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전문 헤드헌터의 채용 생존기 [HR인사이트]
초기 스타트업 관심도...경력 10년차 이상 높아
‘계단식 이동’ 활발...스타트업 채용 브랜딩 변해야
[김만규 유니코써치 매니저] 고시 생활을 청산하고 서른 하나라는 늦은 나이에 취업을 준비했다. 거진 5년 간 고시 공부를 했던 탓에 앞 길이 막막했다. 그러나 팬더믹 시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투자 호황으로 기업들 사이 채용 경쟁이 일어나면서 ‘고시공부로 다져진 무거운 엉덩이’라는 강점으로 헤드헌터로 빠르게 취업할 수 있었다.
투자가 성황이었던 만큼 고객사 대부분은 스타트업들이었다. 스타트업 채용이 마냥 쉬운 건 아니었다. 대기업 대비 채용 브랜딩 자체가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을 소개할 때 곱절로 공수가 들었다.
그래도 위안이 되었던 건 행여 인재를 놓칠까 좋은 인재를 추천하면 그 이후 전형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클로징 확률도 높다는 점이었다. 그 덕에 당시 IT 스타트업들을 메인 고객사로 둔 헤드헌터들도 고성과자들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미국의 금리 인상을 시작으로 거시경제가 변화함에 따라, 투자로 연명하던 스타트업들이 하나 둘 무너져 갔다. 고객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을 찾는다며 항상 먼저 연락이 왔던 고객사는 어느새 사라져 있거나, 연락을 하면 ‘요새 상황이 여의치 않다’라는 말뿐이었다.
설사 채용을 진행하는 곳이 있더라도 채용 기준이 현저히 달라져 있었다. 이전에 추천했더라면 단박에 모셔갔을 인재들도 서류에서 무더기로 탈락했다.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연차 대비 쌓아온 경험이 인상깊지 않다’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간신히 모든 전형을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처우협상에서 결렬되는 경우도 많았다.
초기 스타트업 고용인원 비중 40% 이상 차지
투자사가 더 이상 유저 유입량(User Acquisition) 보다는 실질적인 영업이익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스타트업들은 허리 띠를 졸라 멜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낮은 채용 브랜딩을 상쇄하던 ‘메리트 있는 보상’마저 제시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비단 기업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메리트 있는 보상마저 제시할 수 없으니 스타트업은 ‘일은 많고 월급은 적게 주는 기업’, 다시 말해 ‘낮은 질의 일자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스톡옵션 및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를 통해 팔았던 ‘장미빛 미래’마저 유니콘 기업들의 기업공개(IPO)가 차례차례 무산되면서 ‘휴지조각’으로 취급됐다.
‘스타트업은 인재 소싱이 어렵지만, 적합한 인재를 발굴만 하면 이후 전형이 빠르게 진행되고 클로징 확률도 높다’는 명제가 더 이상 참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필자를 포함한IT 스타트업을 고객사로 둔 헤드헌터들은 지나간 호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말라버린 우물을 마냥 바라만 볼 수 없었다. 활로를 찾아야만 했고, 마른 우물을 보다 깊게 파기로 했다. 이미 말라버린 우물을 더욱 깊게 판다고 하여 물이 나올까. 놀랍게도 쓸 수 없는 대부분의 우물은 대부분 얇게 파고 그 이상 파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말라버린 스타트업 채용 역시, 방법을 달리해 더욱 깊게 판다면 미처 보지 못한 물길을 발견할 수 있다.
IT 채용플랫폼 중 하나인 볼트엑스에서 최근 발행한 ‘2024 상반기 핵심인재 이직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스타트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10년 차 미만의 인재들’은 ‘10년 차 이상의 인재들’보다 오히려 안정성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차 이상부터는 스타트업, 특히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보였다.
같은 맥락으로 ‘연봉 7000만원 미만의 인재’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반면, ‘연봉 7000만원 이상의 인재’부터는 초기 스타트업과 같은 도전적인 환경을 보다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인재들의 이직선호도를 바탕으로 스타트업 전문 데이터베이스 플랫폼 The VC에서 발행한 ‘2024 스타트업 고용 현황 브리핑’을 보면 재미있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브리핑에 따르면 초기 라운드(시드~ 시리즈A), 중기 라운드(시리즈B ~ C), 후기 라운드(시리즈D ~)로 투자 라운드를 구분했을 때, 초기 라운드에 해당하는 기업들의 고용인원 비중이 40% 이상으로 가장 높았을 뿐만 아니라 점차 증가하는 중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초기 스타트업 일수록 고연차·고연봉의 인재를 타깃으로 소싱을 했을 때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단, 고연차·고연봉의 인재만으로 조직을 구성하는 것은 재무적 부담과 함께 실무진의 부재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조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건강한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서라도 스타트업은 저연차·저연봉의 인재를 반드시 확보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스타트업들은 어떻게 저연차·저연봉의 인재를 확보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채용 트렌드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구직자들의 니즈를 수용해야만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간한 ‘공채의 종말과 노동시장의 변화’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공채 문화가 사라지고 수시 채용이 보편화됨에 따라 중소기업 근로자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 근로자가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계단식 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따라서 스타트업은 지금 뽑는 인재가 언젠가는 보다 큰 기업으로 이직할 것임을 인정하고, 채용 브랜딩을 달리 해야만 한다. ‘가족 같은 분위기, 최고의 복지는 동료’라는 장기 근속을 유도하는 것보다 ‘이직 시 유리한 커리어를 약속하는 것’이 보다 매력적이다.
또한 ‘2024 상반기 핵심인재 이직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저연봉·저연차의 인재들이 ‘재택근무 환경’과 ‘재무건전성’을 필수 조건으로 꼽은 만큼 이를 고려한 업무 환경 조성과 경영이 필요하다.
실례로 필자의 스타트업 고객사 중 하나는 실무형 리더를 타겟으로 채용을 진행할 뿐만 아니라, 채용 브랜딩 차원에서 해당 포지션에서 근무하면 쌓을 수 있는 ‘커리어 경로’를 제시하고 있으며, 자율출퇴근 및 전면 재택근무제도 등을 도입하여 업무환경을 개선함에 따라 대기업 못지 않게 모집 인원을 확보하고 있다.
결국 거시경제의 변화에 따라 말라버린 스타트업 채용 씬에서 헤드헌터들이 스타트업과 공생하기 위해서는 스타트업들이 ‘계단식 이동’이라는 변화된 채용 흐름을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 한 편, 연차 및 연봉 별로 유연한 채용 전략을 마련할 수 있도록 컨설팅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물이 마르면 곧장 떠나버리는 나그네가 아니라, 스타트업과 함께 우물을 파는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김만규 유니코써치 매니저는_국내 대표 헤드헌팅 기업 유니코써치의 IT 전문 컨설턴트로서 국내외 ICT 및 솔루션, 게임, O2O 플랫폼 기업들을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 산업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와 전문지식을 기반으로 IT 직군 내에서도 신사업 기획 및 서비스 기획(PM/PO), 개발 분야 채용 프로젝트에서 다수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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