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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공포의 계절인 이유[이코노 헬스]

공포증의 여러 사례들...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서울시 강서구 김포도시철도(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 상행선 승강장이 전동차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가득 차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상욱 샘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여름은 공포의 계절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더운 날씨에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공포영화가 끌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평소였다면 피할 수 있을 공포감이 무더위에 느껴지는 불쾌함, 답답함을 촉매로 터져 나올 수도 있고, 무더위를 피하려 대중교통이나 밀폐된 공간에 들어갔다가 곤란함을 느낄 수도 있다. 심지어 겨울 추위는 옷을 한 꺼풀 더 껴입어서 대비할 수 있지만 여름 더위는 옷을 벗을 수 있을 만큼 벗어도 찾아온다. 대책이 없는 셈이다.

공포증이란 무엇일까

공포는 특정 상황으로부터 느껴지는 불쾌감이다. 대상을 특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과 다르다. 불안이 막연하게 곤란함이 찾아올 것만 같은 불쾌감이라면, 공포는 한층 구체적이다. 내가 어떤 대상으로부터 곤란함을 느끼고 불쾌한지 지목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공포 상황에 노출되면 각종 자율신경계의 반응이 나타난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숨이 답답해지며 식은땀이 난다. 손발이 떨리기 시작하면서 어지럽고 메슥거린다. 심해지면 손발에 전기가 흐르는 불편함이 느껴지면서 호흡 곤란과 함께 죽을 것 같은 느낌도 찾아들 수 있다.

심리 반응은 신체 반응보다 더 다양하다. 내담자 본인이 이런 공포나 불안감을 크게 느끼면서 나름의 회피, 대응 노력을 하는 경우가 꽤 있다. 반면 공포증이 공황장애와 함께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공황장애의 경우 불안감이 훨씬 강력할 수 있고, 특별한 사유 없이 어떤 상황이건 예기치 않게 불안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공포증의 대표 사례인 광장공포증은 광장 등 혼잡한 공간에서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를 지칭한다. 특히 광장공포증을 경험하는 사람 가운데 3분의 2가량은 공황장애를 함께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잡한 공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다양하다. 드넓은 공간 한가운데서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막막함을 느낄 수 있다. 혹은 복닥거리는 사람에 치여서 내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고 느낄 수 있다. 어느 쪽이 됐건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신속하게 빠져나갈 수 없다는 당혹감이 불쾌감을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부분은 공간 자체의 넓고 좁음이 반드시 공포증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광장 외에도 비행기나 고속열차(KTX·SRT) 등 대중교통에서도 광장공포증과 유사한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사람이 많은 거리, 밀폐된 공간 등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자기공명영상장치(MRI)에 들어가 촬영할 때도 공포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비좁은 곳과 드넓은 곳 어디서도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즐길 수 없는데 피할 수도 없다는 감각이 핵심이다. 광장공포증이 특정한 공간뿐만 아니라 상황 속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 홀로 외출, 줄 서기, 치과 치료를 위해 덮개를 얼굴에 덮을 때 등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공포를 느낄 수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한 말인 셈이다.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조건은 광장 외에도 다양하다. 앞서 본 광장이나 대중교통 등에서 느끼는 공포는 상황형 공포다. 공포증 가운데 가장 흔하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많은 것은 동물형 공포다. 이름 그대로 동물이나 곤충으로부터 느끼는 불쾌감이다. 동물형 공포는 어른보다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시각에서 말하자면 어른이 잃어버린 상상력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어른의 시각에서 말하자면 꿈과 상상을 현실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외에도 높은 장소나 물 등에 공포를 느끼는 자연환경형 공포, 백신 접종이나 채혈 검사에 공포를 느끼는 혈액주사형 공포 등이 있다.

다만 정도가 가볍다면 마냥 공포증이라 진단하긴 어려울 수 있다. 누구에게나 남들보다 불쾌감을 크게 느끼는, 속된 말로 ‘발작 버튼’이 있다. 나 자신 또한 출근길 꽉 막힌 경부고속도로에 서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갑갑하고 불안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스스로가 상황형 공포를 느낀다고 자가진단을 하진 않는다. 

미국 정신질환진단및통계편람(DSM-V)에선 극심한 공포, 불안감, 회피 반응이 6개월 이상 지속돼 개인의 중요 기능에 뚜렷한 고통과 손상을 야기할 때 공포증으로 진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내담자가 실제 위협에 비해 공포를 과도하게 느낀다거나 불쾌감을 피하려 특정 상황을 회피한다면 공포증으로 진단할 확률은 높아진다. 요컨대 개인 스스로가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대처하는지에 따라 공포증 진단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용종, 상처 등 객관적인 판단 준거가 있는 내·외과 질환과 다른 영역이라면 영역이겠다.

