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도시에서 늙어가기]②
은퇴해도 도시를 떠나기 어려운 이유
대도시가 노인 일자리‧일할 기회도 많아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당신의 은퇴 나이는 몇 세인가. 우리나라의 정년은 만 60세다. 그러나 60세 정년은 대부분 공공영역에서만 지켜지고 있다. 민간영역의 실제 퇴직 나이는 이보다 훨씬 빠르다.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55세인 경우가 많다. 반면 국민연금을 수령하게 되는 나이는 63세다. 운 좋게 60세에 정년퇴직을 해도 3년 정도 ‘소득 공백’이 발생한다. 이보다 먼저 은퇴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소득 공백 기간이 더 길어진다.
60세 정도의 재무 상황은 어떨까?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최근 4년 내 생애 첫 집을 구매‧ 분양‧상속 등으로 마련한 가구의 주택 장만 시점을 기준으로 주거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에서 자기 소유의 집을 처음 마련하는 평균 나이는 약 43세다. 대출 없이 집을 마련한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기 때문에 60세가 되면 간신히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완료했거나 아직 상환 중일 것이다. 전세보증금도 대출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어서 여전히 부채 상환의무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자녀들의 결혼연령이 점차 늦어지고 있으니 자녀들의 결혼자금 마련도 여전히 진행 중일 가능성이 크다. 63세가 되어 국민연금을 받는다 해도 그걸로 생활비를 모두 충당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니 은퇴자 대부분은 은퇴로 일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자리를 찾는 시작을 해야 할 형편이다. 2023년 5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조사에 의하면 55~79세 인구의 60.2%에 달하는 932만 1000명이 여전히 경제활동 중이라고 한다. 지난해 5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를 보면 계속 근로를 희망한다는 응답은 68.5%이다. 근로 희망 사유의 55.8%가 생활비에 보태기 위함이라고 답했다고 하니 은퇴 이후의 경제활동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고령층 취업자의 직업별 비중을 보면 단순 노무 종사자(23.2%) 비율이 가장 높고, 그다음이 서비스 종사자(13.9%)다. 관리자나 사무 직종은 매우 낮지만 대졸 취업자 비중이 높고, 정보통신기술에 적응력이 뛰어난 2차 베이비부머들이 은퇴자에 합류하면서 고령자 취업 분야도 더 다양해지는 추세이다.
이렇게 되면 은퇴 이후의 주거지 선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 바로 일자리와의 접근성일 것이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원거리 출퇴근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산성 측면에서도 불리하다. 초고령 사회에 우리가 가장 먼저 직면하는 문제는 실버하우스나 요양원이 아니라 거기에 가기 전까지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다.
과거에는 은퇴 이후를 대비해 일찌감치 자영업에 뛰어든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영업체들은 엄청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 여파는 노후 소득용으로 상가를 분양받았던 이들에게도 큰 타격을 주었다. 이들은 임대소득은커녕, 공실이 된 상가의 관리비를 부담하느라 허덕이고 있다. 물론 여전히 소수의 사람은 조물주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우량빌딩의 주인이 되어 안정적인 임대소득을 얻고 있지만 겉보기보다 실속은 없다. 그러다 보니 노년에 일하면서 돈을 버는 근로소득을 원하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이러한 일자리는 당연히 유동 인구가 많고, 기업이 밀집된 대도시일수록 풍부하다. 이래저래 은퇴 후 도시를 떠나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부족한 소득 다운사이징과 주택연금 등 활용해야
은퇴 후 재취업을 한 이들의 대부분은 과거의 일자리보다 직급이나 월급의 눈높이를 크게 낮추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부족한 노후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주택을 다운사이징 하거나 주택연금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은퇴 후 전원주택이나 단독주택으로의 이동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실제 실행비율은 낮다. 나이가 들수록 아파트나 공동주택이 치안이나 주택관리 측면에서 훨씬 비용이 적게 들고 편리할 뿐만 아니라 주택연금을 이용할 때도 유리하다.
단독주택이 보편화된 선진국에서 시니어 주택으로 공동주택을 공급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주택의 점유 형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나이가 들어 월세로 거주하는 것은 매우 불안정하다. 비용 문제도 있지만 전세계약에서조차 노인들에게 집을 빌려주지 않으려는 임대인들을 중개 현장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이 노인을 배려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주요 국가에서는 은퇴 후 살기 좋은 도시를 소개할 때 저렴한 주택 가격(혹은 임대료)과 생활물가, 세금 제도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입주에는 고령자를 우대하고 있다.
생애주기를 통틀어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사는 것은 늘 옳다. 복잡한 도심을 피해 외곽으로 나갈 때에도 교통은 늘 제1순위의 고려 조건이다. 자기 소유의 주택이면 은퇴 전에 주택담보대출 원금 상환을 마무리하는 게 좋다. 임차로 거주한다면 월세보다는 전세가 유리하며, 임대료 변화가 크지 않은 지역을 선택하되 보증금 인상에 대비한 여유자금을 저축해 놓아야 한다. 여유 자금 역시 주택을 활용할 수 있다.
주택의 규모를 축소하거나 살던 지역을 떠나 좀 더 낮은 주택가격과 보증금의 주택으로 이동하는 다운사이징을 하거나 거주하는 주택을 활용한 주택연금을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적 주택연금은 종신형이다. 즉 오래 살수록 유리하다. 적다 보니 내 집 마련(평균 43세)을 하자마자 우리는 다시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운명이다. (다음 편에 계속)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권한대행마저 탄핵 가결...경제계 "불확실성 커져"
2매일유업, 이인기·곽정우 대표 신규 선임...3인 대표 체제로
3취미도 온라인으로...여가활동 만족도 8년만 최고
4FBI, 3년 전 "코로나19, 실험실서 만들어져" 결론 내려
5민주당 "최상목, 속죄하는 마음으로 직무 임해야"
62025년 가장 여행 가고 싶은 국가 1위는 '일본'
7투자자 45% 올해 암호화폐 첫 투자...가장 많이 산 코인은
8최상목 권한대행 "국정 혼란 최소화해야...안정에 최선"
9청도군, '청년성장-직장적응' 성과 평가 최우수등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