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성장 그리고 ‘AI’…다시 흐르기 시작한 ‘전자의 시간’
[주총으로 톺아본 2024 산업나침반]① 삼성전자·LG전자
주요 경영진 ‘총출동’…주주들과 적극적인 소통
경기 위축, 흔들린 실적…양사 모두 “성장” 자신
이유 있던 ‘자신감’…2024년 1분기 ‘호실적’ 출발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다시 ‘전자의 시간’이다.
2023년 내내 뚜렷하게 이어진 세계 경기 위축에 국내 경제 대들보인 제조 산업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반도체는 역대급 불황이 지속됐고, 어려워진 주머니 사정에 신규 수요 창출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실적은 이에 따라 흔들렸고 이는 곧장 주주 우려로 이어졌다.
1년에 딱 한 번, 결산기 종료일부터 3개월 이내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는 이런 목소리를 가장 크고 직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시간이다. 삼성전자·LG전자는 볼멘소리일지라도 주주의 의견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리고 주요 경영진이 총출동해 ‘반등’을 약속했다. 기업의 주요 평가 지표로 자리 잡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LG그룹의 경우 ㈜LG 주총을 통해 무려 10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공개하며 기대감을 키웠다. 이는 LG그룹 핵심 계열사인 LG전자의 주력 사업에도 막대한 자본이 흘러들어온단 의미다.
삼성전자·LG전자가 주총을 통해 자신한 성장의 시간이 벌써 현실로 찾아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경기도 올해 기지개를 켤 수 있으리란 기대가 나온다. 양사가 주주 앞에서 강조한 ‘사업 비전’을 통해 올해 세운 성장 동력을 살펴본다.
“반도체 1위 탈환 자신”
삼성전자는 지난 3월 20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제55기 정기 주주총회에 색다른 방식을 도입했다. 안건 표결 이후 ‘주주와의 대화’ 시간을 별도로 마련, 구체적인 사업 현황·전략을 설명했다. 삼성전자 주총이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재계에선 이를 두고 “2023년 실적이 곤두박질친 상황에 높아진 주주의 우려를 종식할 수 있는 카드가 있었기에 가능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삼성전자의 2023년 연결 기준 연간 매출은 258조9354억원, 연간 영업이익은 6조566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14.3%, 84.9% 하락했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이 14조8795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따른 실적 악화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이런 실적 흐름을 타개할 전략을 주총에서 직접 설명했다. ‘주주와의 대화’ 시간엔 한종희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부회장)과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물론 최고재무책임자(CFO)·최고기술책임자(CTO)·각 사업부장 등 주요 경영진 13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인공지능(AI)·고객 경험·ESG 등을 주요 키워드로 내걸고 “다양한 신제품·신사업은 물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조기에 발굴할 수 있는 조직과 추진 체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경 사장은 특히 “앞으로 2~3년 이내에 세계 반도체 1위를 되찾겠다”며 “2024년은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지 50년이 되는 해로, 본격 회복을 알리는 ‘재도약’과 DS의 ‘미래 반세기를 개막하는 성장의 한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꼽은 ‘1위 탈환’ 전략은 연구개발(R&D) 강화다. “기존 사업만으로는 장기적으로 반도체 1등을 유지할 수 없다.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투자와 체질 개선 활동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확보된 재원을 R&D에 재투자해 성장 기반을 강화하는 선순환구조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제품 측면에선 대규모언어모델(LLM)용 AI 칩 ‘마하 1’ 개발을 공식화하며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현재 AI 시스템의 문제 중 하나로 꼽히는 메모리 병목으로 인한 ‘성능 저하’를 해결할 수 있는 반도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스마트폰·가전·TV·PC 등의 사업을 담당하는 DX 부문도 AI를 핵심 경쟁력으로 꼽았다. 한 부회장은 “스마트폰·폴더블·액세서리·확장현실(XR) 등 모바일 제품 전반에 AI 적용을 확대할 것”이라며 “차세대 스크린 경험을 위해 AI 기반 화질·음질 고도화, 한 차원 높은 개인화된 콘텐츠 추천 등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갤럭시 S24 시리즈로 시장 주도권을 거머쥔 ‘온 디바이스 AI’(On-Device AI·서버 연결 없이 기기 자체적으로 AI 기능을 수행하는 기술)를 전방위로 확산해 성과를 만들겠단 설명이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주주 앞에서 다양한 말들로 ‘성장’ 약속했다. 그리고 지난 4월 5일 2024년 1분기 잠정 실적 발표를 통해 이 약속이 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 매출은 71조원, 영업이익은 6조6000억원. 2023년 연간 영업이익을 한 분기 만에 벌어들일 정도로 상황이 개선됐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1.37%, 영업이익은 931.25% 증가했다. 5분기 연속 적자가 이어진 반도체 사업이 흑자로 돌아선 데 따른 실적 개선이다. 경 사장은 주총 당시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전년 대비 크게 성장한 6300억불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DS부문 매출도 2022년 수준으로 회복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2022년 DS 부문의 연간 영업이익은 23조8158억원으로, 전체의 54.9%를 담당했다.
