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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죄가 기업들 ‘공포’된 이유[김기동의 이슈&로]

기업 경영에 있어 가장 큰 법률 리스크 ‘배임’
경영 판단 두고 해석 다른 韓-美 대법원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LawVax) 대표변호사] 기업이 경영활동을 하면서 자주 겪는 대표적인 법률 리스크는 배임(背任)과 관련된 것이다. 기업 수사 진행 시 단골로 등장하는 죄명은 배임죄이고, 기업을 상대로 형사 법률 자문을 하는 로펌이나 변호사들이 많이 다루는 업무 중 하나도 배임이다. 

▲회사가 자금을 차입 및 대여하거나 계열사나 관계회사를 지원하는 경우 ▲신규 투자를 하는 경우나 다른 기업과 계약을 체결하거나 거래를 하는 경우 ▲회사 자금을 사용하는 경우 등의 경영상 행위들은 경우에 따라 배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예컨대 주식회사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유상증자나 인수합병 시에는 해당 기업의 주식 가치를 평가하게 되는데 그것을 잘못하게 되면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전문가 아니면 판단 어려운 배임죄

제3자 배정방식으로 신주를 발행하면서 신주를 시가보다 현저히 낮은 가액으로 발행하면 그 차액에 상당하는 금액만큼 회사의 자산을 증가시키지 못한 결과가 돼 이러한 주식 평가 등에 관여한 회사의 이사에게는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판례다. 인수합병의 경우에도 유사한 법리가 적용된다.

특히 비상장주식은 상장주식과 달리 거래되는 시장가격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그 가치 평가와 관련한 이슈가 자주 발생한다. 비상장회사 주식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으로는 순자산가치 방식, 수익가치 방식, 유사 업종 비교 방식 등이 있지만, 어떤 방식이 적절한지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밀한 검토 과정을 거치지 않고 회사에서 편한대로 주식 평가 방법을 정했다가는 배임죄가 될 수 있다.

판례를 보면 비상장주식 평가 시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당해 업종의 특성, 당해 회사의 현황 및 특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회사의 실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기업 매출이나 이익이 성장하는 회사의 경우 해당 사업 분야의 현황 및 전망, 거시경제 전망, 회사의 내부 경영상황, 사업계획 또는 경영계획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런 사항을 반영하지 않은 채 과거 자료에 의존하는 평가 방식은 맞지 않다는 것이 판례다. 그래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판단이 쉽지 않다. 

경영진의 배임행위가 인정되면 민사적으로는 회사나 회사의 이해관계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고, 형사적으로 배임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이 적용돼 최대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다. 상장회사의 임직원이 배임죄를 범하면 그 규모, 내용 등에 따라서 한국거래소의 심의를 거쳐 주식매매가 정지되거나, 상장폐지에도 이를 수 있다. 이에 기업인들에게 배임죄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다. 

배임죄 고의성 여부가 중요

업무상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업무상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했을 때 성립한다.(형법 제356조, 형법 제355조 제2항)

배임죄의 처벌은 무거운 데 반해, 배임이라는 개념의 범위가 매우 넓은 데다, 범죄 구성 요건 또한 명확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배임죄의 구성 요건 가운데 하나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인 업무마다 해석의 영역에 맡겨져 있다. 2021년 횡령·배임죄 재판의 1심 무죄율은 5.8%로, 전체 형사사건의 1심 무죄율인 3.1%보다 훨씬 높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 등 선진 국가에서는 판례를 통해 ‘경영 판단의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이사가 내린 의사결정이 합리적 근거가 있고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믿음 하에 어떤 다른 고려에 의한 영향을 받지 아니한 채 독립적인 판단을 통해 성실히 이뤄진 것이라면 이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기본적으로 경영 판단이라는 이유로 배임죄의 고의를 부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기업 경영의 특성에 비춰 배임죄의 고의를 엄격하게 인정하는 해석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즉 “경영상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 발생과 이익 회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을 감안해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하에 이뤄진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배임죄 고의가 인정된다”라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다(2014. 1. 27.선고 2013도2858 판결 등). 그러나 법률 전문가가 아닌 기업인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서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기업 경영자 단체 등은 배임죄를 폐지하거나, 구성요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률 개정 주장을 지속 제기해 왔다. 그러나 대기업 위주의 대한민국 시장구조를 고려할 때, 배임죄 자체는 필요하다는 반대 의견도 많아 당장 입법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기업은 경영상 행위 때 법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필수적으로 배임 성립 소지가 있는지 법률 전문가의 사전 검토를 거친 다음 심사숙고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나아가 검찰에서 배임죄 적용 기준을 보다 객관화해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준다면, 우리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 및 윤리경영의 요구를 충족하면서도 투자와 고용 창출에 적극 나서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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