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나이 차면 부장 승진?...시대가 달라졌다 [스페셜리스트 뷰]
- 디렉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다섯 가지 조건
직급보다 역할 및 영향력으로 평가받는 시대

기업은 관리자보다 전문가를 원한다
중간관리자가 사라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직급 축소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기업은 이제 ‘명령과 통제’의 관리자보다 ‘직접 판단하고 실행하는 전문가’를 원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과거에는 한 명의 오너와 다수의 중간관리자, 그리고 실무진으로 구성된 계층적 구조가 당연했다. 그러나 지금의 기업은 판단과 실행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소수의 디렉터와 그 결정을 빠르게 실행하는 오퍼레이터의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대기업 S사의 사례를 보자. 수년 전부터 직급 호칭을 폐지하고 모두 ‘ㅇㅇ님’으로 부르고 있다. 또 다른 대기업 H사의 경우 매니저와 책임매니저 단 두 직급으로 단순화 했다. 명목상으로는 수평적 문화 정착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중간관리자층의 구조조정이 주요 배경이었다.
그 결과, 과거 각 부서의 중간관리자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보고와 승인 구조가 축소됐고, 각 구성원은 더 직접적으로 의사결정자에게 성과 압박을 받게 됐다. 이처럼 직급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호칭의 문제가 아니다.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의 이동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의 핵심은 실질적인 의사결정자인 ‘C레벨’(C-level)의 확장이다. C레벨은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기술책임자(CTO)와 같은 전통적인 기능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기업은 각 영역의 전략을 담당하는 CSO, 브랜드 경험을 책임지는 CXO, 심지어 경청을 총괄하는 CLO, 인사를 책임지는 CHRO까지 다양한 형태의 최고책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런 구조는 단순히 직함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 자체가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당장의 C레벨은 아니더라도 의사결정자 역할을 하는 디렉터의 시대로 전환이 시작됐음을 인지해야 한다.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조직 내에서 어떤 역할로 존재하고 있는가, 의사결정을 내리는 디렉터인가, 지시를 받아 수행하는 오퍼레이터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위치 파악이 아니라 커리어의 미래 방향을 결정짓는 나침반이 된다.

지금 현재는 오퍼레이터로 업무를 하더라도 지향점 만큼은 의사결정자인 디렉터로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전환을 위해서는 시간이 지나면 승진을 했던 예전과는 다른 조건을 갖춰야 한다.
디렉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은 시대를 관찰하는 능력이다. 워런 버핏은 자신이 미국이라는 시대의 혜택을 본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 내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를 감지하는 능력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다. 이 감각은 단순한 정보 소비가 아니라 현상의 이면을 읽는 통찰에서 비롯된다. 이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책 읽기와 깊은 대화, 현실과 데이터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길러진다. 즉 시대를 관찰하는 능력은 지성의 결과물이자 태도의 문제이다.
두 번째는 코어 어빌리티(core ability)다. 이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 나만의 핵심 능력을 의미한다. 예컨대 기획력은 글쓰기·마케팅·강연·제품 개발 등 여러 형태로 전개될 수 있다. 코어 어빌리티는 나라는 사람을 특정 직무를 넘어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주는 기반이다.
그렇다면 코어 어빌리티는 어떻게 개발할 수 있을까. 우선 자신이 반복해서 몰입하게 되는 일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사람마다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는 활동은 다르다. 어떤 이는 데이터를 다룰 때, 어떤 이는 사람을 설득할 때 능력을 발휘한다. 이런 순간들이 곧 코어 어빌리티의 단서가 된다.
다음 단계는 그 능력을 체계화하고 타인에게 설명 가능한 형태로 정리하는 것이다. 이는 글쓰기나 말하기, 강의 혹은 콘텐츠 기획이라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실제 필자는 회계사로서 회계분야의 핵심인 재무제표 분석이라는 능력을 강의·자문·콘텐츠·저술·전문경영으로 확장해 왔다.
또한 중요한 것은 이 능력이 조직 안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이다. 단순히 잘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팀과 기업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전략적 자산으로 인정받는다. 즉 능력의 외연뿐 아니라 내포된 목적과 방향성까지 고민해야 한다.
진급이 아닌 진화를 선택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세 번째는 리스크를 줄이는 역량이다.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잘못된 결정과 실행의 실패다. C레벨은 조직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를 줄이거나, 아예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결정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고, 실행을 복구할 수 있는 신뢰를 갖춘 사람만이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리스크를 줄이는 사람은 단지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과감하게 시도하되, 그 시도의 구조와 복구 가능성까지 계산하는 사람이다. 예측 가능성과 복구력은 리스크를 경영하는 핵심 역량이다. 따라서 디렉터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예상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최악의 경우까지 준비하는 사람이다. 이는 신뢰의 토대가 된다.
뿐만 아니라 디렉터는 위기 상황에서 감정적 동요를 최소화하고, 조직의 중심을 잡아주는 심리적 리더이기도 하다. 리스크 관리는 숫자뿐 아니라 사람과 감정, 상황의 맥락까지 고려하는 전인적 판단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진짜 리더는 위기의 순간에 더욱 빛난다.

표현력은 단순한 언어 능력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진정한 표현력은 ‘생각을 구조화하는 힘’과 직결돼 있다. 말 잘하는 사람보다 생각을 명확히 구조화하는 사람이 조직을 이끄는 시대다. 따라서 디렉터가 되고자 한다면 논리적 사고와 맥락적 언어의 훈련이 필수적이다.
다섯 번째는 연결력이다. 혼자 잘하는 시대는 지났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다양한 사람을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디렉터가 되는 것이다. 이는 인간적인 신뢰와 감정지능, 협업의 미덕을 포함하는 능력이다. 연결력은 단지 인맥이 많은 것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고, 충돌을 완화하며, 공동의 목적을 향해 팀을 정렬시키는 능력이다.
특히 재택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와 글로벌 팀워크, 그리고 프리랜서 및 외주 생태계가 넓어지는 지금, 연결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팀을 뛰어넘는 영향력, 조직의 경계를 넘나드는 커뮤니케이션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다섯 가지 조건은 단순히 승진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다. 디렉터는 진급이 아니라 진화의 개념이다. 과거처럼 정해진 연차와 순번에 따라 직급이 오르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자신이 가진 역량과 통찰, 책임감으로 조직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설계해야 하는 시대이다.

결국 우리는 ‘진급’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진화를 선택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더 이상 “내 연차면 부장은 해야지”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이제는 “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만이 남는다.
지금까지의 직장 생활이 반복적인 업무와 보고에 익숙해져 있었다면, 이제는 방향을 제시하고 책임을 지는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어떤 프로젝트든, 단순히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목적과 방향을 생각하며 접근해야 한다. 작은 결정 하나에도 자신의 의도를 담는 연습이 필요하다.
미래의 커리어를 준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자기 확신과 그에 기반한 훈련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할수록, 그리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와 경험을 갖출수록, 조직 내에서의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커진다. 결국 대체되지 않는 사람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존재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중간관리자가 사라진 시대다. 대체되는 사람이 아닌,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돼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이 선택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다. 그리고 나의 가치를 올리는 현명한 길이다.

강대준 공인회계사 겸 인사이트파트너스 대표는 삼일회계법인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다양한 기업의 재무 구조와 의사결정을 현장에서 경험해온 인물이다. 그는 숫자 이면의 전략과 가치를 꿰뚫어보는 독특한 시선을 가진 전문가로 불린다. 상장사부터 스타트업까지 기업의 투자 구조, 브랜드 전략, 자금 흐름을 연결하며 CFO와 CEO, 경영 자문 역할을 수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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