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현대도시 속 ‘이곳’은 선물이다[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융합·구별 양립하는 현대사회…생산성 높아져도 휴식은 부족
열림과 침묵으로 현대인 휴식처 역할하는 ‘깜삐 예배당’ 주목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 최근 도시공간의 용도는 빠르게 융합, 전환된다. 이 같은 사례는 이제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개인과 가족의 전유 공간이었던 집이 이제는 전통적인 기능을 벗어나 에어비앤비(Airbnb) 등 공유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여행객에게 잠시 내어주는 숙박공간 역할을 한다.
상업용 공간 역시 ‘숍 인 숍(shop in shop)’으로 운영되거나 특정 요일 또는 시간대 동안만 타인이나 타업종에게 대여되는 등 공간 점유 방식이 유연해지고 있다. 일부 상업시설은 물건을 파는 공간보다 상품을 경험하는 공간이 더 넓어진다. 또 창고가 판매공간이 되는 사례도 나타난다. 과거에는 건물의 외형만 보고 그 건물의 용도나 이용방식을 규정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외형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반전의 콘텐츠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필자가 전공한 도시계획은 원래 ‘도시공간 분리’가 목적인 학문이었다. 생산공간과 주거공간의 분리, 위해시설과의 분리, 보건과 위생을 위한 분리, 도로와 보도의 분리 등 안전과 기능, 편리와 효율을 위해 공간을 분리하는 것이다.
도시공간은 시대에 따라 분리와 융합의 역사를 이어가기도, 역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공간의 분리와 융합 중 어떤 것이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할까.
융합하는 도시공간, ‘까칠한’ 배타성 보이기도
도시공간의 융합은 인간에게 편의와 효율성을 가져다줘 생산성을 높여준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러한 생산성으로 획득한 시간을 온전히 휴식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성이 높아진 만큼 세상의 속도가 빨라졌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져 현대사회는 여전히 분주하다.
우리는 퇴근을 했어도 일에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다. 오죽하면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제화하겠다고 할까. 최근엔 휴가를 위해 ‘마음챙김’이라는 명상을 바캉스 대신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공간과 사회는 꾸준히 융합되고 편리해지며 더 빨라졌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분리되고, 구분되고 더 느려지고 싶어한다. 현대인들은 이런 행동을 ‘힐링’이나 ‘충전’이라고 표현한다.
특히 도시공간은 꾸준하게 융합되고 있지만 동시에 ‘까칠한’ 측면도 드러낸다. 이에 특정 방문객을 제한하는 ‘까칠한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식당, 카페 등 사람들이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하는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노 키즈 존(No Kids Zone)’, ‘노 펫 존(No Pet Zone)’이라며 출입에 조건을 부여하는 곳들이 대표적이다. 어떤 식당은 ‘1인 1식 주문’이 의무사항이며 어떤 카페는 손님이 3시간 이상 머무르는 것을 제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예스 키즈 존(Yes Kids Zone)’, ‘예스 펫 존(Yes Pet Zone)’처럼 출입제한 트렌드를 역이용하는 비즈니스도 등장했다. 까칠함이 무언가를 배척하는 동시에 포용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의미다.
소란한 도심 속 침묵의 공간 ‘깜삐 예배당’
도시에서의 느림은 어떤 것일까. 어떤 공간들이 구분, 분리되면 도시인으로 하여금 세상의 속도로부터 조금 비껴가게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생각한다. 그러나 도심 속 종교시설(공간)은 이미 또 다른 분주함이 존재하는 곳이다. 침묵과 고요함이 있는 종교시설은 종교가 쇠퇴한 건축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구나 예배당에서 평화와 고요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출신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면 연중 언제라도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하 생략)”
헬싱키 깜삐 예배당(Kamppi Chapel) 출입구에 붙은 안내문이다. 깜삐 예배당은 핀란드 헬싱키 중심부에 있는 나린까(Narinkka) 광장 북쪽에 자리한 독특한 외형의 건물이다. 노아의 방주 같기도 하고, 거대한 나무의 밑동 같기도 한 이 건축물은 서로 다른 세 가지의 목재로 내·외관을 장식했으며 내부 조명도 자연채광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건축학적으로 많은 의미를 갖는다. 목재 소재의 외형과 색깔 때문인지 멀리서도 눈에 잘 띄지만 겉모습만 봐서는 예배당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깜삐 예배당이 있는 나린까 광장은 핀란드 내에서도 가장 활기찬 곳이다. 이 일대는 인근 헬싱키역 이용객으로 넘쳐나며 관광객들의 약속장소로도 활용된다.
이에 상업공간과 기업들의 대형광고, 판촉 행사로 늘 번잡하고 소란스럽다. 이 같은 유럽 광장은 대형 성당이나 교회, 시장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형 성당이나 교회는 주로 석조건축물이다. 그런데 이곳에 대형 석재 성당 대신 목재로 만든 아담한 예배당이 있는 것이다.
묘한 이끌림에 따라 들어간 내부는 더 신비롭다. 이 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관광객이지만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을 지킨다. 이 예배당의 별칭이 왜 ‘침묵의 예배당’인지 알 수 있다.
예배당이지만 공식적인 예배는 없다. 깜삐 예배당은 바쁜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고요한 고백의 장소가 돼 준다. 예배당은 누구든지 출입이 가능하며 세계 주요 언어로 번역된 안내서가 비치돼 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회복지사들이 상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공간이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늘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할 종교시설의 출입문에서도 최근에는 이단의 출입을 금하는 안내표지판을 제일 먼저 발견할 수 있다. 예배도 없고 종교인도 없지만, 이 공간은 쉼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이곳은 까칠하게 질주만 하는 현대도시 공간에 현대인들이 잠시 시간을 멈출 수 있도록 주어진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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