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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에 박사, 70대엔 모델…이젠 인플루언서 꿈꿔요" [이코노 인터뷰]

시니어 모델 윤영주씨 인터뷰
모델 경연대회 최연장자 우승
50세 넘어 대학 졸업…60대에 박사 논문까지
문화·예술계 명사 인터뷰 계획도

시니어 모델 윤영주 씨가 1월 3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이혜리 기자] “‘일단 해보자’. 그게 제일 중요한 마음가짐이에요. 저지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잖아요. 오랜 기간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나는 늘 앞으로 더 나아가기를 바랐죠. 조금은 느린 속도라도 내 에너지가 닿을 때까지,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어요.”

올해로 만 75세. 1949년생 윤영주씨는 시니어 모델이다. 이화여대 불문과 재학 중 스물한 살에 결혼하며 종갓집 며느리가 된 윤씨는 오랜 기간 주부의 삶을 살아왔다. 그러던 중 70세에 모델 워킹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MBN TV 프로그램 ‘오래 살고 볼 일’에 시니어 모델 경쟁자로 참가, 최연장자로 출연해 50·60대들을 제치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패션모델 활동을 시작하며 다방면으로 커리어를 쌓고 있다. 지난해에는 모델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책 ‘칠십에 걷기 시작했습니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제는 시니어 모델을 뛰어넘어 인플루언서(Influencer, 주로 SNS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로서의 삶을 꿈꾸는 그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50대에 ‘에너지’를 되찾다

이화여대 재학 시절 윤씨는 졸업을 두 학기 남겨놓고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다. 결혼하면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당시의 ‘금혼 학칙’ 때문이었다. 첫 아이를 낳은 뒤 20대 중반에는 의상 디자이너를 꿈꾸며 취직했지만 일주일 만에 그만둬야 했다. 남편은 ‘짐 싸서 나가라’며 윤 씨의 꿈을 크게 반대했다. 결국 윤씨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30대에는 방송국 리포터로 1년여간 활동했으며 미술관 큐레이터, 칼럼니스트 등 외부 활동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남편의 반대에 부딪혀 중도 포기해야 했다.

2003년, 50대가 돼서야 윤씨는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한 날개짓을 시작했다. 2003년 이화여대의 금혼 학칙이 폐지되면서 모교로 돌아가 마무리하지 못한 학업을 마쳤다. 공부에 대한 열정은 불타올랐고, 홍익대 대학원에 진학해 미학을 전공했다. 이후 64세 때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모델을 시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학업을 통해 얻은 ‘열정’ 덕분이라는 것이 윤씨의 설명이다. 

“64살에 박사모를 썼어요. 책을 너무 많이 봐서 눈이 심하게 나빠졌죠. 그랬더니 의사가 이제부터 ‘책도 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써오던 에너지가 뚝 끊어지지는 않잖아요. 이 에너지를 ‘어디에 쓰나?’ 생각하다가 어느 날 TV를 보는데 90대 되신 분이 워킹 연습을 하더라고요. ‘나는 70대 청년’인데 저거다 싶었죠. 재미있게 워킹 연습을 하다 보니 경연 프로그램 출연 제안이 왔어요. 최고령자가 떨어진다고 창피할 게 뭐가 있어요. 마음을 비우고 하다 보니 우승까지 하게 됐네요.”
시니어 모델 윤영주씨가 1월 3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거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모델 활동을 통해 전환점을 맞은 그는 시니어 모델로서 무대뿐만 아니라 방송, 광고에서 종횡무진 활동했다. 70대가 돼 이 자리에 오기까지 그가 겪은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한 가정의 아내로서,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공부하고 노력했다. 그는 스스로를 ‘결핍’과 ‘욕망’이 많은 사람이라고 칭했다. 

“시니어 모델 중 예쁘고 스타일 좋은 사람은 정말 많아요. 나이대도 점점 어려지고 있고요.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는 시니어 모델은 그저 예쁜 겉모습만 보여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정 주부로 살 때도 늘 책을 가까이 두고, 미술 작품이나 음악 감상을 했어요. 삶이 풍성해지고 빛나는 느낌이 든달까요. 내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채우려고 했던 거죠. 시집살이를 한 것도 어떻게 보면 ‘결핍’이고요. 그래도 되돌아보니 그 모든 것들이 쌓여서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있는 거니까. 결코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에요. 지금까지 살아왔던 연륜이 이렇게 묻어 나오는 것 같아요.”

“꿈을 향한 도전 계속돼야”

그의 노력은 모델 활동을 하면서 더 빛을 발했다. 무대 위에서 당당한 워킹을 선보일 수 있는 ‘자신감’을 장착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눈빛·걸음걸이 등이 윤영주를 드러내는 차별점이 된 것이다. 

“나이가 들다 보니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소외자가 돼요. 그래도 아직까지 내가 무엇인가 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악착같이 해내죠. 젊은 사람과도 항상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태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해요.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새로운 단어가 얼마나 많은지 알려고 해요. 도태되지 않기 위해 애를 많이 쓰죠. 겉모습에는 크게 신경 안 써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피부관리나 시술 같은 것도 하지 않죠. 오히려 내면을 어떻게 단단히 쌓을 수 있을 지 늘 고민해요.”
시니어 모델 윤영주씨가 1월 3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윤씨는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내면의 아름다움과 자신감으로 이제 모델을 넘어 인플루언서로의 삶을 꿈꾼다. 그는 현재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며 음악, 미술 등 예술과 관련한 콘텐츠를 전달하고 있다. 윤씨의 이야기를 받아보는 팔로어는 2만명이다. 궁극적으로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송 진행자가 되는 게 목표다. 

“인플루언서 혹은 유튜버가 되고 싶어요. 의미 없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싶지는 않죠. 예술을 통해 삶이 얼마나 풍성해지고 빛날 수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이런 예술관을 함께 나눠보고 싶어요. 문화·예술계 명사들을 인터뷰하는 방송의 진행자가 되고 싶죠. 특히 나이 드는 걸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도전하라’고 전하고 싶어요.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5년 후면 80세에요. 적어도 5년은 할 것 같아요. 그 이후에도 하면 좋겠지만 잘못하면 노욕(老慾)일 수도 있겠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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