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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고 불친절’ 제주도를 바꾼 올레길의 힘[순화동필]

세계 무대서 ‘걷기의 가치·힘’ 확산 중인 제주올레

제주올레길 모습.[사진 제주올레]
[안은주 사단법인 제주올레 대표이사] “사람의 걸음이 아무리 작아도 계속 걷다 보면 결코 작은 걸음이 아니라는 것을 제주올레길을 걸으며 알았다.” 

제주올레 27개 코스 437km를 걸어서 완주한 한 올레꾼(올레길 걷는 사람)이 남긴 말이다. 제주의 마을과 밭길 그리고 오름과 바닷길을 이어 걷는 길이 된 '제주올레'는 지난 17년 동안 1200만명 이상이 걸어온 길이다.

건강해지려 걷는 사람도, 또 제주를 구석구석 여행하려고 걷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작지 않은 발걸음은 제주의 아주 작은 마을부터 이웃 나라 일본, 심지어 몽골의 마을 풍경까지 바꾸고 있다. 관광객이라고는 1년에 한 명도 보기 어려웠던 마을은 제주올레길로 이어진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성지로 조명받고 ‘한 달 살이’, ‘1년 살이’ 열풍의 터전이 됐다. 뿐만 아니라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가려했던 젊은이들을 고향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길이 됐다.

제주올레길, 성공의 시작

제주올레길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지금의 제주올레길을 만든 사람은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다. 그가 기자 일을 하던 지난 2006년, 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렸다. ‘기자직을 더 고집하다가는 곧 죽을 것 같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다니던 언론사에 사표를 던지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로 향했다.

그는 36일 동안 800km가 넘는 길을 걸으며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 이런 치유의 길이 한국에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귀국 후 본인의 고향인 제주도에 걷는 길을 내기 시작했다. 제주올레길의 시작이다. 

2007년 9월 제주올레 1코스를 개장하자마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 사람이 걷고 가면 네 사람을 내려보내고, 네 사람이 걷고 간 뒤에는 열여섯 명이 걸으러 오는 식이었다.

차에 탄 채로 점 찍듯 제주를 여행했던 사람들은 느리게 걸어서 여행하며 제주의 속살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그런 도보여행에 열광했다. 제주를 새롭게 알아갈수록 제주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도 급속도로 늘었다. ‘비싸고 불친절한 2박3일 렌터카 여행지’였던 제주도는 제주올레길이 생기면서 오래 머물고 자주 찾는 여행지로 탈바꿈했다. 

제주올레길의 명성은 이웃 나라 일본에까지 퍼졌다. 제주도의 변화를 관심 있게 지켜보던 일본 남쪽의 지역 규슈 지자체로부터 지난 2010년 말에 연락이 왔다.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휴양지 규슈에도 올레길을 내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발하면서 일본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고, 관광업계도 큰 타격을 입었다. 규슈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10명 중 7명(70%)은 한국인 관광객이었는데 그들의 발길이 뚝 끊긴 것이다. 결국 그들이 찾은 묘안이 올레길이었다.

규슈관광추진기구는 대지진으로 침체된 규슈 관광을 살려내려면 한국인의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올레길 수입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규슈는 '올레'라는 이름부터 조랑말 모양의 간세 표지와 화살표, 코스 운영 시스템까지 제주올레와 거의 똑같이 운영하고 싶어했다. 제주올레가 제시하는 브랜드 가이드를 지키며 코스 결정권은 제주올레가 갖고, 매년 100만엔(약 900만원)을 브랜드 사용료로 지불하는 조건으로 협약을 맺었다. 

2012년 2월 29일, 규슈올레 첫 코스인 다케오 코스가 개장했다. ‘1960년대 고속도로를 수출하던 한국이 걷는 길을 수출하는 나라’가 되는 순간이었다. 규슈올레 첫 개장식에 참여한 한 여행사 대표는 “이렇게 자랑스럽고 기쁠 수가 없다. 그동안 일본과 비즈니스를 하면서 서럽고 자존심 상한 적이 수없이 많았는데, 올레길 수출 현장을 보는 오늘 그 설움을 날려 버렸다”며 우리보다 더 기뻐했다.

