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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파’가 나타났다 [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주의 집중력 짧고 관계 유연한 세대
가성비와 재미 합쳐진 ‘가잼비’ 추구
글로벌 리더십 유지하려면 주목해야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사진 연합뉴스]
[허태윤 칼럼니스트] ‘잘파’(Zalpha)가 등장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속 인조인간(사이보그)의 이름 같은 잘파는 ‘엠지세대(MZ세대)’의 다음 세대를 뜻한다. 잘파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알파세대를 정의한 호주의 사회학자 마크 맥크린들(Mark McCrindle)는 잘파세대를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후반에 출생한 Z세대와, 2010년 이후 태어난 알파세대를 아우르는 세대로 규정했다. Z세대는 MZ세대로도 묶이지만, 밀레니얼세대보다 알파세대와 묶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에서다.

Z세대는 디지털 시대에 성장해 소셜미디어(SNS)의 부상을 목격했고, 알파세대는 스마트폰과 함께 세상에 태어난 ‘진짜’ 디지털 네이티브다. 두 세대를 묶어 이해한다면, Z세대와 알파세대의 특성과 경험을 이해하기가 더 효과적이다. 알파세대가 성장하면서 소비 시장이 이들을 주목하게 된 것도 ‘잘파세대’의 출현에 한몫했다.

잘파세대가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잘파세대는 오는 2025년에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전망이다. 맥크린들연구소에 따르면 이 시기 알파세대의 인구수만 22억명에 달한다. 이는 베이비붐세대의 인구 수를 추월한다. 잘파세대가 소비 시장에서 5년 내 중요한 소비 주체로 부상한다는 뜻이다.

잘파세대가 어린 시절부터 자본주의에 노출된 ‘자본주의 키즈’라는 점도 시장이 이들 세대에 주목하는 이유다. 자본주의에 익숙해 구매력을 갖췄다는 점도 특징이다. 잘파세대는 가족구성원의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잘파세대는 자녀를 위해 10명이 지갑을 여는, 이른바 ‘텐 포켓’(10 pocket) 현상의 주인공이다.

잘파세대는 어떤 세대보다 정보기술(IT)에도 익숙하다.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인 만큼, 다른 세대보다 디지털 영향력이 막강하다. 브랜드가 디지털 시장에 대응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잘파세대가 3~4년 뒤 전 세계 소비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 만큼, 이들을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해 준비하는 일이 기업들에는 시급한 과제다.
지난해 10월 열린 강동 청소년 진로직업박람회에서 청소년들이 진로·직업 체험을 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주의 집중력 3초…하지만 관계 맺기 유연해 

잘파세대는 그동안 나타난 세대와 다른 여러 특징을 지니고 있다. 황지영 노스캐롤라이나대학 마케팅전공 교수는 잘파세대의 특징으로 ‘주의 집중력’(attention span)을 꼽았다. Z세대와 알파세대의 주의 집중력은 각각 8초, 3초다. 밀레니얼세대의 주의 집중력이 20초인 점과 비교하면 잘파세대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관심을 두는 시간이 매우 짧다.

‘틱톡’을 비롯해 짧은 형태(숏폼)의 동영상 플랫폼이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한 점도 잘파세대의 영향력 덕분이다.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에는 드라마를 짧게 편집한 동영상 콘텐츠가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한다. 넷플릭스는 동영상이나 콘텐츠를 ‘빨리보기’로 소비하는 잘파세대를 위해 새로운 기능도 선보였다. 진지한 내용의 콘텐츠보다, 가벼운 소재의 콘텐츠가 이들 세대를 더 잘 설득한다는 뜻이다. 집중력은 자연스럽게 짧고, 소비는 가볍고 단편적이다.

시추에이션십(Situationship)이라는 단어도 잘파세대의 ‘관계맺기’를 잘 설명한다. 시추에이션십은 책임을 지고 진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흥미에 맞게 즉흥적이고 유연하게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한다. 시추에이션십 해시태그(#situationship)는 틱톡에서 30억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옥스퍼드대 출판사는 2023년을 대표하는 어휘의 최종 후보로 이 단어를 올렸다.

잘파세대는 가성비와 재미를 모두 추구하는, 이른바 ‘가잼비’(가성비와 재미를 합친 말)도 선호한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재미가 더해져야 지갑을 연다는 뜻이다. 이들은 디자인과 스토리 등 콘텐츠로 즐길 수 있는 브랜드를 쫓는다. 신한카드가 잘파세대를 위해 출시한 신한플리체크카드가 대표적이다. 신한플리체크카드에는 일본의 산리오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이 카드는 출시 4일 만에 신청 건수 5만건을 넘겼다. 신용카드는 할인과 적립 등 혜택을 앞세우고 있지만, 재미를 쫓는 잘파세대는 ‘디자인’을 일종의 혜택으로 여겼다.

‘디토(Ditto)’ 소비도 잘파세대의 소비 성향을 잘 설명한다. 디토는 라틴어로 ‘나도’라는 뜻이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유명인의 제품을 따라 사는 소비 행동을 뜻한다. 미국의 ‘스탠리 텀블러’ 열풍이 디토 소비의 사례다. 스탠리 텀블러는 불에 탄 자동차 속에서도 고장나지 않았다는 점이 틱톡을 통해 알려지며 미국 10대의 머스트 해브(Must have) 제품이 됐다. 스탠리 텀블러를 사려는 ‘오픈런’이 이어졌고 이 제품을 생산하는 스탠리의 매출도 지난해를 기준으로 7억5000만 달러(약 655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4년 전과 비교해 10배 이상 뛴 수치다.

잘파세대는 알고리즘을 파괴하기도 한다. 이른바 ‘안티 알고리즘’이다. 미국에서는 온라인에 남겨진 흔적을 추적하는 알고리즘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18~39세 소비자 43%는 구글이나 유튜브를 익명으로 사용한다. 플랫폼은 이런 정보를 모아 추천 알고리즘을 제공하는데 이런 기능을 사생활의 노출로 봐서다.

다만 국내 기업들이 잘파세대에 무조건 대응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전 세계 80억 인구 중 0~19세의 비중은 33.2%다. 한국은 같은 나이대 인구 비중이 15.5%에 불과하다. 한국의 낮은 출생률을 고려하면 기업들이 잘파세대의 소비 성향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은 공허하게 들린다.

하지만 일본의 디지털화 부진의 이유가 고령화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내수시장이 노인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기술과 정책도 같은 방향으로 개발돼 디지털화를 선도적으로 추진하지 못했다.

한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해외 시장에 의존한다는 점에도 일본과 상황이 다르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해외 상황을 잘 주시해야 하는 만큼 잘파세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리더십을 유지하기 어렵다. 한국은 인구 위기 상황에 놓였지만, 세계 인구의 절반이 잘파세대가 돼가는 상황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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