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현장 사망사고 80%는 신입사원…명장이 만든 묘안은 [대한민국 명장]
김진현 산업안전 명장
사고 될 ‘위험인자’ 찾아내 없애야 진짜 ‘안전 관리’
사고는 현장에서…안전 관리 담당자 실무 익혀야
그들은 남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묵묵히 한 자리에서 15년 이상을 일했다. 분야도 다양하다. 한복 생산부터 제빵·금형·석공예·용접 등 한국 사회가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흔히 말하는 3D 업종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일이 어려워도 편법 대신 원칙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맡은 바를 끝까지 해낸 장인들이다. 그들에게 한국 사회는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기꺼이 부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창간 40주년을 맞이해 꽃보다 아름다운 명장의 인생사를 담은 ‘대한민국 명장’ 시리즈를 시작한다. 대한민국 명장은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38개 분야 92개 직종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 기술을 보유한 이들 중에서 대통령 명의로 선정된 기능인을 말한다. 지금까지 699명이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다. <편집자주>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2월 시행된 지 2년이 지났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인명피해가 경영자의 책임으로 돌아오는 만큼,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보건 활동에 만전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갈 길은 멀다. 고용노동부(노동부)가 발표한 2023년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598명이다. 2022년 숨진 644명을 더하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1200여 명이 일터에서 사고로 숨졌다.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제로’(0)로 만들 수 없다. 다만 경영자와 근로자가 안전 관리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 수치에 가까이 갈 수는 있다. 부산 강서구 KOC전기 본사에서 만난 김진현 산업안전 분야 명장은 중대재해로 이어질 ‘위험인자’를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김 명장은 “산업현장에 위험인자가 남아있다면 반드시 사고로 이어진다”며 “근로자의 안전의식이 높고, 안전 관리에 힘을 쏟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김 명장이 위험인자를 찾아내 ‘도려내기’를 안전 관리의 핵심으로 꼽는 이유다. 그는 “위험 요인을 그대로 둔다면 안전 관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없애고, 줄이고, 지키게 하고
김 명장은 2013년 대한민국 명장이 됐다. 산업안전 분야의 두 번째 명장이다. 명장은 산업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 기술을 보유한 사람만 선정된다. 단순히 기술의 수준이 높아선 안 된다. 해당 분야에서만 15년 이상 경력을 쌓아야 한다. 해당 기술의 발전을 위해 강의·교육 등을 통해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김 명장은 산업현장의 안전을 관리하기 위한 지침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없애고, 줄이고, 지키게 하고”다. 김 명장은 “안전 관리의 첫째는 위험인자를 ‘없애기’고 둘째는 위험인자를 ‘줄이기’”라고 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단계는 근로자가 안전 수칙을 스스로 ‘지키게 하기’다.
김 명장은 “안전 관리 담당자가 근로자에게 안전 수칙을 지켜야 한다고만 지적해선 안 된다”며 “근로자가 토로하는 현장의 문제를 해결해 작업 현장의 효율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 관리 담당자의 업무가 근로자의 작업 등에 도움이 돼야 이들이 안전 관리 담당자를 믿고 안전 관리 수칙을 준수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김 명장은 국내 한 기업에 컨설팅을 제공하며 수년에 걸쳐 신뢰를 쌓는 과정을 거쳤다. 근로자가 스스로 안전모를 쓰고, 사고에 주의하며 작업에 몰입하도록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김 명장은 “직원들이 안전모를 ‘쓰게’ 만드는 데만 8년이 걸린 곳도 있다”며 “근로자 스스로 안전 수칙을 지키도록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했다.