규슈올레는 매년 새로운 코스 2~4개를 개장해 현재는 규슈 전역에 총 18개 코스가 운영되고 있다. 남한 면적의 3분의 2 크기인 규슈는 후쿠오카현을 비롯해 총 7개 현(도)으로 구성돼 있는데 7개 현 모두 규슈올레를 냈다. 

규슈올레 사이키-오뉴지마 코스로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사진 제주올레길]

지난해 11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제주올레 11코스에서 2023 제주올레걷기축제가 개막했다. 참가자들이 하모리 바닷가를 줄지어 걷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사상 처음 ‘길’을 수출하다

규슈올레는 제주올레와 달리 행정에서 길을 내고 운영 관리하고 일본 공무원들이 탐사대가 돼 길을 찾는다. 규슈올레 초기에는 올레길의 개념도 모르는 이들이 길을 찾아, 심사하러 가보면 황당한 길을 내놓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탐사대 임무를 맡은 공무원이 1000km 이상을 걸으며 찾은 길이라고 해서 기대감을 갖고 현장을 찾으면 시멘트와 아스팔트 길이 대부분이었다.

올레길의 원칙은 가능한 자연의 길을 잇는 것이다. ‘차로 가도 되는 길을 굳이 왜 걸어 다녔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애써 숲길을 찾아 놓고는 울퉁불퉁 돌길이 불편해 심사에서 떨어질까 시멘트로 포장해 놓은 길도 있었다.

매년 떨어지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아 6년 만에 규슈올레 코스로 인정받은 지역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규슈 탐사대들도 올레길을 찾는 눈과 걷는 맛을 알게 됐고 일본 내 올레꾼 숫자도 불어났다. 결국 한국인을 불러들이기 위해 시작한 규슈올레는 일본인에게도 인기를 누리는 길이 됐다.

규슈올레가 일본 내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자 일본의 다른 지자체들이 올레길 수입에 관심을 보였다. 미야기현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일본 동북쪽에 있는 미야기현은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를 직접 경험한 곳이어서 올레길을 유치해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싶어했다.

제주를 여러 차례 찾아와 올레길을 하고 싶다며 졸랐다. 현 지사와 현 의원들까지 나서 열의를 보여줬다. 걸림돌은 방사능 이슈였다. 지진 피해로 인한 방사능 이슈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곳에 올레길을 내야 하는가를 놓고 제주올레 이사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2023 제주올레 걷기 축제'의 종점인 제주시 한경면 용수포구에 도착한 한 올레꾼이 환하게 웃으며 하이 파이브 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몽골올레 모습.[사진 제주올레]

열띤 토론과 숙고 끝에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살고 있는 그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내민 손을 잡아줘야 치유와 상생의 올레가 되지 않겠느냐’는 결론을 내렸다. 2018년 '미야기올레' 코스가 개장하던 날, 미야기현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미야기올레는 현재까지 5개 코스가 열려 있고, 행사 때면 한국과 일본 전역에서 온 1000명이 넘는 올레꾼들이 모여 함께 걷는 길이 됐다. 

미야기올레길 개장 1년 전인 2017년 6월, 몽골올레를 시작했다. 규슈올레와 미야기올레가 제주올레의 수출 모델이라면 몽골올레는 우리가 길을 선물로 준 국제개발협력 모델이기도 하다. 몽골올레는 제주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고려 말 몽골이 약 100년 동안 제주도를 지배했다) 몽골에도 올레길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들의 제안과 후원으로 시작됐다.

몽골에서는 비만과 성인병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걷기 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던 터라 도보여행 길인 올레를 선물하겠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몽골올레도 다른 올레길처럼 자연과 사람을 함께 담고 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과 테렐지 국립공원에 위치한 몽골올레는 시종점을 마을로 정하고 초원과 숲 그리고 강을 따라 걸으며 사람과 자연을 함께 만나도록 설계했다. 걷다가 말을 타고 다시 또 두 발로 걷는 구간으로 설계된 코스도 있다. 

