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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G 잡은 하이브 ‘이유 있었네’…해외 매출 64% 의미 [수(數)크릿]

K-팝 위상 높인 하이브, UMG와 음원·음반 글로벌 독점 유통 계약
‘업계 최고 수준’ 대우…“협상력 갖춰야” 방시혁 의장 청사진 구현

수는 현상을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단어입니다. 유행·변화·상태·특성 등 다소 모호한 개념에도 숫자가 붙으면 명확해지곤 하죠. 의사결정권자들이 수치를 자주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업 역시 성과·전략 따위를 수의 단위로 얘기합니다. 수는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고도화된 정보통신기술(ICT)을 만나 높은 정밀성은 물론 다양성도 갖춰가고 있습니다. 최근 나온 다양한 수치 중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꼽아 연재합니다. 수(數)에 감춰진 비밀(Secret), 매주 수요일 오전 뵙겠습니다. [편집자 주]
(왼쪽부터) 방시혁 하이브 의장, 루시안 그레인지 유니버설 뮤직 그룹 회장, 스쿠터 브라운 하이브 아메리카 최고경영자(CEO). [사진 하이브]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하이브 전체 매출 중 해외 사업이 담당한 비율 64%.

이 수치를 꺼내 든 이유가 있습니다. K-팝 문화를 이끄는 기업으로 꼽히는 하이브가 지난 3월 27일 세계 최대 음악 기업 유니버설 뮤직 그룹(UMG)과 음원·음반 글로벌 독점 유통 계약을 체결한 배경을 짚기 위해서인데요. 64%의 의미를 살펴보기 전, 양사가 어떤 계약을 체결했는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양사가 맺은 계약 조건은 구체적으로 대외에 공개되진 않았습니다. 하이브는 다만 이번 계약에서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았다는 점만큼은 부인하지 않았는데요. 하이브가 높은 협상력을 보였다는 점은 세계 시장에서 K-팝 위상이 높아졌다는 걸 방증합니다. 동시에 K-팝 선두 기업인 하이브가 글로벌 톱 티어 음악 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점도 나타내죠.

하이브의 음원·음반을 UMG가 모든 시장에서 유통하는 건 아닙니다. 이미 탄탄한 시장 장악력을 보이는 한국(음반원 YG플러스)·중국(음원 텐센트뮤직) 시장의 유통 파트너십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이죠. UMG는 이번 계약에 따라 향후 10년간 한국·중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 하이브 산하 레이블이 출시하는 피지컬 음반과 디지털 음원을 독점 유통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하이브 레이블즈 아티스트의 북미 지역 내 활동과 프로모션·마케팅도 지원키로 했죠.

UMG는 이번 계약을 통해 음악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하이브는 UMG가 보유한 대형 유통망을 이용할 수 있죠. 하이브가 음원·음반 유통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도 기대 요소로 꼽힙니다. 양사 모두에 이익이 되는 ‘윈-윈’(Win-Win) 구조인 셈입니다. 이번 계약을 계기로 하이브가 세계 시장 영향력을 대폭 증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나오는 배경이죠.

하이브와 UMG는 음원·음반 글로벌 독점 유통 계약에 앞서 다양한 협업을 추진했는데요. 2017년 방탄소년단(BTS)의 일본 음원·음반 유통 계약을 체결하면서 하이브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죠. 2021년 UMG 산하 게펜 레코드와 하이브의 합작 레이블 ‘하이브x게펜 레코드’가 출범하면서 협업 분야를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K-팝 방법론을 팝의 본고장 미국에 이식하기 위해 지난해 열린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 오디션이 하이브x게펜 레코드가 추진한 대표적 사업입니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최종 6인은 올해 ‘캣츠아이’로 데뷔할 예정이고요.
하이브 사옥. [사진 하이브]

하이브의 달라진 위상

이번 음원·음반 독점 유통 계약을 ‘하이브가 UMG와 손잡고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섰다’ 정도로 해석해도 충분하긴 합니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선 몇 가지 지점에서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분위기인데요. 평소엔 실감하기 어려운 ‘K-팝의 글로벌 인기’를 사업적으로 입증해 낸 사례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번 계약의 핵심은 UMG가 자사 유통망을 통해 하이브의 음원·음반을 판매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UMG가 하이브 레이블즈의 음악을 통해 충분히 세계 시장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걸 의미하죠. K팝의 인기와 하이브의 위상이 높아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계약인 셈입니다.

이제 서두에 소개한 ‘하이브 전체 매출 중 해외 사업이 담당한 비율 64%’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하이브의 2023년 연결 기준 연간 매출은 2조1781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전년 대비 22.6% 성장하면서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계 최초로 ‘연간 매출 2조원’의 고지를 점령한 기업으로 등극했죠. 이 기간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2958억원으로, 전년 대비 24.9% 상승했습니다.

