고 소유주들로부터 재건축 대상 토지 3분의 1의 소유권을 이전 받아 자금조달 등 재건축 업무를 대신하는 방식이다. 특히 최근 각광받는 사업시행자 방식은 신탁사가 시행자로서 비교적 사업 초기부터 재건축 업무 전반을 맡는다.
통상 분양수익(매출)에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신탁방식 정비사업의 계약 특성 상, 분양가 급등 현상에 따라 신탁수수료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최근 분양가 문제에는 자재비 및 인건비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이 상당 부분 작용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재건축 소유주들은 공사비에 신탁 수수료까지 ‘이중고’를 감내해야 하는 셈이다.
수백·수천억 수수료는 기본…‘돈 값’ 하나?
대형 신탁사들은 2016년 도시정비법 개정 이후 신탁방식 정비사업의 장점을 내세우며 서울 소재 재건축 단지를 대상으로 수주 활동을 벌여왔다. 사업성이 뛰어난 압구정 등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 홍보활동을 벌였던 이들 신탁사는 금융기관의 ‘앞마당’인 여의도를 비롯한 주요 정비사업에서 홍보를 이어갔다.
최근에는 ‘서남권 재건축 메카’인 목동에서도 대대적인 설명회가 열리며 신탁사들이 하나 둘 성과를 내고 있다. 그 결과 지난 3월 목동14단지 재건축추진위원회가 KB부동산신탁과 업무협약(MOU)을 맺었고 같은 양천구 내 신월시영아파트는 코람코자산신탁과 KB부동산신탁이 컨소시엄으로 수주하기도 했다. KB부동산신탁은 한국자산신탁과 함께 서울 소재 주요 신탁방식 재건축 사업을 잇달아 수주하고 있다.
그러나 신탁수수료를 비롯한 신탁사와 재건축추진위원회 간 계약관계를 두고 여러 단지에서 지적이 나오며 신탁방식 재건축은 기로에 서고 있다. MOU에서 가계약이나 본계약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 분쟁이 생겨 다시 조합방식을 택하는 사업지도 여럿이다. 강동구 삼익그린2차, 서초구 방배7구역이 대표적이다.
특히 대형 신탁사들은 정부가 정비사업에 신탁방식을 도입했던 초기 목적과 달리 사업성이 높은 서울 핵심지 대형 재건축에 대거 진출하고 있다. 이 같은 현장은 처음 신탁사와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 간 MOU까지는 수월하게 진행이 된다. 그러나 곧 소유주들 사이에서 신탁방식 도입이 필수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대두되며 막상 부동산 신탁을 위한 소유권 이전(사업 대상 토지 3분의 1) 단계에서 조합방식으로 선회하는 단지가 생기는 것이다.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들이 가장 크게 체감하는 문제는 가구마다 수천만원씩 부담해야 하는 신탁수수료다. 한 목동신시가지아파트 소유주는 “우리 단지 규모면 단순 계산을 했을 때 신탁방식 재건축을 선택할 경우 신탁수수료가 천억원이 훌쩍 넘는다”면서 “일부 지도부나 신탁사 말대로 신탁방식이 꼭 좋은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동산 개발업계 관계자는 “신탁수수료 자체가 법정수수료 없이 고무줄식으로 신탁사와 협상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업력이 있는 시행사는 수수료를 많이 깎고 그러지 못한 시행사는 많이 내는 구조”라면서 “개발사업에 문외한인 재건축 소유주들은 이 부분에서 불리해 뒤늦게 논란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초기 4%로 알려졌던 정비사업 신탁수수료는 현재 1~2% 수준으로 내려간 상태다. 서울시가 특별계획구역 지정 등으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높아진 예상 분양수익의 반작용으로 신탁사에 수수료 재협상을 요구하는 재건축 단지도 늘고 있다.
신탁사 “빠른 인허가로 비용절감 커”
일부 초기 재건축 단계였던 단지들은 신탁사들이 홍보하는 신탁방식 정비사업의 장점에 이끌려 비싼 수수료를 감내하고 신탁방식을 선택해왔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조합이 직접 재건축 사업을 꾸려가는 조합방식보다 자금조달이 수월하고 전문성을 갖춘 신탁사가 운영해 사업속도가 빠르며, 협력업체 선정 등 사업 과정을 비리 없이 투명하게 진행한다는 장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신탁방식 재건축 중에서도 최근 정비시장에서 '대세'가 된 사업시행자 방식은 초기 단계부터 신탁사가 시행주체로서 사업 전반을 운영하는 대신, 추진위 및 조합설립 인가 과정이 필요 없어 사업 속도를 높이는 대안으로 유명하다. 근 20년간 사업진행이 지지부진했던 여의도 재건축 단지들이 신탁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러나 정비업계에선 실제 신탁방식 정비사업 진행과정에서 신탁사 역할이 알려진 내용처럼 크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외려 신탁수수료에 더해 조합 집행부 역할을 하는 정비사업위원회, 정비업체 용역비 등으로 비용을 2중, 3중으로 쓰기 쉽다는 것이다.
강남권 정비사업 조합 관계자는 “신탁방식 재건축 사무실에 가보면 막상 재건축 업무 자체는 조합방식과 마찬가지로 정비업체가 하고 있고 신탁사 직원 한명이 파견돼 일을 하던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조합장이 비리를 저지르는 사례가 흔하다는 이유로 신탁사에 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조합장이 소위 '해먹는다'고 해도 수백억~수천억원 단위까지는 아니다”라며 “서울 재건축은 의사결정 과정을 모두 클린업시스템(현 정비사업정보몽땅)에 올리게 돼 있어 예전처럼 조합장이 마음대로 하기 힘든 구조”라고 강조했다.
뒤늦게 소유주들이 신탁계약을 해제하기를 원해도 계약 해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수탁자 전원동의’ 또는 ‘소유주 5분의 4(80%) 동의’ 등 계약서 상 해제요건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신탁계약서를 보면 보험약관처럼 깨알 같은 조항들이 많은데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계약을 맺으면 나중에 계약 상 불리한 점을 깨달아도 되돌리기가 어렵다”면서 “MOU만 맺어도 신탁사가 투입한 초기 사업비는 물론 높은 이자까지 쳐줘야 하는 사례가 많아 신탁방식 재건축을 택할 때에는 소유주들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신탁사 관계자는 “신탁사는 개발사업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각종 인허가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면서 “이에 따라 금융비용, 갈등비용 등이 큰데 조합방식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신탁수수료를 단순비교하는 방식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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