유사한 맥락에서 DSM-V의 준거 가운데 동반자와 있을 때 공포와 불안을 견디는 데 도움을 받는 경우 공포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는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두 가지 함의가 있다. 우선 증세가 주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함축이다. 가령 동반자가 있다고 어젯밤 심해진 감기 증상이 나아지진 않는다. ‘엄마 손은 약손’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다음은 주변에 누가 있는지에 따라 증세가 실제로 호전될 수 있다는 함축이다. 가족들이 환자의 증상을 이해하고 완벽하게 지지, 지원하는 체계라면 대상자가 중요 기능에 손상을 입지 않을 수 있다.

증상 예후, 질병 진단도 자연히 달라진다. 원래였다면 공포를 피하지 못했을 대상자에게 가족이 탈출구가 되는 셈이다.

공포증이 어떤 사람들에게 더 많이 발생하는지를 구태여 따진다면 ①10대 청소년 ②여성이라 볼 수 있다. 사회적 자아가 강해 주변 시선을 크게 의식하는 사람들이 공포를 느낄 가능성도 큰 셈이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평생 유병률은 10% 정도다. 대한민국 사람 10명 가운데 한 명은 공포증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나 자신일 가능성도 결코 배제해선 안된다.

확신과 긍정 필요한 인지 치료

공포증이 찾아왔을 때 가장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은 항불안 치료제를 복용하는 방법이다. 항불안 치료제는 신경이 불필요하게 과잉 반응하지 않도록 돕는다. 자연히 불안도 줄어들고 긴장도 풀릴 수 있다.

문제는 습관성이다. 편안함을 주는 속성 탓에 약물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다. 또 증상에 따라 약물을 세심하게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같은 공포증이더라도 근육 긴장도가 큰 경우, 떨림이나 두근거림이 심한 경우, 속이 미식거리는 경우, 어지럼증이 동반되는 경우 등 동반 증상에 따라 약제의 사용과 선택이 달라진다. 전문의의 진찰 하에 제대로 약 처방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개인 차원에선 인지 치료도 병행할 수 있다. 공포증이 찾아왔을 때 죽을 것 같다는 생각과 감정 탓에 자율신경계가 과민 반응할 수 있지만, 정작 주요 장기 기능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불쾌한 느낌을 반사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이른바 ‘인지 오류’를 수정하고 작업한다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인지 치료에선 무엇보다도 확신과 긍정이 필요하다. 가벼운 신체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극심한 공포 반응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공포증을 주변 혹은 의사와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이다. 죽음과 같은 파국은 결코 오지 않는다고 생각으로 말로 되뇌어야 한다. 그 외에도 내담자 스스로 신체적 정신적 상태에 적합한 대응방식을 개발해 실행할 수 있다면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

체계적 탈감작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불안을 일으키는 대상 중 가장 약한 것에서부터 점차 강한 것까지 노출을 반복해 반응을 줄여나가는 방법이다. 자극에 대한 노출을 점진적으로 늘려나간다면 자극에 대한 저항력을 키울 수 있다.

방법이라면 다음과 같다. 처음엔 편안한 생각을 하면서 몸이 이완하는 방법을 익힌다. 몸 근육을 풀어주면서 편안한 마음의 상태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불안을 유발시키는 대상이나 상황을 생각하고, 단계별로 수준을 설정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 밖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현관 바로 앞까지, 같은 층 엘리베이터 앞까지, 아파트 건물 앞까지 등 단계를 정해 약한 수준으로 1단계, 2단계, 3단계를 설정한다.

단계를 설정할 땐 사람과 가장 적게 마주치는 편안한 시간으로 세심하고 꼼꼼하게 계획해 예상치 못한 자극에 노출될 가능성을 최소화한다. 가장 낮은 단계의 자극에 마주치는 경험을 하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가장 처음 실행했었던 이완 훈련을 하면서 편안한 마음 상태를 만든다. 

항불안 치료제 복용이 됐건 인지 치료, 체계적 탈감작이 됐건 개인이 받을 고통을 최소화하는 일이 핵심이다. 여러 모로 불쾌한 상황이 넘쳐나는 이번 여름 모두가 공포를 현명하게 이겨내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김상욱 샘정신건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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