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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 거물’ 구광모? ‘형이 왜 거기서’…본업서 한 발짝 내디디니 ‘전장 활짝’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거물]② 구광모 LG그룹 회장
씨앗서 거목으로…LG ‘전장 10년 정조준’ 결실
LG그룹 전장 사총사, 수주·매출·연구 성과 ‘뚜렷’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미래형 자동차에 적용된 디자인을 살피고 있다. [사진 LG]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LG’ 상표를 단 완성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LG그룹에서 제공하는 부품이 없다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 자동차는 숱하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자동차 산업계 거물’로 불리는 이유다.

1949년 창간된 모터트렌드는 미국 유력 자동차 전문지로 꼽힌다. 이 매체는 매년 ‘올해 자동차 업계 인물 50인’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이는 자동차 업계를 움직이는 파워리스트(거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표로 유명하다. 올해 명단에 오른 한국 기업인 두 명이 시장에서 주목받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5위)과 구광모 LG그룹 회장(10위)이 그 주인공이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기아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정 회장이 올해 5위에 선정된 건 고개가 끄덕여진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써냈고, 수소·미래항공모빌리티(AAM) 등 신사업 영역에서의 외연 확장도 이뤘다. 정 회장은 2023년엔 영향력 1위를 뜻하는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 2023)로도 선정된 바 있다. 현대차그룹 내에선 올해 정 회장 외에도 4명의 주요 경영진이 이번 ‘거물 명단’을 장식했다.

‘자동차 업계 인물 50인’에 5명을 배출한 기업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이는 회사가 그만큼 뚜렷한 실적을 써냈단 의미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이 세계를 주름잡는 완성차업체임을 고려하면 일면 이해가 되는 성과이기도 하다.

반면 구 회장은 일반적으로 자동차 업계와 거리가 먼 인물로 인식된다. ‘LG’란 타이틀을 달고 소비자를 만나는 자동차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터트렌드는 2023년에도 구 회장을 20위로 선정한 바 있다. 올해는 열 계단이나 급상승한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LG가 무슨 자동차야’란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업계에선 구 회장의 올해 순위가 되레 ‘박한 평가를 받은 것’이란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LG그룹이 가진 자동차 산업계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LG그룹은 2000년대 후반부터 일찍이 자동차 부품 사업을 ‘신성장’ 사업으로 선정하고 역량을 키워왔다. LG그룹은 핵심 계열사 4곳을 통해 큰 뒷걸음질 없이 10년가량 자동차 부품 시장을 순차적으로 공략했다. 지금은 자동차 산업에 없어선 안 될 기업집단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LG전자는 CES 2024에서 미래 모빌리티 콘셉트 ‘알파블’을 시연했다. [사진 LG전자]

씨앗서 시작해 거목으로 성장한 ‘전장’

“그룹의 성장사를 돌이켜보면, LG는 늘 10·20년을 미리 준비해 새로운 산업을 주도해 왔다. 바이오·인공지능(AI) 등이 지금은 비록 작은 씨앗이라도 꺾임 없이 노력하고 도전해 나간다면 LG를 대표하는 미래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다. ‘LG의 미래를 만든다’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집요하게 실행해 가길 기대한다.”

구 회장이 지난해 8월 미국 보스턴과 캐나다 토론토를 방문해 AI·바이오 산업을 점검하며 남긴 말이다. 미국에선 LG화학 생명과학본부 보스턴 법인(이노베이션센터)과 LG화학이 인수한 미국 제약사 ‘아베오’(AVEO)를 둘러봤고, 캐나다에선 LG전자가 2018년 설립한 ‘AI 랩’(AI Lab)을 살폈다.

구 회장이 미래 산업으로 점찍은 AI·바이오를 점검하며 ‘씨앗에서 거목으로’를 언급한 이유는 배터리·자동차 전자장비(전장)·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산업에서 LG가 이룬 성공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역량 강화로 지금은 LG그룹의 먹거리로 자리 잡은 3가지 사업처럼, AI·바이오가 향후 성장 동력의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이다.

구 회장이 ‘거목’으로 빗댄 배터리·전장·OLED 모두 자동차와 연관이 깊다. 구 회장은 지난 2018년 6월 ㈜LG 대표이사 취임 후 특유의 ‘실용주의’ 관점에서 사업을 재편하고, 미래 역량 강화 전략을 추진했다. LG전자·LG이노텍·LG디스플레이·LG에너지솔루션이 본업에서 쌓은 경쟁력을 활용해 ‘전장’ 시장 공략을 꾸준히 추진할 수 있던 배경이다. 이 같은 LG그룹의 ‘뚝심’은 최근 뚜렷한 사업적 성과로 이어지며 결실을 보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왼쪽)이 지난해 8월 캐나다 토론토 자나두 연구소에서 크리스티안 위드브룩 자나두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양자컴퓨팅 관련 실험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LG]

본업 경쟁력 기반 ‘전장 시장’ 공략

LG전자에서 전장·소프트웨어 부문을 담당하는 VS사업본부 성과가 대표적이다. 이 본부의 2023년 연간 매출은 10조1476억원, 영업이익은 1334억원을 기록했다. 매출 10조원 돌파는 본부 출범 10년 만에 이룬 성과다. 실적 공시를 시작한 2015년 이후 8년 연속 성장을 이루며 순차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LG전자는 전장 사업의 핵심 3대 사업을 ▲VS사업본부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오스트리아 헤드램프 기업 ZKW(2018년 인수)의 ‘차량용 조명 시스템’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마그나 인터내셔널 합작 법인·2021년 7월 출범)의 ‘전기차 파워트레인’로 설정하고 역량을 키우고 있다.