김 명장이 근로자와의 신뢰를 쌓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복지 개선’이다. 그는 “모 기업에는 구내식당과 직원 숙소를 리모델링하는 등 복지부터 신경을 쓰라고 조언했다”며 “근로자들이 근무 환경 변화를 바라보며 자신이 더 청결하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다른 기업에서는 김 명장이 직접 작업 현장을 찾아 곳곳에 안내문을 붙이고 공정을 손봤다. 근로자가 물건을 들고 옮겨야 하는 불편함은 작은 구체(球體)가 여럿 달린 원판을 만들어 해결했다. 공장 바닥에도 지게차와 직원이 다니는 길을 구분하는 선을 그었다. 크레인이 가동될 때는 근로자가 위험을 감지할 수 있도록 알람이 울리도록 했다.
김 명장이 안전 관리 담당자가 현장실무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사고는 항상 현장에서 발생하지만 정작 현장실무 경험이 없는 안전 관리 담당자가 많다”며 “안전 관리 담당자가 근로자의 근무 환경과 방식을 모르니 사고가 나면 바로 조치하기보다 임시방편만 세워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김 명장은 안전 관리 담당 인력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도 역설했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기업에서 안전 관리 담당자 채용이 의무화됐다”면서도 “중소기업이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기업의 상황을 잘 아는 안전 관리 인력을 정직원으로 채용·교육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현행법상 직원이 50명 이상인 기업은 산업 안전 관리의 자격이 있는 인력을 채용해 안전 관리 업무를 전담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 이를 실제 수행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를 고려해 기업이 지정된 전문 기관에 안전 관리 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안전 관리 인력의 위탁 체계로 제도를 준수하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기업마다 상황·체계가 달라 해당 기업의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이 안전 관리 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김 명장은 지적했다. 그는 “안전 관리 분야 전문가가 컨설팅을 제공하는 제도가 있지만 (전문가라도) 특정 기업의 작업 특성과 환경, 조건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며 “전문가들이 기업에 제공하는 컨설팅의 기간과 횟수도 적어 효율도 낮은 편”이라고 꼬집었다.
‘용접공’에서 ‘명장’으로
특정 분야에서만 15년 이상의 경험을 쌓아야 하는 만큼 명장의 무게는 남다르다. 김 명장이 처음부터 산업안전 분야의 명장으로 성장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아니다.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용접공이었다. 용접 실력도 좋았다. 김 명장은 1986년 삼성중공업에 용접공으로 입사한 당시를 돌아보며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용접을 배웠다”며 “베테랑이었고, 지금도 (용접을) 잘 한다”고 했다.
용접기를 잡던 손으로 산업현장 곳곳을 손보기 시작한 이유는 동료의 죽음 때문이다. 김 명장의 지척에서 일하던 동료가 작업 중 사고로 사망하면서다. 김 명장은 당시를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될 처참하고 불행한 사고”라고 표현했다. 그는 “조선업은 업무 환경 때문에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업종”이라며 “하지만 산업현장에서 안전 관리 체계는 전무했다”고 말했다.
김 명장이 산업안전 분야에 뛰어든 이유도 자신과 동료를 사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시작은 단순했다. 작업 현장에 치워지지 않은 도구를 정리하거나 추락이 염려되는 공간에 주의 문구를 잘 보이게 적어두는 식이다.
작업에 몰두하기보다 환경 관리에 힘을 쏟는 모습에 김 명장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꿋꿋했다. 김 명장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피드백을 받았지만 평가를 낮게 받으면서도 안전 관리를 계속했다”라며 “다른 동료에게도 힘이 닿는 대로 안전 관리를 권한 결과 1~2년 뒤 부서의 사고 건수는 크게 줄었다”고 했다.
김 명장이 성과 평가에 연연치 않고 안전 관리를 도맡은 기간만 2년이다. 부서의 사고 건수가 줄자 김 명장의 노력을 눈여겨보던 부서장이 김 명장을 불러 용접 대신 안전 관리에 집중하길 요청했다. 김 명장은 “동료의 건강과 생명을 챙기면서 월급도 받는다니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부서장의 요청으로 김 명장과 안전 관리를 담당하게 된 직원은 당시 1명. 김 명장은 여러 특허와 개발로 더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며 삼성중공업 내 안전 관리 담당자를 300여 명으로 늘렸다. 김 명장이 속한 라인에만 있던 안전 관리 직원은 삼성중공업의 여러 조직으로 투입됐다. 김 명장이 1993년 현장 라인 안전지역장을 맡은 이후의 일이다.
