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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통신 명장'이 피자집 창업 샛길 빠졌던 이유 [대한민국 명장]

김창순 무선통신 명장
“샛길로 빠지지 말고 한길만 걷는 게 최고”
“4호 명장 나오길...후배 양성 노력 필요”

그들은 남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묵묵히 한 자리에서 15년 이상 일했다. 분야도 다양하다. 한복생산부터 제빵·금형·석공예·용접 등 한국 사회가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흔히 말하는 3D 업종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일이 어려워도 편법 대신 원칙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맡은 바를 끝까지 해낸 장인들이다. 그들에게 한국 사회는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기꺼이 부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창간 40주년을 맞이해 꽃보다 아름다운 명장의 인생사를 담은 '대한민국 명장' 시리즈를 시작한다. 대한민국 명장은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38개 분야 92개 직종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이들 중에서 중에서 대통령 명의로 선정된 기능인을 말한다. 지금까지 699명이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다. <편집자주>
김창순(金昌純 : 1959년생) 대한민국 명장(무선통신, 제 574호). 서울시 용산구 소재 그의 작업공간에서 김 명장을 만났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한국에서 만드는 무선통신 제품의 품질이 외국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후배 양성을 위한 시스템 등 여건이 좋지 않아 안타깝다.”

‘무선통신’은 전파를 이용해 선에 의한 연결 없이 원격지에 정보를 전달하는 통신 기술을 말한다. 여기에는 마이크로웨이브 전송 기술·안테나 설계 기술·레이더 기술·이동통신 기술·위성통신 기술 등이 포함된다. 우리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온 무선통신은 이제 절대 없어서는 안될 기술이다.

대한민국은 통신 강국이라 불린다. 2019년 세계 최초로 5세대 이동통신을 상용화하는 등 초격차 기술 확보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무선통신 부문 숙련 기술자가 없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현재 국가가 공인한 무선통신 관련 명장은 단 세 명뿐이다.

4호 명장이 나오길 기대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7월 서울 용산구 소재 기가통신 사무실에서 김창순 무선통신 명장을 만났다. 기가통신은 김 명장이 운영하는 무선통신기기 수리·판매·컨설팅 업체다. 김 명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2014년 무선통신 3호 명장이 된 이후 10년째 또 다른 명장이 나오지 않고 있다”면서 “그동안 대기업 출신, 박사 학위를 취득한 기술 숙련자들이 명장에 도전했지만 계속 실패했다”고 말했다.

사실 명장은 명예직에 가깝다. 명장이 됐다고 막대한 부를 얻는 것은 아니다. 명장 선정 시 제공되는 혜택은 ▲대통령 명의의 수여증과 휘장 및 명패 ▲국가기여 보상금 2000만원 ▲산업인력공단 지원금 월 30만~40만원 등이 전부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명장이 나오는 것은 중요하다.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기술 숙련자의 유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 명장은 과거와 현재의 달라진 상황이 새로운 명장 부재의 원인이라고 봤다. 그는 “기술은 경험을 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데 요즘은 무선통신 관련 제품만 전문으로 하는 중대형 규모의 기업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대기업으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아 기술을 개발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이런 경우도 거의 없다. 후배를 키울 수 있는 인재 양성 여건이 많이 없어진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뷰 내내 후배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김 명장이다. 그는 자신의 노하우를 많은 후배들에게 전파하고 싶다고 했다.

김 명장은 “모교를 비롯해 전국의 대학에서 강의를 계속해 왔다”면서 “안테나 공학, 정보통신공학, 전기기기 실습, 납땜 및 조립 등 다양한 과목을 맡았다”고 말했다. 이어 “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진로 강의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김 명장은 또 “기술 전수를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지금은 예산이 없어 중단됐지만 서울시 교육청과 협업해 학생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인 명장공방도 운영을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명장, 기술에 대해 일찍부터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명장은 수십 년간 무선통신 관련 업무를 해왔다. 그럼에도 명장이 무엇인지, 어떻게 될 수 있는 것인지 잘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고 싶은 김 명장이다. 그는 “준비된 자가 성공한다”며 “저를 비롯한 명장님들은 언제나 열려있다. 명장이 되고 싶다면 조언을 구하길 바란다. 그러면 더 빨리 명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창순 명장이 통신 기기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사진 신인섭 기자]
무선통신 업계 첫발을 내딛다

김 명장은 1959년생으로 경상남도 밀양 출신이다. 그는 1975년 특성화고 통신과에 입학해 무선통신 분야를 처음 경험했다. 이후 광운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며 이론을 익혔다. 이런 와중에 군대에 입대한 김 명장은 무선통신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김 명장은 “선이 없다는 것이 무선통신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선을 끌고 갈 수 없는 곳 어디서든 연결이 된다. 지구 반대편과도 통신을 할 수 있고, 우주와도 교신이 가능하며, 심해에서도 통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생활에서도 무선통신을 쉽게 볼 수 있다. 블루투스 스피커, TV 리모컨, 휴대전화, 무선 이어폰 등도 다 무선통신과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김 명장은 “군대에서도 통신 쪽으로 지원해 모스부호를 1년간 다뤘다”면서 “이런 경험이 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 통신 관련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그가 1986년 무선통신 전문회사에 입사한 이유다.

김 명장은 “대학 졸업 전이었다. 1986년 1월 맥스 온(MAX ON) 전자라는 무선통신 회사에 입사해 한 달간의 연수를 받고 실전에 투입됐다”면서 “내수용보다 미국, 호주, 유럽 등으로 수출하는 무전기를 개발하는 업무를 주로 했다”고 사회 초년생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특성화고 출신이라 납땜질에는 자신이 있었다”면서 “당시 회사에서 6개월에 한 번씩 하나의 새로운 모델을 개발했다. 이렇게 생산된 제품은 해외로 수출됐다. 그때는 정말 열심히 잘했다”고 웃었다.

