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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버리는 대통령 부부[전형일의 세상만사]

역대 대통령들 대부분 독서광…“독서를 안하는 지도자는 없다”
‘책’ 보다 ‘명품’이 중요한 윤 대통령 내외

권성희 변호사가 5월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기 앞서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살던 아크로비스타 분리수거장에서 주웠다고 주장하는 책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전형일 칼럼니스트] 대통령의 독서(讀書)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우선 책 읽는 대통령은 공부하는 모습으로 지적인 이미지 제고에 그만이다. 또 책에 따라 국정 방향을 제시하고 대국민 메시지를 대신하기도 한다. 더불어 대통령이 읽은 책은 출판계에 영향을 미치고 문화 전반으로 파급되는 등 경제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국민의 독서 증진은 덤이다.

미국 백악관은 매년 대통령의 휴가 도서를 발표하는 전통이 있다. 이 방식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이는 고 김대중 대통령이다. 김 대통령은 소문난 독서광으로 그의 해박한 지식과 논리력은 모두 책에서 나왔다. 평소 독서량도 상당했지만 시국 사건으로 투옥되던 시절 옥중에서 10시간씩 1000여 권의 책을 읽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저서 ‘옥중서신’을 보면 다양한 독서 목록과 방대한 양을 알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가 읽은 책의 저자가 요직에 중용되거나, 책의 핵심 메시지가 정책에 반영되기도 하면서 ‘독서 정치’라는 말이 생겼다. 따라서 그의 독서 행보는 정가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그는 고시생 시절 직접 ‘개량 독서대’를 특허 출원한 것이 화제가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많은 책을 추천했다. ‘로마인 이야기’, ‘끝없는 용기와 도전’ 등 주로 역사와 경제 관련 책들이 많았다. 특히 2009년 휴가 때는 청와대 참모들에게 ‘넛지’를 추천해 시중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독서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 그녀의 측근으로 활동하다 완전히 적으로 돌변한 전여옥 전 의원은 그녀의 지적 능력을 문제 삼으면서 “그의 서재에는 제대로 된 책이 없다”고 직격했다. 그녀의 단답형 대화인 ‘베이비 토크’도 이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의 말’의 저자 박종희 작가는 “약 40년간 박 대통령의 기록에서 독서에 관한 언급은 어머니가 썼다는 수필집을 포함해 단 4차례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녀의 수필집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는 당시 종합 베스트셀러 4위를 기록하면서 출판계에 끼친 영향이 여느 대통령 못지않았다.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에 위치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서점인 ‘평산 책방’에서 방문객이 독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문프셀러(문재인 프레지던트의 베스트셀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독서에 관심이 많았다. 휴가 때 독서 목록에 오른 책은 물론, 주변에 추천하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노출한 도서는 매번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자서전 ‘운명’에서 “어떨 때는 (본인이) 활자중독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현재는 사저 부근에서 ‘평산 책방’을 운영함으로써 덕업일치를 이루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후 독서와 관련된 어떤 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이에 대해 ‘술 마시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등의 여러 억측이 제기됐으나 얼마 전 단서가 나왔다.

최근 윤 대통령 부부가 살던 아파트 주민 권성희 변호사가 관저로 옮기면서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14권의 책을 분리수거장에서 주웠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그중 최재영 목사가 명품 가방과 함께 선물한 ‘전태일 실록 1, 2’, ‘평양에선 누구나 미식가가 된다’ 등 4권이 포함돼 있다.

앞서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가 최 목사로부터 받은 명품 가방에 대해 “대통령 부부에게 접수되는 선물은 관련 규정에 따라 국가에 귀속돼 관리·보관된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선물 가운데 명품 가방만 ‘선택적’으로 보관한 셈이 됐다.

이 문제는 차치하고 권 변호사가 공개한 책 속표지엔 ‘윤석열 대통령님, 김건희 여사님께 드립니다. 2022.7.23. 저자 최재영 목사’라고 적혀 있다. 또 ‘이 책은 기독교를 제외한 가톨릭, 러시아 정교회, 불교를 비롯해 통일교, 몰몬교 등 종교 현황을 담은 북한종교 내용입니다’라는 메모지도 붙어 있다.
권성희 변호사가 5월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기 앞서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살던 아크로비스타 분리수거장에서 주웠다고 주장하는 책 중 한 권의 내용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일반적으로 책을 선물 받으면 저자에 대한 예의로 일부라도 읽거나 최소한 목차라도 보게 된다. 그럼에도  메모지가그대로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대통령 부부는 아예 책을 펼쳐보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책을 버릴 때는 저자의 사인 등의 페이지는 찢어서 버린다. 본인의 이름도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윤 대통령 부부는 ‘백’과 달리 ‘책’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사퇴 후 비공식적으로 처음 언론에 노출된 게 양재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었다. 혹시 술 안 마시는 한 위원장이 ‘독서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윤 대통령과 다양한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저런 정치공학적인 해석을 할 수 있겠지만 술 마시는 사진보다는 좋아 보인다.

윤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는 평소 좋아하는 구절인 ‘The buck stops here’라는 팻말이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선물 한 것으로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뜻이다.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한 말이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런 말도 했다. “독서한다고 모두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모든 지도자는 독서한다(Not all readers are leaders, but all leaders are readers).” 

전형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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