현장서 특허 아이디어 얻어
김 명장이 낸 특허와 실용신안도는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결과물이다. 김 명장은 3건의 특허와 3건의 실용신안을 등록했다. 선박 블록 작업 장치와 이동식 발판 장치, 사다리 고정구, 고압 기둥을 설치할 때 쓰는 이동식 지그, 램 고정용 지그 등이다. 모두 김 명장이 삼성중공업에 재직할 당시 근로자의 애로사항을 듣고 직접 고안에 참여한 특허와 실용신안들이다.
김 명장은 “고압 기둥 설치를 위한 이동식 지그는 700~800kg 정도인 고압 기둥을 근로자 6명이 세워야 하는 고강도 작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개발했다”며 “이 장비를 현장에 도입한 이후 작업자의 수는 6명에서 1명으로 줄었고 여러 기능을 넣어 작업자가 간단하게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작업의 효율도 높였다”고 했다.
김 명장이 산업안전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지는 30년이 넘었다. 사실상 한국 조선업의 산업현장 내 안전 관리의 변천사를 모두 경험했다. 산업안전 관리의 수준은 1980년대와 비교하면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아직 산업현장에서 안전 관리 활동이 잘 수행되고 있지 않다고 김 명장은 평가했다. 기업도 근로자도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 안전 관리를 위한 여러 수칙은 지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 명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안전 관리는 곧 사후관리였다”며 “이제는 기업과 근로자 모두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전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안다”고 했다. 다만 김 명장은 “문제는 현장에서 ‘액션’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정부가 법안 등을 통해 안전 관리 제도나 체계를 전파해도 현장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한계를 해소하기 위해선 근로자의 의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김 명장은 말한다. 김 명장이 삼성중공업에서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안전체험관을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명장은 “안전체험관 운영 전에는 사망사고의 80%가 입사한 지 반년도 안 된 신입사원”이라며 “신입사원을 작업장에 바로 내보내니 위험한 작업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입사원만이라도 작업 현장과 유사한 환경에 노출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안전체험관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안전체험관 운영 5년이 지났을 시점 입사 반년이 되지 않은 신입사원의 사망 등 중대재해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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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2월 시행된 지 2년이 지났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인명피해가 경영자의 책임으로 돌아오는 만큼,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보건 활동에 만전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갈 길은 멀다. 고용노동부(노동부)가 발표한 2023년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598명이다. 2022년 숨진 644명을 더하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1200여 명이 일터에서 사고로 숨졌다.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제로’(0)로 만들 수 없다. 다만 경영자와 근로자가 안전 관리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 수치에 가까이 갈 수는 있다. 부산 강서구 KOC전기 본사에서 만난 김진현 산업안전 분야 명장은 중대재해로 이어질 ‘위험인자’를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김 명장은 “산업현장에 위험인자가 남아있다면 반드시 사고로 이어진다”며 “근로자의 안전의식이 높고, 안전 관리에 힘을 쏟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김 명장이 위험인자를 찾아내 ‘도려내기’를 안전 관리의 핵심으로 꼽는 이유다. 그는 “위험 요인을 그대로 둔다면 안전 관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없애고, 줄이고, 지키게 하고
김 명장은 2013년 대한민국 명장이 됐다. 산업안전 분야의 두 번째 명장이다. 명장은 산업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 기술을 보유한 사람만 선정된다. 단순히 기술의 수준이 높아선 안 된다. 해당 분야에서만 15년 이상 경력을 쌓아야 한다. 해당 기술의 발전을 위해 강의·교육 등을 통해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김 명장은 산업현장의 안전을 관리하기 위한 지침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없애고, 줄이고, 지키게 하고”다. 김 명장은 “안전 관리의 첫째는 위험인자를 ‘없애기’고 둘째는 위험인자를 ‘줄이기’”라고 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단계는 근로자가 안전 수칙을 스스로 ‘지키게 하기’다.