모든 올레길의 원칙은 본래의 자연을 유지하며 사람이 걸을 수 있게 최소한의 작업으로만 잇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길을 새로 내는 일보다 유지 관리에 품이 훨씬 많이 든다. 제주올레길은 1년 동안 다섯 번 이상 예초를 해야 하고, 해마다 찾아오는 태풍에 길 절반이 파괴돼 매년 새로 길을 내다시피 한다.

몽골올레 유지 관리에는 늘 새로운 시련이 반복된다. 2017년 개장할 때였다. 한 달 전 작업해 놓은 올레 표식 일부가 사라져 제주올레 탐사팀은 개장을 앞두고 급하게 다시 몽골로 날아가야 했다. 동물들의 소행이었다. 어떤 표지를 해놔도 염소와 양, 말과 소들로부터 안전하지 않았다.

어떤 표지는 그들의 먹이가 되고 어떤 표지는 그들의 장난감이나 등 긁는 효자손이다. 해마다 소재를 달리하며 올레길 표지를 새로 심고 바꿨다. 여러 소재를 거쳐 마침내 가장 단단할 것 같은 시멘트 기둥까지 시도했는데, 올해 초 몽골에서 날아온 사진에는 시멘트 기둥마저 초원에 나뒹굴고 있었다.

현재 몽골올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제주올레가 협업해 몽골 주민 스스로 길을 활용하고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중이다.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기념품 판매와 길동무 프로그램으로 수익을 만들고, 그 수익의 일부로 올레길을 관리하는 올레지기 역할을 해내고 있다. 

다른 나라 도보여행 길과 비교할 때 제주올레는 역사가 20년도 안 된 ‘어린 길’이다. 스페인 산티아고 길은 1200년이 넘었고, 미국의 '애팔래치아트레일'이나 영국의 '내셔널트레일' 같은 서양 도보여행 길은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백 년이 넘었다.

글로벌서 확인한 제주올레길의 가치

그렇지만 세계 트레일업계에서 제주올레의 입지는 결코 만만치 않다. 2010년부터 5년 동안 세계 최초로 세계트레일콘퍼런스(WTC)를 제주에서 개최하며 세계트레일협회(WTN)를 출범시킨 ‘산파’ 역할을 했고, 영국, 캐나다, 스위스, 호주 등 세계 12개국 13개 도보여행 길과 '우정의 길'을 맺고 국제무대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제주올레가 2010년 세계트레일콘퍼런스를 개최하기 전까지 세계 트레일은 한자리에 모인 적이 없다. 세계트레일협회가 시시때때로 ‘제주올레 덕에 세계트레일협회가 결성됐다’고 제주올레를 추켜세우는 이유다.

우정의 길은 서로의 길에 상대 길을 알리는 표지를 심고, 그 길을 걷는 이들에게는 제주올레를 소개하고, 제주올레를 걷는 이에게는 상대의 길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제주올레길 모습.[사진 제주올레]

제주올레는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장 많은 도보여행자가 걷는 스페인 산티아고 길과는 우정의 길을 넘어 공동 완주 인증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다. 산티아고 길 100km 이상과 제주올레 길 100km 이상을 걸으면 제주올레 또는 산티아고에서 공동 완주증과 공동 완주 메달을 받을 수 있다.

산티아고 길을 100km 이상 걷는 도보여행자는 매년 30만~40만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 10~20%만이라도 제주올레길로 이끌기 위해 제안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행 2년도 안 된 올해, 스페인에서 온 제주올레 완주자가 늘어나는 등 이미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도보여행 길은 지역이 가진 자연과 문화라는 가장 핵심적인 가치를 살리면서 세계적인 여행지로 거듭나게 한다. 또 그 혜택이 지역 사회에 고루 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건강한 여행 플랫폼이다. 제주올레길은 아직 어린 길이지만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며 그 플랫폼의 힘을 세계 곳곳에서 확인시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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