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처럼 압박받는 라인…외국 디지털 인프라, 어디까지 손댈 수 있나? [한세희 테크&라이프]
‘국경 없는 디지털 세상’ 옛말…미·중 패권 경쟁에 줄어든 자유 인터넷 입지
기존 규칙 흔드는 디지털 기술…“자유·신뢰 가치 존중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인터넷은 국경을 넘어 모든 사람에게 더 많은 정보와 교류, 활동의 자유를 약속한다. 사람들은 멀리서 사는 친구와 사진을 공유하고, 메신저로 대화하며, 바다 건너 나라에 물건과 콘텐츠를 판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만나고 독재에 저항하기도 한다. 하나의 시장이 된 세계를 무대로 하는 플랫폼 기업이 나왔고, 스타트업들이 국적에 상관없이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연결하는 자유롭고 개방된 디지털 세상의 이상은 빛을 잃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오프라인의 자유 무역도, 온라인의 자유 인터넷도 입지가 약해졌다. 소셜미디어와 검색 알고리즘이 양극화·편향·청소년 정신건강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는 우려는 온라인 규제에 명분을 더한다.
바이든, 틱톡 퇴출 법안 서명
미국에선 틱톡 퇴출이 현실화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틱톡 강제 매각 법안에 서명한 것이다.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가 9개월 안에 틱톡 사업을 매각하지 않으면, 틱톡 애플리케이션(앱)을 올리는 미국 내 앱스토어 운영사를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틱톡은 ‘숏폼’ 콘텐츠를 개척해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중국 바이트댄스가 자국에선 ‘더우인’, 해외에선 틱톡이란 이름으로 운영하는데, 미국과 유럽 정부는 틱톡 사용자 정보가 중국 정부에 넘어가거나 틱톡이 중국 정부의 선전 및 스파이 활동에 쓰일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전례 없이 금지법까지 제정되었지만, 틱톡을 중국에서 분리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틱톡 퇴출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미국 수정헌법 1조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국가 안보를 앞세워 방어하기 쉽지 않다. 바이트댄스는 곧바로 법을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고, 법정 공방이 지루하게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 정부가 만족할 만한 인수자를 찾을 수 있을지, 매각을 중국 정부가 허가할지도 문제다. 바이트댄스가 틱톡의 핵심인 추천 알고리즘을 빼고 매각하려 한다면 인수 매력은 확 떨어진다. 결국 매각 대신 서비스 폐쇄를 선택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틱톡이 미국 젊은 세대의 필수 앱이며, 수많은 크리에이터와 소상공인이 틱톡 마케팅에 의존해 생활한다는 점에서 틱톡 금지는 정부에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재임 중 틱톡 분리를 추진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작 틱톡 금지법 반대로 돌아섰다. 틱톡 퇴출이 현재 그가 가장 적대시하는 메타에 유익이 될 수 있다는 이유다. 그는 올해 대선의 유력 후보이다.
자국에서 성공을 거둔 외국 모바일 서비스를 둘러싼 갈등은 우리 곁에서도 진행 중이다. 바로 일본이다. 네이버 일본 법인이 2011년 선보인 메신저 ‘라인’은 일본에서 한국의 카카오톡처럼 국민 메신저 지위를 누리고 있다. 라인은 일본 포털 시장을 지배하는 야후재팬과 합병하여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보기술(IT) 기업이 됐다.
일본은 라인을 틱톡처럼 대할 수 있나?
지난해 11월 네이버 자회사인 네이버클라우드 서버가 해킹당해 이와 연결되어 있던 라인 사용자 52만명의 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에 대해 일본 총무성이 내린 행정지도에 ‘네이버와의 자본 관계를 재고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논란이다.
일본에서 라인과 야후를 운영하는 라인야후는 A홀딩스라는 회사가 64.5%의 지분을 갖고 있고, A홀딩스 지분을 네이버가 야후재팬 모회사 소프트뱅크와 50%씩 나눠 갖고 있다. 일본 검색 강자 야후재팬과 모바일 강자 라인이 결제·배달·커머스 등 주요 플랫폼 분야에서 무한 경쟁을 벌이다 발상을 바꿔 2019년 통합을 선언했다.
애초 네이버에서 출발한 라인은 네이버와 기술 및 사업적으로 여러 연결 고리가 있었고, 네이버클라우드가 라인의 보안 서비스를 맡은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이번 상황에서 보안 문제가 생길 때 ‘라인이 대주주인 네이버에 제대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일본 정부는 제기한 셈이다. 결국 라인야후는 네이버 위탁을 종료하고, 자본의 변경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라인 개발을 주도한 신중호 최고제품책임자(CPO)도 이사에서 물러나 이사회에는 일본인만 남았다. ‘일본 기업 선언’인 셈이다.
네이버는 이에 대해 “지분매각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소프트뱅크와 협의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우리 기업이 해외 사업, 해외 투자와 관련해 어떠한 불합리한 처분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일본으로선 자국민 데이터가 한국 기업 관리 아래 있다는 사실이 불안 요소다. 라인은 일본에서 9600만 명이 사용하며, 결제와 금융 등이 연결된 모바일 허브이다. 우리도 2022년 인터넷데이터센터(IDC) 화재로 카카오톡이 수일간 장애를 겪었을 때 대통령과 국회의원까지 나서 카카오톡이 국가 기간 통신망이라도 되는 듯 카카오와 정부에 관리 소홀을 질타했다.
하지만 미국이 틱톡을 대하듯 일본이 라인을 대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한국과 일본은 적대 관계가 아니다. 자유 시장과 민주적 국제 질서를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할 사이다. 다른 나라의 플랫폼 기업이 자국에서 마찰을 빚는 일은 세계 어디서나 일어나지만 보통 과징금 부과 등으로 해결한다. 중국이 전체주의적 행태를 보이며 세계로 입지를 넓혀가는 것을 경계한다면, 적어도 자유 진영 안에선 자유와 신뢰의 가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슈를 해결해야 한다.
따지고 들어가면 한 나라의 디지털 인프라가 정부 손을 떠나 세계 어느 기업에 의해서건(주로 미국 기업이긴 하지만) 만들어질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 원인이다. 국민 대부분의 데이터가 외국 기업의 영향을 받는 일도 가능하다. 과거엔 기간 인프라를 지키기 위해 통신사·방송사·인프라 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 보유를 제한하는 조치가 유효했다. 하지만 물리적 장벽이 무의미한 디지털 시대엔 해외 사업자가 다른 나라의 디지털 인프라를 장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타트업이 급성장하며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일도 많아 기존 통신사나 지상파 방송사를 관리하듯 선제적으로 규제하기도 어렵다.
디지털 기술이 국가 내부, 또는 국가 간 관계를 다스리는 현재의 규칙을 흔들기에 생기는 문제다. 세계대전이나 냉전이 종식되었을 때처럼, 국제 자유 무역 환경을 만들었을 때처럼 새로운 질서를 찾으려는 노력의 필요성이 커진다. 라인야후 문제는 결국 네이버 지분을 어떤 형태로든 일본 측에 넘기는 쪽으로 해결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이 디지털화된 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찾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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