김 명장은 “안전 관리 담당자가 근로자에게 안전 수칙을 지켜야 한다고만 지적해선 안 된다”며 “근로자가 토로하는 현장의 문제를 해결해 작업 현장의 효율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 관리 담당자의 업무가 근로자의 작업 등에 도움이 돼야 이들이 안전 관리 담당자를 믿고 안전 관리 수칙을 준수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김 명장은 국내 한 기업에 컨설팅을 제공하며 수년에 걸쳐 신뢰를 쌓는 과정을 거쳤다. 근로자가 스스로 안전모를 쓰고, 사고에 주의하며 작업에 몰입하도록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김 명장은 “직원들이 안전모를 ‘쓰게’ 만드는 데만 8년이 걸린 곳도 있다”며 “근로자 스스로 안전 수칙을 지키도록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했다.
김 명장이 근로자와의 신뢰를 쌓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복지 개선’이다. 그는 “모 기업에는 구내식당과 직원 숙소를 리모델링하는 등 복지부터 신경을 쓰라고 조언했다”며 “근로자들이 근무 환경 변화를 바라보며 자신이 더 청결하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다른 기업에서는 김 명장이 직접 작업 현장을 찾아 곳곳에 안내문을 붙이고 공정을 손봤다. 근로자가 물건을 들고 옮겨야 하는 불편함은 작은 구체(球體)가 여럿 달린 원판을 만들어 해결했다. 공장 바닥에도 지게차와 직원이 다니는 길을 구분하는 선을 그었다. 크레인이 가동될 때는 근로자가 위험을 감지할 수 있도록 알람이 울리도록 했다.
김 명장이 안전 관리 담당자가 현장실무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사고는 항상 현장에서 발생하지만 정작 현장실무 경험이 없는 안전 관리 담당자가 많다”며 “안전 관리 담당자가 근로자의 근무 환경과 방식을 모르니 사고가 나면 바로 조치하기보다 임시방편만 세워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김 명장은 안전 관리 담당 인력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도 역설했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기업에서 안전 관리 담당자 채용이 의무화됐다”면서도 “중소기업이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기업의 상황을 잘 아는 안전 관리 인력을 정직원으로 채용·교육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현행법상 직원이 50명 이상인 기업은 산업 안전 관리의 자격이 있는 인력을 채용해 안전 관리 업무를 전담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 이를 실제 수행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를 고려해 기업이 지정된 전문 기관에 안전 관리 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안전 관리 인력의 위탁 체계로 제도를 준수하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기업마다 상황·체계가 달라 해당 기업의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이 안전 관리 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김 명장은 지적했다. 그는 “안전 관리 분야 전문가가 컨설팅을 제공하는 제도가 있지만 (전문가라도) 특정 기업의 작업 특성과 환경, 조건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며 “전문가들이 기업에 제공하는 컨설팅의 기간과 횟수도 적어 효율도 낮은 편”이라고 꼬집었다.
‘용접공’에서 ‘명장’으로
특정 분야에서만 15년 이상의 경험을 쌓아야 하는 만큼 명장의 무게는 남다르다. 김 명장이 처음부터 산업안전 분야의 명장으로 성장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아니다.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용접공이었다. 용접 실력도 좋았다. 김 명장은 1986년 삼성중공업에 용접공으로 입사한 당시를 돌아보며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용접을 배웠다”며 “베테랑이었고, 지금도 (용접을) 잘 한다”고 했다.
