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떠나라” 움직인 BTS 팬들…‘세상 바꾼’ 사이트에 올라온 청원
‘사회 변화’ 만든 청원 사이트 체인지닷오알지…국제 문제 공론화 역할
김연아 ‘소치 올림픽 금메달 강탈’ 항의 서명 운동으로 국내서도 유명
아미가 작성한 청원에 4만7000명 서명…“민희진 하이브 떠나라” 공감대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민희진은 하이브를 떠나라.”
세계 방탄소년단(BTS) 팬들이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하이브와 갈등을 벌이고 있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다른 아티스트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인식하는 모양새다. 특히 국제 청원 사이트에 게재된 ‘민 대표 사퇴 촉구’ 글에 서명하는 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체인지닷오알지에 게재된 ‘민희진은 하이브를 떠나라’(MIN HEE JIN Leave HYBE Company)란 제목의 국제 청원 글에 8일 오전 기준 4만6800명 이상이 서명했다. 체인지닷오알지는 2007년 동명의 비영리단체가 설립한 국제 청원 사이트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문제의 공론화’를 위해 운영되고 있다. 다수의 문제 제기로 기업·정부 의사결정을 바꾸는 걸 목표로 한다. 실질적 사회 변화를 이끈 사례를 다수 만들면서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미국 백악관이 운영하는 ‘위더피플’과 미국 평화 운동단체가 만든 ‘무브온’ 등과 함께 대표적 국제 청원 사이트로 꼽힌다.
민 대표 사퇴 촉구 청원 글은 지난 5월 27일 ‘아미 포에버’(ARMY Forever)란 아이디를 쓰는 미국인이 작성했다. 아미(ARMY)는 하이브 대표 아티스트인 방탄소년단의 공식 팬덤명이다. 이에 따라 방탄소년단 글로벌 팬덤을 주축으로 서명이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터테인먼트업계 관계자는 “방탄소년단 팬덤 규모는 글로벌 K-팝 팬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서명 참여 수가 4만6000명을 돌파한 건 이른바 ‘민희진 사태’에 대한 글로벌 K-팝 팬의 전반적인 시각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국제 공론장’ 체인지닷오알지
‘민 대표 사퇴 촉구’ 청원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국내 언론에서도 다수 보도됐다. 해당 글은 다양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도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체인지닷오알지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는 분위기다.
비영리단체 체인지닷오알지가 공식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196개국에서 약 6억7300만명 이상이 사이트 서명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9년 이후로도 다양한 운동이 해당 사이트를 기반으로 전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누적 참여자 수는 현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체인지닷오알지를 통한 세계인의 적극적인 의견 게재는 실질적 변화를 만든 계기가 되기도 했다. 체인지닷오알지 내 가장 많은 서명을 받은 청원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조지 플로이드에 정의를’이란 제목으로 체인지닷오알지에 게재된 청원은 약 1960만명의 서명을 받았다. 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사건을 다룬다. 체인지닷오알지를 중심으로 전개된 서명 운동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 이는 미국 전역에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M·Black Lives Matter)란 문구로 대변되는 인권 운동이 확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체인지닷오알지가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시점은 2014년이다. 김연아 선수가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피겨대회에서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선수에 밀려 은메달 차지한 게 계기가 됐다. 당시 캐나다인은 ‘개최국의 편파 판정’ 의혹을 제기하며 재심사를 요구하는 청원 글을 체인지닷오알지에 올렸다. 국제빙상연맹(ISU)을 상대로 한 이 청원에는 200만명 이상이 서명에 참여했고, 이를 다수 외신에서 보도하며 국제적 이슈로 떠오른 바 있다.
체인지닷오알지는 이 밖에도 ▲몰도바 회원이 2019년 올린 한국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의 애니메이션 제작 요청 청원에 21만6000명 서명 ▲2022년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발간한 ‘월드 팩트북’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데 항의 수단 활용 등의 사례로 국내서도 이름을 알렸다. ‘나 혼자만 레벨업’ 애니메이션의 경우 해당 청원 후 제작이 결정돼, 올해 초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하이브 아티스트 지속된 고통 우려”
체인지닷오알지는 누구나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다양한 사이트 기능을 마련했다. 쉽게 청원 글 작성이 이뤄지는 것은 물론 서명에 참여한 이들도 댓글·영상을 통해 지지 사유를 남길 수 있는 구조다. 서명 운동의 확산을 원한다면 소액의 후원도 가능하다.
BTS 팬이 남긴 ‘민 대표 사퇴’ 촉구 청원에는 다양한 지지 의견이 달리고 있다. 본인의 얼굴을 공개한 한 이용자는 “(민 대표가) 회사·그룹·아티스트를 위하지 않는다”며 “자신만을 위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민 대표를 해고하지 않으면, 하이브 아티스트들은 계속해 고통받을 것”, “BTS 및 다른 하이브 그룹들에 대한 민 대표의 질투와 적대감은 우려스럽다”, “민 대표가 기업·아티스트를 비방하면서, 하이브 직원들의 노력·자금·자원을 이용했고 모든 공로와 인정을 차지했다” 등의 의견이 줄을 잇는다.
‘민희진 사태’가 한국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서명자는 “민 대표가 저지른 여러 사람과 아티스트에 대한 명예훼손 범죄에 대해 정의가 작용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이미지는 어떻게 되겠나”고 썼다. 또 “하이브뿐 아니라 한국의 명성과 음악 산업에도 큰 손상을 입혔다”, “예의범절의 국가인데, 일부 대중이 모기업을 배신한 사람을 지지한다는 점은 믿기지 않는다”는 식의 의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청원 글 작성자는 “최근 특정 개인이 방탄소년단·아일릿·르세라핌과 같은 그룹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걸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잘못된 정보 확산 방지를 위한 철저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가 조속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 대표가 회사와 아티스트들에게 초래한 모든 피해를 책임지도록 해달라”며 서명 참여를 독려했다. 청원인은 민 대표가 무속인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도 영어로 옮겨 함께 게시했다.
하이브는 민 대표가 양측이 맺은 주주 간 계약 내용을 외부에 일부 공개하는 등 ‘대표직 해임’에 해당하는 중대한 위반 사안이 있다고 봤다. 하이브는 이에 어도어 임시 주주총회 안건으로 ‘민 대표의 해임안’을 상정한 바 있다. 민 대표는 이에 반발해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지난 5월 30일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민 대표가 어도어를 독립적으로 지배할 방법을 모색한 것이 “‘배신적 행위’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어도어에 대한 ‘배임’ 행위가 된다고 하기에는 어렵다”고 봤다.
지난달 31일 어도어 임시 주총이 열렸지만, 민 대표의 해임이 이뤄지지 않은 배경이다. 다만 어도어 기존 사내이사인 신모 부대표와 김모 이사는 해임됐다. 이들은 민 대표의 측근들로 알려져 있다. 새 사내이사로는 하이브 측 추천으로 ▲이재상 최고전략책임자(CSO) ▲김주영 최고인사책임자(CHRO) ▲이경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선임됐다. 신규 선임된 어도어 사내이사 모두 하이브 C레벨 직책(조직 내 의사결정권자)을 맡고 있는 주요 경영진이다. 하이브는 어도어 지분 80%를 보유하고 있다.
민 대표는 어도어 임시 주총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지긋지긋하게 싸웠으니, 대인배처럼 끝내고 모두를 위한 다른 챕터로 넘어가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라며 “하이브와 타협점이 잘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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