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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의 ‘피봇’, 기업의 전략적 변화와 무엇이 다를까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피봇, 어원은 구기 종목 풋워크
불확실한 환경서 변화에 도전하는 것

7월 31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서울 웹 3.0 페스티벌에서 해커톤(프로그래밍 경진대회) 참가자들이 웹3.0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최화준 아산나눔재단 AER지식연구소 연구원] ‘판교사투리’. 창업 관계자들만이 사용하는 전문 용어들을 우스갯소리로 빗댄 표현이다. 판교사투리는 그들만의 언어이지만 일부는 다른 산업계에서 차용되면서 표준어가 되기도 하는데, ‘피봇(pivot)’이 그런 경우이다.  

최근 들어 유난히 창업생태계와는 거리가 먼 기업관계자나 심지어 공공기관 종사자의 입에서 피봇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가 많다. 일상에서 스타트업과 창업생태계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음을 느끼는 동시에, 피봇의 함의는 커지고 정의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기업의 전략적 변화 vs 스타트업 피봇

스타트업은 피봇으로 빠른 변화를 실행한다. 기업들은 전략적 변화를 도모한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의 피봇과 기업의 전략적 변화는 무엇일까? 두 집단은 근본적으로 체급이 다르기에 스타트업의 변화는 기업의 그것보다 기민하고 빠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 차이점은 아닐 것이다. 

미 펜실베니아대 커틀리 교수와 보스톤대 오마호니 교수(Kirtley & O'Mahony, 2020)의 연구, ‘피봇은 무엇인가?’(What is a pivot)에서 이에 대한 답을 유추해볼 수 있다. 연구는 업력이 제법 되는 실리콘밸리 기술 스타트업들이 경험한 변화의 순간들을 추적하며, 피봇의 본질을 찾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피봇은 부족한 양질의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에서 시작한다. 불확실성의 환경 속에서 변화에 도전하는 것이다. 반면 기업은 수행한 업무에서 획득한 충분한 최종 결과값을 조직의 핵심성과지표(KPI, Key Performance Indicator)와 비교한 뒤에 후속 결정을 내린다. 

산업 및 시장 분석 기반으로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는 기업이나, 예비타당성 혹은 타당성 연구를 진행한 뒤 예산을 집행하는 공적 영역과 다르게 스타트업은 가설을 세우고 검정한다. 

스타트업의 가설은 매우 구체적이고 검정 목적은 뚜렷하다. 그래서 가설검정은 빠르고 검정의 답은 명확하다. 만약 앞선 가설에서 답을 얻지 못했다면, 곧바로 다른 후속 가설을 세우고 검정할 수 있다. 가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야기한 작은 변화들의 집합이 피봇인 것이다.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방향을 바꾸는 것이 기업의 전략적 변화라면, 빠른 잰걸음이 누적되어 생긴 변화를 스타트업의 피봇이라 비유해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해당 연구는 충분하지 못한 잰걸음이나 의미없는 잰걸음이 만든 변화는 피봇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연구가 추적한 모든 스타트업들은 창업 후 여러 형태의 전략 변화를 경험했지만, 소수의 기업만이 피봇을 했다고 자평했다. 그리고 일부 스타트업들은 변화의 정도가 충분히 크지 않았다고 판단했기에, 피봇이라 보기 어렵다고 기술하였다.

구기 종목의 풋워크인 피봇. 


피봇, 모든 면의 변화 의미하지 않아

일각에서는 스타트업의 피봇을 마치 오늘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내일을 의미하는 변화로 해석하는데, 이는 피봇의 핵심을 오해한 것이다. 

피봇의 어원은 구기 종목의 풋워크에 있다. 운동선수가 한 발을 축으로 하고 다른 발을 움직이는 기술을 피봇이라 하는데, 이 때 축이 되는 발을 피봇 발(pivot foot)이라 한다. 컴퍼스로 원을 그릴 때 원의 중심에서 지지대 역할을 하는 한 쪽 끝을 생각하면 된다. 

즉 피봇은 스타트업의 모든 요소를 변화하는 게 아니라 부분적 변화다. 에릭 리스(Eric Ries)는 2011년 그의 책 ‘린 스타트업(The Lean Startup)’에서 피봇이란 용어를 창업생태계에 처음 소개했다. 이후 한 창업 콘퍼런스에서 “피봇은 회사의 비전을 지키면서 수행하는 경영 전략의 전환을 지칭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가 하나의 예시이다. 유튜브의 시작은 동영상 데이팅 서비스였다. 서비스 형태와 고객군은 오늘날과 달라졌지만, ‘동영상을 통한 연결’이란 미션은 큰 변화가 없었다

피봇이란 용어가 대중화되며 그 의미는 포괄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현장에선 하나의 역량이나 주요자원을 보전하면서 변화를 추구하는 스타트업의 모든 행보를 피봇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다.

탄소 소재 튜브로 소형 엑스레이를 만드는 국내스타트업 어썸레이(AweXome Ray)는 사업의 포커스를 기계제조업에서 공기정화산업으로 옮겼다. 탄소 소재는 미세먼지 집진 및 살균 효과가 있는데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수행한 변화이다. 이렇게 정체성의 변화가 있어도 최근에는 피봇으로 간주하는 편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동일한 인적 자원으로 새롭게 창업한 행위도 피봇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팟캐스트 서비스를 실패하고 동일한 인적 구성으로 재창업해 성공한 트위터가 하나의 사례이다. 회사의 간판이 달라졌기에 다소 논란은 있지만, 핵심 인력은 변하지 않은 부분적 변화라는 점에서 이 역시 피봇으로 간주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준비된 변화, 피봇

피봇은 준비된 변화이다. 가설 검정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설은 감이 아닌 데이터로 설정한다. 피봇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에릭 리스 역시 피봇은 구조화의 과정으로 진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준비가 미진한 피봇은 환영 받지 못한다. 대안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줄 고객은 없다.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낭비했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내부적으로 구성원들의 동요와 함께 창업자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조건과 목적을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피봇은 창업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시할 것이다. 징검다리를 건너듯이 준비한 가설들을 연달아 해결하다 보면 창업자는 스스로 불확실한 환경을 벗어나고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입버릇처럼 피봇을 말하기 전에, 창업자와 관계자들은 얼마나 준비가 되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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