용접기를 잡던 손으로 산업현장 곳곳을 손보기 시작한 이유는 동료의 죽음 때문이다. 김 명장의 지척에서 일하던 동료가 작업 중 사고로 사망하면서다. 김 명장은 당시를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될 처참하고 불행한 사고”라고 표현했다. 그는 “조선업은 업무 환경 때문에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업종”이라며 “하지만 산업현장에서 안전 관리 체계는 전무했다”고 말했다.
김 명장이 산업안전 분야에 뛰어든 이유도 자신과 동료를 사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시작은 단순했다. 작업 현장에 치워지지 않은 도구를 정리하거나 추락이 염려되는 공간에 주의 문구를 잘 보이게 적어두는 식이다.
작업에 몰두하기보다 환경 관리에 힘을 쏟는 모습에 김 명장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꿋꿋했다. 김 명장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피드백을 받았지만 평가를 낮게 받으면서도 안전 관리를 계속했다”라며 “다른 동료에게도 힘이 닿는 대로 안전 관리를 권한 결과 1~2년 뒤 부서의 사고 건수는 크게 줄었다”고 했다.
김 명장이 성과 평가에 연연치 않고 안전 관리를 도맡은 기간만 2년이다. 부서의 사고 건수가 줄자 김 명장의 노력을 눈여겨보던 부서장이 김 명장을 불러 용접 대신 안전 관리에 집중하길 요청했다. 김 명장은 “동료의 건강과 생명을 챙기면서 월급도 받는다니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부서장의 요청으로 김 명장과 안전 관리를 담당하게 된 직원은 당시 1명. 김 명장은 여러 특허와 개발로 더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며 삼성중공업 내 안전 관리 담당자를 300여 명으로 늘렸다. 김 명장이 속한 라인에만 있던 안전 관리 직원은 삼성중공업의 여러 조직으로 투입됐다. 김 명장이 1993년 현장 라인 안전지역장을 맡은 이후의 일이다.
현장서 특허 아이디어 얻어
김 명장이 낸 특허와 실용신안도는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결과물이다. 김 명장은 3건의 특허와 3건의 실용신안을 등록했다. 선박 블록 작업 장치와 이동식 발판 장치, 사다리 고정구, 고압 기둥을 설치할 때 쓰는 이동식 지그, 램 고정용 지그 등이다. 모두 김 명장이 삼성중공업에 재직할 당시 근로자의 애로사항을 듣고 직접 고안에 참여한 특허와 실용신안들이다.
김 명장은 “고압 기둥 설치를 위한 이동식 지그는 700~800kg 정도인 고압 기둥을 근로자 6명이 세워야 하는 고강도 작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개발했다”며 “이 장비를 현장에 도입한 이후 작업자의 수는 6명에서 1명으로 줄었고 여러 기능을 넣어 작업자가 간단하게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작업의 효율도 높였다”고 했다.
김 명장이 산업안전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지는 30년이 넘었다. 사실상 한국 조선업의 산업현장 내 안전 관리의 변천사를 모두 경험했다. 산업안전 관리의 수준은 1980년대와 비교하면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아직 산업현장에서 안전 관리 활동이 잘 수행되고 있지 않다고 김 명장은 평가했다. 기업도 근로자도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 안전 관리를 위한 여러 수칙은 지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 명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안전 관리는 곧 사후관리였다”며 “이제는 기업과 근로자 모두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전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안다”고 했다. 다만 김 명장은 “문제는 현장에서 ‘액션’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정부가 법안 등을 통해 안전 관리 제도나 체계를 전파해도 현장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한계를 해소하기 위해선 근로자의 의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김 명장은 말한다. 김 명장이 삼성중공업에서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안전체험관을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명장은 “안전체험관 운영 전에는 사망사고의 80%가 입사한 지 반년도 안 된 신입사원”이라며 “신입사원을 작업장에 바로 내보내니 위험한 작업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입사원만이라도 작업 현장과 유사한 환경에 노출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안전체험관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안전체험관 운영 5년이 지났을 시점 입사 반년이 되지 않은 신입사원의 사망 등 중대재해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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