“신사업 가속화 꾸준히 추진”
LG전자의 2023년은 삼성전자보다 상황이 나았다. 2023년 연결 기준 연간 매출 84조2278억원, 연간 영업이익 3조5491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0.9% 증가하며 3년 연속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영업이익 역시 전년 대비 0.1% 감소에 그쳤다. 글로벌 경기 악화를 고려하면 선방한 셈이다.
그러나 2023년 4분기 성적만 두고 본다면 상황이 썩 좋은 건 아니다. 회사는 이 기간 매출 23조141억원, 영업이익은 313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51.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는 자회사 LG이노텍 실적이 반영된 결과다. LG이노텍은 이 기간 영업이익 4837억원을 기록했다. 이를 제외하면 영업손실 1749억원을 기록한 셈이다. LG전자는 2022년 4분기에도 LG이노텍 실적을 제외하면 1042억원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2023년 4분기 실적이 흔들리면서 2024년을 불안하게 출발한 LG전자는 지난 3월 26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제22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이 단독대표 체제로 전환된 뒤 열린 첫 주총이다. 조 사장도 ‘소통’에 방점을 두고 주총을 이끌었다. 그는 “주로 회의 목적 사항을 중심으로 진행돼 온 기존과는 달리 사업 전략과 비전을 투명하게 공유하며 소통하고, 경영 성과를 주주와 나누는 주주 환원 정책을 강화하는 차원으로 ‘열린 주주총회’ 콘셉트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조 사장 외에도 각 사업본부장과 CFO·CTO·최고전략책임자(CSO) 등이 직접 주주와 만나 사업 비전을 공유했다. 회사는 자율주행 기술이 접목된 가사도우미 콘셉트의 ‘스마트홈 AI 에이전트’ 등 핵심 기술에 대한 전시도 준비했다.
조 사장은 주총에서 성장·수익·기업가치를 키워드로 사업 비전을 설명했다. 기업 간 거래(B2B) 영역에서 기회를 잡고, 세계서 사용되고 있는 7억 대의 LG전자 기기를 플랫폼으로 활용해 외연을 확장하겠단 취지다. XR·전기차 충전과 같은 신사업을 조기에 육성해 기업가치를 높이겠단 방향성도 제시했다. 모두 LG그룹이 100조원대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강조한 사업 분야다. 조 사장은 특히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사업모델 혁신·신사업 가속화 등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사장이 공언한 사업모델 혁신·신사업 가속화는 지난 4월 5일 이뤄진 2024년 1분기 잠정 실적 발표에서 성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기간 연결 기준 매출은 21조95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 증가했다. ‘역대 1분기 매출 중 최대치’를 달성하는 성과를 냈다. 1분기 매출 성장의 배경으로 ▲구독 등 새로운 사업방식 도입 ▲B2B 사업 확대가 꼽힌다. 이에 따라 시장 수요 회복 지연 등의 불확실성을 돌파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다만 올 1분기 영업이익은 1조3329억원으로 전년 동기 11.0% 감소했다는 점은 숙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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