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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마다 집값은 왜 다를까[김현아의 시티라이브]

[통계로 읽는 도시] ①
전세보증금, 무이자 차입금 형태로 금융조달 가능
1997년 외환위기, 1년 후 전셋값 18% 하락…‘역전세난’ 시초

서울 종로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에 부동산 매물 정보가 게시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도시는 평평하지 않다’. 이는 도시의 공간지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경제지형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도시는 흥하고 어떤 도시는 쇠퇴한다. 지도상에서 점과 같았던 도시들이 수천 개의 기업들과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생기면서 거대도시로 변모하기도 하고 새로운 경제수도들이 과거의 경제수도들을 대체하기도 한다.

번성한 도시도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잘사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격차는 점점 더 강화되면서 도시의 경제지형상 특정지역을 더 뾰족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도시의 경제지형을 설명하는 지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개인소득, 자산(주택가격 포함)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는 도시별, 동네별 집값 차이가 현격하다. 서울에서는 전세보증금 수준의 자금이지만 이 돈을 들고 지방에 내려가면 손쉽게 주택 매매가 가능하다. 반대로 지방에서 집을 팔아 자금을 마련해 서울로 와도 전세보증금을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도시 내부에서도 이러한 격차는 있다. 어떤 지역은 집값이 비싼 반면, 어떤 지역은 집값이 지방도시 수준이거나 더 낮다.

더 이해가 안되는 것은 바로 전세가격의 수준이다. 주택가격 지표 중에는 ‘전세-매매비율‘이라는 지표가 있다. 전세가격을 매매가격대비 비율로 환산한 값이다.

2023년 10월 말 기준, 서울 아파트의 전세-매매비율은 47.2%이고 경기도는 59.3%이다. 6개 광역시 평균이 58.6%인 것에 비하면 경기도의 아파트 전세-매매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전세가 상승, 1980년대 말부터 본격화

그런데 이들 지역 내부에서는 구별로 편차가 더 크다. 서울에서 전세-매매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금천구(59.5%)이고 가장 낮은 지역은 강남구(40.62%)다. 경기도의 경우 양평군(76.6%)이 가장 높고, 과천시(48.9%)가 가장 낮다. 집값의 차이는 대부분 쉽게 이해하는데 반해, 전세가격의 수준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어느 지역에서는 집값 절반의 돈으로 전세를 얻을수 있는 반면, 어떤 지역에서는 집값의 3분의 2 이상의 목돈이 필요한 것일까. 우선 전세가격 변화의 역사를 살펴보자.

공식적인 통계가 집계된 이후 전세가격 변동 폭이 가장 컸던 시기는 1980년대 말이었다. 당시 전세가격 상승률은 전국 기준, 연 20% 이상으로 3년이나 지속 상승했다. 이 당시 신문기사를 찾아보면 급등한 전세가격 때문에 수도권에서는 임차인이 자살을 한 사건도 있었다.

문제는 전세가격 뿐만 아니라 주택매매가격도 함께 급등했는데 결국 이는 주택 200만가구 공급계획이 발표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세방식은 집주인이나 세입자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전세제도 정착의 구조와 배경.
전세보증금은 집주인 입장에서 무이자 차입금으로 볼 수 있다.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에는 주택 구매수요가 많았지만 대출 금리가 높고 대출자체도 어려웠다. 전세보증금은 별도의 대출이자가 필요하지 않아 전세를 끼고 주택을 사두는 수단이 됐다.

또한 전세보증금을 많이 받을 이유도 없었다. 몇 년만 지나면 주택가격이 상승해서 매매차익을 얻을 수 있어서다. 그저 전세는 주택 구입 시 레버지리를 일으켜 처분 전까지 활용하는 금융조달 수단의 일종이었던 셈이다. 

전세가격 급등에 세입자 고통은 컸지만 그들 입장에서도 전세가 유용한 점은 있었다. 내 집 마련을 위한 저축의 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세는 주택가격의 50%만 지불하고도 주거 서비스를 누릴 수 있었고 2년이 지나면 원금을 고스란히 돌려받았다. 전세로 몇 년 살다가 모은 돈을 보태 조금 더 비싼 전세주택으로 몇 번 이사를 하다가 결국은 내 집을 마련하는 사람이 많았다. 

1997년 말 외환위기…전세 시장 구조변화의 시작

그러나 1997년 말 외환위기는 주택시장의 커다란 구조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그 여파는 전세시장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주택 매매가격은 물론, 전세가격이 급락했다. 1998년 전국의 주택 전세가격은 18.4%나 하락했다. 이는 통계가 집계된 이래 최대 하락치다. 급락한 전세가격 때문에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제 때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가 늘었다. 일명 ‘역전세난’의 시초가 된 것이다. 

그러나 전세 수요는 금방 회복됐다. 특히 이 당시에는 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수반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가장들이 사업자금을 마련하려고 주택을 처분하고 전세로 거주하는 일이 많았다. 주택 구매 수요는 적었지만 전세 수요는 많았던 것이다.

주택 매매가격은 영원히 상승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의 믿음이 확산되면서 구매를 꺼리는 분위기였다. 그러자 지금처럼 전세주택의 월세 전환이 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 당시의 월세 전환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미 전세매매비율이 60%를 넘어선 상황에서 월세 전환율은 10%를 넘었고 대신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크게 낮아지자 주택 구매자가 늘어난 것이다.

전세가격 상승과 월세 전환 압박이 오히려 전세가구를 매매로 전환시키는 힘이 됐다. 매매 수요 증가로 주택매매가격이 다시 급등했고 월세 전환추세는 다시 수그러들게 됐다. 전세가격이 상승했지만 매매가격에 비해 속도가 느렸다. 실제 2008년까지 전세가격 대비 매매가격의 비율은 40% 이하로 급감하게 된다. 

2000년대 전세시장에서 특징적인 것은 대규모 재개발, 재건축 사업으로 국지적인 전세가격 변동폭이 컸다는 점이다. 사업 착공 당시에는 이주 수요 때문에 전세가가 폭등하지만 완공시기에는 오히려 전세물량이 증가해 전세가가 크게 하락하는 역전세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 때의 영향으로 서울시는 지금도 재개발, 재건축 사업의 인허가 과정에서 물량을 조정해 이주시기를 분산시키고 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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