김 명장은 이후 에스원 세콤 기술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맥스온 전자에서 함께 일하던 선배가 무선통신 분야 전문가를 찾고 있던 회사에 추천해 준 덕분이다. 그렇게 무선통신 전문가 특채로 에스원 세콤 기술연구소 입사에 성공했다.

김 명장은 “이 회사에서 10년 정도를 일했다. 당시 출입 통제와 외곽 경비 등을 위한 무선 시큐리티(보안) 시스템을 개발하라는 미션을 받았다”면서 “유선 시스템은 선이 많아 외관상 지저분해 보였고, 관리 인력도 많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선 방식은 기곗값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센서를 부착하고 컨트롤 박스에서 제어하는 간단한 방식”이라며 “시스템 개발 과정에서 특허도 여럿 냈고, 관련해서 논문도 썼다. 그렇게 국내 최초의 무선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김창순 명장이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하며 웃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잠깐 빠진 샛길 “가장 후회되는 일” 

김 명장은 무선통신 업계에서 수십 년을 몸담은 전문가다. 그가 얻은 명장 타이틀을 보면 평생 우직하게 한길만 바라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그도 잠깐 ‘샛길’로 빠진 적이 있다. 자신만의 사업을 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의 삶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김 명장은 “벤처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사업을 꿈꿨을 당시 아이템도 많았기 때문에 5억원에서 10억원 정도를 확보해야 했다”며 “이렇게 구상한 사업을 실행하려면 인력도 5명에서 10명 정도 필요했다. 그래서 피자집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가 피자집을 선택한 이유는 사촌동생 때문이다. 당시 피자집을 운영하던 사촌동생의 수입이 괜찮았다고 한다. 김 명장은 사촌동생을 보면서 자신도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김 명장은 “사촌동생의 피자집이 정말 잘 됐다. 그걸 보면서 나도 피자집을 차려 창업 비용을 모으면 되겠다고 판단했다”면서 “피자집을 운영하는 몇 년 동안 내가 체득한 무선통신 관련 기술을 잊을 일도 없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그때 당시 김 명장의 나이는 40대 초반이었다. 완벽한 착오였다.

그가 차린 피자집은 예상했던 것보다 매출이 나오지 않았다. 김 명장은 “당시 철이 정말 없었다”며 웃었다. 무선통신 업계에서 잠시 벗어나 피자집을 운영한 당시의 경험은 자신에게 큰 교훈을 줬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지금 후배들에게 이 말을 꼭 한다”며 “딴 곳으로 빠지지 말고 전공을 꼭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자집 운영을 중단한 김 명장은 재기를 꿈꾸며 작은 회사에 입사했다. 다만 일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재직 중이던 회사가 협력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김 명장은 “2000년대 초반에 휴대전화를 만드는 회사에 입사한 적이 있다. 프랑스에서 모듈을 가져와 중국 공장에서 조립해 수출하는 형태였다”면서 “당시 휴대전화가 급부상하는 중이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당시 모델도 2~3개 개발한 상태였지만, 중국 협력사가 포기하고 철수하면서 최종 무산됐다”고 말했다.

암흑기를 걷던 김 명장에게 한 줄기 빛이 된 것은 그의 첫 직장 선배였다. 김 명장은 “첫 직장 선배와 함께 무전기를 개발하게 됐다”면서 “우리가 제품을 개발하고 중국에서 생산해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선배와 함께 일하며 무전기 개발에만 몰두했다. 앞서 한 차례 실패 경험이 있었기에 다른 생각을 일절 하지 않았다.

김 명장은 “이 기간 석사 학위와 전자기기기능장을 취득했다. 해당 자격증을 따면 국가자격증출제위원, 심사평가위원 등으로 인력풀 등록이 가능하다”면서 “그때부터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스펙을 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선배로부터 독립해 자신만의 사업장을 갖게 됐다. 조금은 돌아왔지만, 창업이라는 꿈을 이룬 셈이다. 김 명장은 “선배가 명장이 됐으니 독립하라고 해 옆 건물로 넘어와 현재의 사무실을 차렸다”면서 “처음에는 월세로 살았지만 5년 전 돈을 모아 이 공간을 직접 구매했다”고 말했다.
김창순 명장이 제작하고 있는 FM 블루투스 진공관 오디오 앰프. [사진 신인섭 기자]
모든 것 이뤘지만 여전히 꿈은 꾼다

제3자가 보기에 김 명장은 모든 것을 이룬 인물이다. 젊은 시절 자신이 꿈꿨던 창업에 성공했고, 번듯한 자신만의 사업장도 세웠다. 국가가 공인하는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통해 명예까지 얻었다. 그럼에도 김 명장은 또 다른 꿈을 꾼다.

김 명장은 “주파수 변조 전송 방식(FM)의 블루투스 진공관 오디오 앰프 관련 기술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싶다”면서 “진공관 오디오 앰프의 경우 100년 이상 된 기술이다. 여기에 FM 라디오와 블루투스 기술을 조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이미 있는 기술이고 제품이지만 핸드메이드(수제작) 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이걸 개발해서 명장전에 출품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 명장은 수중통신에 대한 관심도 많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나온 기술을 보면 심우주 통신은 잘하고 있는 것 같다. 나사(NASA)의 보이저 1~2호를 보면 이제 태양계를 넘어설 것만 같다”면서 “다만 또 다른 무선통신의 개념인 수중통신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열심히 연구도 하고 논문도 보고 있다. 잠수함 등이 활용하는 초음파 통신의 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기술 개발도 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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