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안 낳는 韓, 산업계 붕괴 위기...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인구 절벽 위기’ 韓 산업 어디로]①
인건비 저렴한 곳으로 공장 이전…인재도 해외서 찾는다
“내수 시장만으로 생존 불가능”…글로벌로 눈 돌린 유통사
1950년대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은 그동안 산업계 곳곳에서 한국의 경제성장을 지탱해왔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한국은 노동력 부족에 따른 생산성 위기를 겪는 분위기다. 1990년대 이후 풍부한 인력과 내수를 바탕으로 성장해 온 국내 기업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낼까. 이코노미스트는 인구 절벽 위기 아래 국내 산업계 동향을 살펴봤다. 또 저출산·고령화 기조 속 오히려 각광받는 산업은 무엇인지, 이웃 나라 일본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었던 산업계의 노력은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봤다.[편집자주]
또한 생산 가능 인구 감소로 제조업 등 노동 집약 산업의 생산성 둔화 우려마저 커진다. 우리 산업계 안팎에서 “일을 할 사람도 물건을 살 사람도 없어질 수 있다”는 비관적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디지털 전환 밖에는 해법이 없다고 보는 분위기다. 단기적으로는 해외 인력 수급, 공장 해외 이전 등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2050년 생산 인구 2000만명대…대책 절실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이다. 한국 합계출산율은 2016년부터 7년 연속 감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다. 2022년 출생아 수는 총 24만9000명으로 전년과 비교해 4.4% 감소했다.
2023년엔 상황이 더 나빠졌다. 지난해 1분기 0.81명으로 소폭 증가하긴 했지만, 2분기와 3분기엔 0.70명을 각각 기록했다. 아직 통계치가 나오진 않았지만 4분기엔 0.6명대 진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통계청은 이에 따라 장래인구추계(2022~2072년)에 2023년 합계출산율을 0.72명이라고 써냈다. 올해엔 0.68명, 내년엔 0.65명을 전망하며 향후 0.7명 선도 어렵다고 진단했다.
산업계의 근심은 부족해진 생산 가능 인구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생산 가능 인구는 2020년대 약 3700만명에서 2030년대에는 3400만명 밑으로, 이후 2050년에는 2400만명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줄어든 인구에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고심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인력이 필요한 제조업이다. 제조 대기업들은 국내 제조 인력 부족 문제에 주목하고 해결책 마련을 위한 내부 논의를 이어오고 있지만 확실한 대안은 없다는 분위기다.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정도의 논의에 그치고 있다.
국내 한 제조 대기업 관계자는 “노동력 수급은 제조 기업에 있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사회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기업이 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에서 노동력 공급이 어려워진다면 인건비가 싼 베트남·태국 등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급 인력 수급이 기업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IT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모수가 줄어들수록 인재를 영입하기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국내 IT대기업 한 임원은 “꽤 오래 전부터 IT인재를 인도·베트남 등의 현지에서 수급하고 있다”며 “국내 대학과 협업해 인재 육성 후 미리 취업시키는 등의 경쟁력 유지 방안이 있지만, 출산율 감소로 절대적인 모수가 줄어든다면 이마저도 언젠간 한계를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대기업들은 이미 디지털 전환을 통해 부족한 인력 대체에 나섰다. 기업들은 인구 절벽을 대비할 수 있는 최고의 대안으로 결국 디지털 전환을 꼽고 있다. 하지만 자금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의 상황은 심각하다.
실제 산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을 중심으로 자동화 등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고 있지만, 실제 전환 속도는 빠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이달 내놓은 생산 가능 인구 감소 대응을 위한 기업의 생산성 제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저조한 디지털 전환 수준 ▲대·중소기업 간 생산성 격차 심화 ▲제조업·서비스업 간 생산성 격차 심화 ▲경직된 노동 시장 등이 한국의 생산성 증가율 둔화 요인으로 거론됐다. 해당 보고서는 “기술 혁신이 실제 산업에 적용돼 생산성 증대로 이어지기까지는 시차가 존재한다”며 “이를 고려해 기술 개발·확산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무역협회 측은 “디지털 전환 수준이 높은 기업일수록 수출 금액은 높게 나타났다”라고 분석하면서도, “우리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 속도가 더딘 만큼, 이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성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중소기업 대상 스마트 팩토리 지원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도 국내 대기업과 합심해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 자동화 등 생산 가능 인구 감소 대비책을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인구 감소에 따른 생산성 둔화 대처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예상보다 생산 가능 인구 감소 속도가 빨라, 조선업 등 노동 집약 산업의 인력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향후 글로벌 인재 수급이 기업 생존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글로벌 인적자원관리(HR) 플랫폼 딜(Deel)과 같은 기업이 업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다.
