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대표 “챗GPT 우리가 이겨봐야 하지 않겠어요” [이코노 인터뷰]
김성훈 업스테이지 대표
2000년대 중반 억대 연봉 마다하고 홍콩과기대 교수 선택
글로벌 인재와 함께 AI 시장 혁신하는 게 목표
[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 창업가에게 미 스타트업 오픈AI가 선보인 챗GPT도 넘어야 하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챗GPT를 우리가 이겨야 한다”라는 그의 말에는 진심과 자신감이 담겨 있다. 한국의 AI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여정은 ‘도전’의 연속인 그의 삶과 닮아 있다. 김성훈 업스테이지 대표가 주인공이다.
현재 50을 넘어선 그는 흔히 말하는 흙수저다. 돈이 없어서 구미전자공고에 갔고, 어렵게 공부해 대구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 재학 중 1995년 말 한글 검색엔진 ‘까치네’를 개발하고 이듬해에 나라비전이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삐삐와 휴대폰으로 메일이 왔음을 알려주는 깨비메일을 선보여 업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당시 다음에서 메일 만들기 캠페인을 열면서 남녀노소 메일 주소 만드는 열풍이 불었던 시절이다. 김 대표는 여기에서 다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서비스를 선보인 것이다. 초반에는 깨비메일 가입자가 다음을 넘어섰지만, 어느 순간 다음 메일이 격차를 벌리면서 앞서기 시작했다. 그는 “깨비메일은 젊은 팬들이 많았지만, 어른들은 사용하기 어려워했다”면서 “서비스를 만들 때 누구나 사용하기 쉽고 편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2001년 나이 서른에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미국 유학이다. 당시 나라비전은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던 터라 당시 가장 잘나갔던 검색엔진 라이코스의 한국지사가 나라비전 지분을 획득하면서 1대 주주가 된 상황. 라이코스코리아가 나라비전을 인수하느냐 마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창업자로서 엑시트의 기회일 수 있지만, 그는 다른 것을 느끼게 됐다. 바로 원천 기술의 중요성이다. 그는 “라이코스코리아가 외국 기술을 가져왔다고 해서 너무 잘 나가는 모습을 보고 조금 씁쓸헀다. 나도 원천기술이라는 것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미국 유학 이유를 설명했다.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크루즈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매사추세츠 공과대(MIT)에서 박사 후 과정(PostDoc) 과정을 밟았다. 실리콘밸리와 가까운 곳에 있는 대학에 몸담았기 때문에 졸업 후 취업의 기회는 많았다. 김 대표는 “당시 박사 과정을 마치고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업에 취업하면 한국에서 받는 연봉의 10배 정도를 받는다”면서 “취업이 좋은 선택일 수 있는데 뛰어난 사람들과 같이 일해보고 싶어서 홍콩과학기술대 교수에 도전했다”며 웃었다. 홍콩과기대는 수재들이 다닌다는 과학 기술 중심의 대학으로 아시아에서 명망 높은 연구중심 대학으로 꼽힌다. 김 대표는 돈보다는 인재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홍콩과기대 교수 시절 그는 국제적인 명망을 얻는 석학이 됐다. 뛰어난 인재들과 함께 작성한 논문은 세계적인 저널에 실렸고, 글로벌 시장에서 그의 이름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공학과 머신러닝을 융합한 버그의 예측, 소스 코드 자동 생성 등의 연구가 최고의 논문상(ACM Sigsoft Distinguished paper)을 네 번이나 수상한 것이다. 또한 가장 영향력 있는 논문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구루’로 평가받았다. 한국 출신의 교수는 홍콩과기대에서 어느새 학생들이 같이 연구하고 싶은 교수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거기에서 만난 학생들은 천재들이 많았는데, 너무 정석으로만 생각한다는 게 단점이었다”면서 “내가 엉뚱한 생각을 그들에게 이야기하면 그렇게 좋아했고, 학생들이 새로운 실험에 나서는 기회가 됐다”며 웃었다. 또한 “영어를 내가 그리 잘하지 못하지만, 콘텐츠가 자신이 있으니까 우리 랩실의 프로젝트를 세계가 주목했다”고 덧붙였다.