하이브의 이 같은 실적 성장은 단연 해외 사업에서의 성과 덕분입니다. 2조1781억원 매출 중 약 1조3070억원이 해외 사업에서 나왔죠. 세계 1·2위 음악 시장인 북미와 일본 매출액 비중이 각각 26%와 31%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음원 시장에서의 성과가 두드러졌는데요. 하이브의 2023년 연간 음원 매출은 298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중에서 해외 레이블의 음원 매출은 1502억원을 기록했고, 국내 레이블의 해외 음원 매출은 1071억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음원 매출의 86%가 해외에서 나온 셈이죠.

이 같은 다양한 수치가 의미하는 건 명확합니다.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나타내죠. UMG가 하이브와 음원·음반 유통에 나선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겠네요.
[자료 하이브 IR]

‘수출 효자’ K-팝

K-팝의 인기는 하이브의 실적뿐 아니라 다양한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지식재산권(IP) 무역수지는 약 1억8000만 달러(약 2400억원) 흑자로 잠정 집계됐는데요. 첫 연간 흑자를 올린 2021년(약 1억6000만 달러)의 기록을 넘어서며 가장 큰 폭의 흑자를 달성했습니다. 이는 전 세계로 수출된 K-팝·한국 드라마 등의 인기가 만든 성과입니다.

K-콘텐츠와 직결된 문화예술저작권 수지도 2020년부터 4년 연속 흑자인데요. 지난해엔 특히 11억 달러(약 1조4700억원) 흑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지난해 음악·영상 흑자가 9억5000만 달러로 집계된 데 따른 성장입니다.

이 과정에서 하이브는 K-팝 음원·음반을 국내 주요 수출품으로 만든 데 나름의 역할을 한 기업으로 꼽힙니다. 실제로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지난 2월 공식 홈페이지에 발표한 ‘2023 글로벌 아티스트 차트’ 상위 10위 중 3팀이 하이브(세븐틴 2위·투모로우바이투게더 7위·뉴진스 8위) 소속 아티스트일 정도죠. 글로벌 아티스트 차트는 ▲실물 음반 판매량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오디오·비디오 스트리밍 수치를 합산해 순위가 선정되는데요. 이 때문에 그해 가장 큰 인기를 끈 아티스트를 가늠하는 대표적인 지표입니다.
세븐틴. [사진 하이브]

방시혁 의장 ‘선구안’

업계에선 하이브와 UMG 계약이 성사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의 역할을 꼽기도 하는데요. 방 의장은 이런 K-팝 인기에도 꾸준히 ‘위기론’을 제시하며 대안을 찾아왔습니다.

방 의장은 2023년 3월 관훈클럽 주최 포럼에 참석해 “통상적으로 세계 1위 음악 시장인 미국에서 K-팝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면서 “실제로는 유통사들과의 요율 협상에 있어서 K-팝은 현지의 레이블들에 비해 협상력이 매우 낮은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방 의장은 또 이 자리에서 각종 지표 하락이 뚜렷하게 관측되고 있다는 점을 들며 ‘K-팝이 한때의 신드롬에 그칠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황금기를 구가하다 쇠퇴한 홍콩 영화나 일본 만화와 같은 상황을 K-팝이 마주할 수 있다는 분석이죠.

방 의장은 해결책으로 “글로벌 유통사들과 협상할 수 있을 만한 규모의 경제를 갖추는 것”을 제시했는데요. 글로벌 유통사와 당당한 협상력을 지닐 정도로 국내 엔터사가 성장해야 한다고 본 겁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2023년 3월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관훈클럽 주최로 열린 ‘관훈포럼’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이브]

하이브와 UMG간 계약은 방 의장이 이 같은 해결책을 제시한 뒤 정확히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뤄졌습니다. 하이브 관계자는 “관훈클럽 포럼 당시 방 의장이 제시한 해결책은 좋은 조건으로 유통 요율을 받아 회사와 아티스트의 성장에 도움이 될 재무적 성과를 내겠다는 취지”라며 “하이브가 선보이고자 하는 음악·아티스트를 많은 사람이 인지하게 해야 한다는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UMG와의 계약은 K-팝의 한계를 뛰어넘어 글로벌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방 의장이 청사진이 현실화한 것”이라고 했죠.

하이브는 UMG와의 계약 과정에서 ‘높은 협상력’을 보이면서 K-팝의 달라진 위상을 입증해 냈습니다. K-팝이 ‘한때의 신드롬’에 그치지 않기 위한 방 의장의 구상도 현실화하고 있죠. 국내 엔터사 중 처음으로 ‘매출 2조원 고지’를 점령한 하이브는 UMG와의 협업을 통해 얼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요? 하이브의 향후 행보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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