이 기업은 약 160개국 2만여 개의 고객사를 대상으로 인재 채용 연결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기업이 위치한 국가가 아닌 다른 국적의 직원 채용 과정을 지원하는 서비스로 수익을 창출한다. 카렌 응(Karen Ng) 딜 아시아 지역 총괄은 “비즈니스는 점차 글로벌화 되고 있고, 전 세계 여러 국가에 흩어진 인재를 고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며 “우리와 같은 플랫폼 등을 활용해 글로벌 인재들을 직접 활용하는 경험이 향후 기업 생존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계 봉착한 내수 시장…차별화가 ‘살길’
제조업 중심의 생산성 둔화뿐 아니라 내수 시장 붕괴도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약 5100만명 수준인 한국의 총인구는 2072년 4000만명 아래로 줄어들 전망이다.
당장 소비재기업이 많은 유통업계는 비상이다. 잠재 고객 자체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유통업계는 축소된 내수 시장 실적 방어를 위해 꾸준히 가격 프리미엄화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업계가 바로 육아용품시장이다.
지난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줄어든 신생아 수에도 육아용품시장 규모는 2015년 2조원대에서 2023년 초 4조원대를 넘어섰다. 가구마다 아이가 1~2명밖에 없어 업체들이 오히려 용품을 더 프리미엄화해 판매하며 실적이 상승세다.
실제 지난해 유아동복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10.9%로 198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육아용품업계 관계자는 “업체들이 고가 전략을 취해도 부모들이 호응하다 보니 이게 먹히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신생아 수는 더 줄어들텐데 장기적으로 이런 고가 전략이 계속 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우리 소비재 기업이 내수 시장에서 이익을 내려면 최소 7000만~8000만명의 시장 규모를 갖춰야 한다고 진단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7000만명에서 8000만명 정도의 내수 시장 규모가 한국 소비재 기업이 근근이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이라며 “현재 5000만명의 내수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이미 내수 시장을 통해 이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내수 시장 침체가 이미 현실화된 셈이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소매‧유통 기업 50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1분기 경기가 지난해 4분기보다 ‘부정적’이라고 평가한 기업이 많았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1분기 소매‧유통업 경기 전망 지수(RBSI) 전망치는 ‘79’로 집계됐다. RBSI는 유통 기업의 경기 판단과 전망을 조사해 지수화한 것으로, 기업이 느끼는 체감경기를 의미한다. 전망치가 100 이상이면 ‘다음 분기의 소매‧유통업 경기를 지난 분기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많다’라는 의미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다.
대한상의 조사에서 모든 업태가 기준치(100)를 넘지 못했다. 전망치가 88에서 97로 오른 백화점을 빼면, 부정적 전망이 많아진 분위기다. 업태별 전망치 추이는 ▲편의점 80→65 ▲대형마트 88→85 ▲온라인쇼핑 86→78 등이다.
정연승 교수는 “보다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양질의 제품을 개발‧출시해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 전체를 아우르는 제품군을 구축해야 한다”며 “이를 토대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현지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국내 내수 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상생 등을 근거로 소비재 기업에 대한 규제를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며 “대형마트 규제 등 불필요한 규제를 혁신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변화 꾀하는 유통사들...해답은 해외
줄어든 먹거리에 결국 대형 유통사들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 최근 롯데·CJ·오리온 등 식품·유통 대기업들이 바이오 분야서 먹거리를 찾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리온은 최근 5500억원을 투자해 차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항체약물접합체(ADC)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레고켐바이오의 지분 25%를 확보하고 최대 주주가 됐다.
CJ제일제당 또한 CJ바이오사이언스에 힘을 주고 있다. 신약 후보 물질 발굴에 총력을 기울이며 CJ바이오사이언스는 면역항암제, 장질환 치료제, 신경질환 치료제 등 15개의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을 확보했다.
롯데그룹도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를 점찍고 관련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2년 6월 출범한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제약회사 BMS가 보유한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하며 의약품 사업을 시작했다. 2030년까지 송도 11공구 KI20 블록에 3개의 바이오 플랜트를 건설해 총 36만리터(ℓ) 항체 의약품 생산 규모를 갖출 계획이다.
유통사들의 인구감소에 따른 대책은 결국 해외시장 진출이다. 내수 시장이 축소되고 있지만 해외는 여전히 풍부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출산율 감소로 주 소비층인 유소년 인구가 줄고 있어 고민이 커지고 있는 제과업체들은 이미 베트남, 러시아, 인도 등으로 진출해 생산 라인을 증설, 현지 생산체제를 갖추는 등 신규 카테고리 확대에 나섰다.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등 채널사도 해외 시장 선점을 위한 출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롯데는 베트남이 중산층의 비율이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것에 주목, 1990년대부터 식품·외식부문을 시작으로 유통·서비스 부문까지 진출해 활발하게 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재 베트남에는 19개 롯데 계열사가 진출해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한국의 인구 감소 정도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소비재 기업이 국내 시장에서 ‘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라며 “현재의 인구 감소 전망이 현실이 된다고 가정하면, 국내 시장이 아닌 해외 시장에서 활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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