캐글 대회 10개 금메달 수상, 국내 최초 기업으로 기록
잘 나가던 대학에 휴직계를 내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17년 네이버 클로바 AI 총괄(책임리더)로 한국에 복귀한 것이다. 이때 100여 개의 AI 기술을 발표하면서 네이버의 AI 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3명에 불과했던 팀은 어느새 150명으로 규모가 커졌다. 그렇게 잘 나가던 김 대표는 다시 한번 도전에 나선다. 이번에는 창업이었다. 20대 때 처음 도전했던 창업을 20여 년이 지난 후에 다시 시도한 것. 2020년 10월 업스테이지를 창업했다. 네이버에서 함께 일했던 이활석 CTO와 박은정 CSO 등이 그와 손을 잡았다.
창업 1년 만에 시리즈A에서 316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김성훈이라는 브랜드가 AI 업계에서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잘 보여줬다. 그가 업스테이지의 근무 제도를 ‘풀 리모트’(Full remote, 원격 근무)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다양한 도전 과정에서 만난 인재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다. 그는 “한국에 사무실을 만들고 해외 인재를 영입하는 게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다양한 인재들과 일해야 혁신과 변화가 있기 때문에, 해외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해서 원격 근무 체계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아마존, 엔비디아, 구글, 애플, 메타 등에서 일한 경력자들이 업스테이지에 합류했다.
다양한 인재들과 혁신을 일으킨 덕분에 창업한 지 3년이 지난 업스테이지는 벌써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6월 22일에는 데이터 중심 연구 AI(Data-Centric AI)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워크숍인 데이터 중심 머신러닝 연구(DMLR, Date-centric Machine Learning Research)에서 7편의 논문을 발표해 국내 기업 최다 연구 성과를 보여준 바 있다. 지난 4월에는 인공지능 광학문자인식(OCR)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대회 ‘ICDAR 로버스트 리딩 대회’에서 4개 부문을 석권하기도 했다. 이 대회는 디지털 이미지와 비디오 상에서 텍스트를 감지하고 인식하는 기술을 두고 경쟁하는 국제경진대회다. 업스테이지는 이 대회를 통해 아마존, 엔비디아, 알리바바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지난해 초에는 ‘AI 올림픽’이라고 평가받는 캐글(Kaggle) 대회에서 전 세계 2060팀 중 8위에 입상해 빅테크를 놀라게 했다. 이를 통해 업스테이지는 캐글 대회에서 국내 최초로 10개의 금메달을 수상한 기업이라는 기록을 썼다.
이런 실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기업에서 업스테이지와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롯데온은 업스테이지의 초개인화 맞춤 추천 AI 솔루션을 적용하기로 했고, 삼성생명은 금융에 특화된 AI 솔루션 ‘OCR Pack’를 공급받기로 했다. 김 대표는 “창업 후 지금까지 목표치의 70% 정도는 이룬 것 같다”면서 “기업들과 여러 프로젝트를 많이 하는데, 예상보다 기업의 결정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이번에 알게 됐다. 그래도 업스테이지와 손잡기 위해 기다리는 기업들이 많아서 성과는 곧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수십 곳의 대기업이 업스테이지와의 협업을 원하고 있다. 김 대표는 내년에 업스테이지의 손익분기점을 넘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300억원이 넘는 투자금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수십억원의 매출을 내고 있다는 것도 업스테이지가 견실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챗GPT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의 빅테크 기업에게도 위기라는 챗GPT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이야기했다. “챗GPT는 개인화 서비스를 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그 틈새를 노리고 있다”면서 “챗GPTTT를 넘어서야 하지 않나. 우리는 AI 글로벌 시장에서 1위를 하는 게 목표”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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