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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현상’ 주목해야 하는 이유 [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음악시장 비주류 ‘베이비부머 여성’ 공략해
스토리텔링·부드러운 남성성으로 서사 쌓아

가수 임영웅이 지난해 12월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전국투어 ‘아임 히어로’(IM HERO) 앙코르 콘서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 물고기뮤직]
[허태윤 칼럼니스트] 가수 임영웅의 콘서트 예약이 지난 9월 온라인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다. 티켓 예매 트래픽이 1분 만에 최대 370만에 달해 인터파크 역대 최대 기록이라는 후문이다. 나훈아, 방탄소년단(BTS)의 기록을 깬 것이다. 어머니의 티켓을 구하기 위해 아들딸이 동원됐고,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은 더 많은 국민이 볼 수 있도록 공연장이 아니라 호남평야에서 공연하라고 울먹였다.

음원시장에서 올린 신기록 행진도 놀랍다. 임영웅이 지난 10월 9일 발매한 신곡 ‘두 오어 다이’(Do or Die) 이야기다. 이 음원은 시장에 공개된 뒤 1시간 만에 멜론 실시간차트 1위, 멜론 톱100 3위, 지니 4위, 벅스 2위를 기록했다. 올해 발매된 곡에서는 멜론 톱100에 가장 빠르게 1위를 차지했다. 벅스와 지니 등 다른 서비스에서도 1위를 달성해 음원차트를 ‘올킬’했다.

임영웅 현상은 음원시장 밖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올해 4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대구FC의 경기는 K리그 유료 관중 신기록을 세웠다. 임영웅이 시축을 했기 때문이다. 4만5000명은 유료 관중이었고, 무료 관중을 더하면 4만7000여 명이 경기장에 운집했다. 임영웅 하나로 K리그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임영웅을 광고 모델로 한 브랜드의 성공도 흥미롭다. 쌍용자동차(현 KG모빌리티)가 2020년 경영 위기를 겪고도 기사회생했는데, 사실상 임영웅 효과 덕분이었다. 임영웅을 ‘올 뉴 렉스턴’의 모델로 선정했고, 이 차량은 전월 대비 54% 판매 대수가 증가했다. 청호나이스의 ‘에스프레카페’도 임영웅 효과에 판매량이 전년 대비 3배 늘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인 티빙은 임영웅 콘서트를 생중계해 일간 활성 사용자 수(DAU)와 신규 설치 기기가 급증했다. 역대 티빙 생중계 중 가장 높은 유료 가입자 수도 기록했다. 실시간 시청 점유율은 96%에 달했다.

임영웅은 시대를 풍미한 트로트 가수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현상이 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브랜딩 차원에서 살펴보면, ‘베이비부머’ 여성 시장을 잘 공략한 덕이다. 베이비부머 여성은 기존 가요 시장에서 주류가 아니었다. 이들은 이미자와 나훈아 등 원로 가수의 연말 송년 콘서트나 쎄시봉 콘서트의 소비자로 여겨졌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TV조선의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 이들을 중심으로 한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다.

여성 ‘베이비부머’ 공략…타기팅 빛 발했다

BTS의 팬클럽이 ‘아미’라면, 임영웅의 팬클럽은 ‘영웅시대’다. 50~70대 여성이 핵심 회원이며, 가입자만 20만명이다. ‘배영주’(배워서 영웅이 주자)와 같은 영웅시대 소모임은 스마트폰으로 이른바 ‘덕질’ 방법을 자발적으로 익힌다. 임영웅의 신곡이 음원차트에 오르도록 하기 위해서다. 임영웅이 선행을 하면, 그만큼의 선행을 따라 한다. 영웅시대가 임영웅의 이름으로 기부하면, 임영웅은 영웅시대의 이름으로 다시 기부하는 식이다. 지난 7월까지 임영웅과 영웅시대가 기부한 성금도 30억원에 이른다. 

이들이 영웅시대에 가입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로부터 받은 위로를 갚기 위해서다. 처한 상황과 지내온 시간은 다르지만, 임영웅의 노래를 들으면서 우울증과 불면증에서 벗어났다.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임영웅에서 이유를 찾기도 한다.

30대인 임영웅이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영웅이 부른 곡 중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받은 것은 유튜브 조회수 5500만회를 넘긴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다. 이 곡은 블루스 가수인 김목경이 작곡했고, 그가 1990년에 불렀다. 이후 가수 김광석이 이 곡을 다시 부르며 인기를 얻었다. 김광석을 좋아했던 4050세대 사이에서도 유명한 곡이었다. 임영웅은 이 곡을 단숨에 베이비부머 여성의 인생 노래로 만들었다.

베이비부머 여성들은 산업화를 이끈 남편을 내조하며 살아온 ‘마처세대’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지만, 자녀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라는 뜻이다. 젊은 시절에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권위에 시달렸고, 현재는 어린 손자를 돌보는 황혼육아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이들의 마음을 위로한 노래가 바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다.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노사연이 부르고 임영웅이 리메이크한 ‘바램’도 이들에게 위로를 준다. 이유는 같다. 임영웅은 이런 곡들로 베이비부머를 위로했고, 기특한 아들, 효심 깊은 손자가 됐다. 은퇴 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베이비부머는 임영웅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덕질에도 참여한다. MZ세대와 알파세대가 주도한 K-팝 시장에 ‘베이비부머 여성’이 새로운 거대 시장이 된 것이다.

스토리텔링과 부드러움의 조화

임영웅의 스토리텔링(서사)도 성공 요인이다. 그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사고로 떠나보냈다. 어머니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자연스럽게 팬인 어머니, 할머니에 대해 따뜻한 심성을 보인다. 노래를 곧잘 불러 실용음악과에 진학했지만, 오랜 무명 시절도 보냈다. 모아둔 돈은 떨어지고 월세도 밀리자 군고구마를 팔며 생계를 이어갔던 시절의 이야기, 전국노래자랑부터 거리 공연까지 여러 무대를 전전한 뒤 2020년 ‘미스터트롯’에서 1등을 거머쥔 이야기는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흙수저’ 서사가 베이비부머에게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우리 영웅이’를 만든 것이다.

임영웅은 ‘부드러운 남성성’이 드러나는 상품성도 지니고 있다. 남진과 나훈아, 조용필로 이어지는 한국의 트로트는 남자의 순정과 사나이다움을 담아내는 가사가 주류였다. 가사에도 ‘사나이’나 ‘총각’, ‘남자’ 등의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이들의 전성기는 1970~1980년대로, 이런 특징은 당시의 사회·문화적 소산이기도 하다. 반면 임영웅의 노래에는 부드러운 남성성이 녹아있다.
(‘트로트에 나타나는 남성성의 상투성과 전복성’ 장유정 단국대 교수 논문 발췌)

가부장적 남성성에 휘둘린 베이비부머 여성을 위로하는 부드러운 외모와 창법은 팬들이 임영웅에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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