LG전자 VS사업본부는 특히 유럽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완성차업체에 인포테인먼트(IVI) 시스템을 공급하고, 일본 메이저 완성차업체로부터 5G 고성능 텔레틱스를 잇달아 수주했다. 이에 따라 수주 잔고가 2022년 말에는 80조원을 돌파하더니, 2023년 말에는 90조원 중반으로 성장했다.
LG디스플레이 모델이 CES 2024에서 혁신상을 받은 차량용 디스플레이 57인치 필러투필러 LCD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LG디스플레이]

세계 첫 대형 OLED 패널 양산 시설을 마련하며 기술 역량을 입증한 LG디스플레이 역시 본연 경쟁력을 활용해 전장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차량용 OLED 양산 4년 만에 유럽·북미·한국 등 글로벌 프리미엄 완성차 브랜드 10곳을 고객사로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는 2018년부터 6년 연속 10인치 이상 글로벌 대형 차량용 디스플레이 매출 기준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의 이런 성과 배경으론 단연 우수한 제품 역량이 꼽힌다. 회사가 생산하는 차량용 OLED는 기존 액정표시장치(LCD) 제품 대비 소비전력을 60% 줄이는 동시에 무게는 80% 가볍다. 대다수 차량용 OLED 제품엔 업계 최초로 개발한 탠덤(Tandem) OLED 소자가 적용돼 있다. 탠덤 OLED은 유기발광층을 2개 층으로 쌓아 기존 1개 층 대비 장수명·고휘도(화면 밝기) 등 내구성을 높인 기술이다. 휘도·수명은 높이면서 소비전력을 약 40% 낮춘 ‘2세대 탠덤 OLED’을 양산한 바 있다. 주요 기능을 개선하는 ‘3세대 탠덤 OLED’ 개발도 최근 착수했다.

LG디스플레이 차량용 디스플레이 주요 제품으론 ▲플라스틱(P)-OLED ▲어드밴스드 씬 OLED(ATO·유리 기판을 사용해 가격을 낮춘 차량용 OLED) ▲저온다결정실리콘(LTPS) LCD 등이 꼽힌다. 차량용 P-OLED는 유연한 플라스틱을 기판으로 사용해 구부릴 수 있고, 뛰어난 화질을 유지하면서도 가볍다. LG디스플레이가 2019년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하며 시장을 개척했다. LTPS LCD는 기존 LCD 대비 대형화 및 고해상도 구현에 유리하다.

LG이노텍도 그간 확보한 원천기술을 2005년부터 모빌리티 분야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40년 이상 축적해 온 무선통신 기술을 차량용 통신 모듈(LTE와 5G-V2X 등)에 도입하는 식이다. 특히 차량용 조명 모듈 ‘넥슬라이드’(Nexlide)는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 120개 차종 전·후방 램프에 적용될 정도로 높은 시장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2023년 기준 LG이노텍의 전장부품 수주 잔고(차량 카메라 제외)는 약 10조7000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LG이노텍은 최근 특히 자율주행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용 센싱 솔루션 분야에서 기회를 잡겠단 포부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올해 초 CES 2024에서 ADAS용 카메라 모듈·라이다(LiDAR)·레이더 등 자율주행용 부품이 탑재된 미래차 목업(Mock-up·시제품 전동차를 제작해 직접 확인하는 단계)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2027년 양산을 목표로 고객 모집에 나선 ADAS용 ‘고성능 히팅 카메라 모듈’도 공개한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지난 3월 6일부터 8일까지 진행된 국내 최대 규모 2차전지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InterBattery) 2024’에 꾸린 부스. 회사는 셀·모듈·팩·BMS 모두 탑재된 이스즈 전기 트럭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시했다. [사진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도 LG그룹 전장 사업의 대표 주자다. 최근 토요타와 북미 지역 전기차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하며 역량을 입증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회사의 2023년 10월 기준 수주 잔고는 500조원을 돌파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이런 시장 영향력은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바탕으로 한다. 회사가 10년간 R&D에 투입한 금액은 5조3000억원에 달한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미국·유럽에서 R&D 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소재·공정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등록된 지식재산권(IP)은 2만9000건을 돌파했고, 출원 특허 수는 5만여 건에 달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그간 확보한 기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메이저 완성차 업체 상당수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30년까지 연평균 33%씩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GM(얼티엄1·2·3공장)·스텔란티스·혼다·현대차그룹 등과 함께 합작 배터리 생산공장을 건설 중이다. 애리조나에 원통형 공장과 ESS용 LFP 단독공장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모터트렌드는 구 회장을 ‘자동차 업계 인물 50인’ 10위로 선정하며 “자동차 산업에 배터리와 핵심 부품을 제공해 전기차·AI·로봇·소프트웨어·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채택을 가속화하고 있다”며 “회장에 오른 지 약 6년 만에 자동차 업계의 거물(major player)이 됐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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