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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중개사가 사기 치면 누구를 믿고 부동산 거래하나”

[신뢰 잃은 공인중개사①]
전세사기 가담·초과 보수·허위 설명 등
4억원 한도 부동산 공제보험도 못 믿어

지난 6월 서울 마포구 신촌 대학가 일대에서 열린 신촌·구로·병점 100억대 전세 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인 스무살 청년이 눈물을 흘리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전세사기 문제가 터진 이후 ‘공인중개사 불신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공인중개사를 통해 전월세 또는 주택 매매 거래를 진행하는데, 일부 공인중개사가 전세사기에 직‧간접으로 가담한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2일 2000억원이 넘는 규모의 전세사기를 벌인 혐의를 받는 부동산컨설팅업체 대표 A씨와 그 일당에 대해 1심 선고가 내려졌다. 법원은 사기 혐의로 A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2020년 1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수도권 일대에서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오피스텔과 빌라 928채를 사들인 뒤 전세 보증금 2434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주목할 점은 이 전세사기에 공인중개사가 개입됐다는 것이다. 전세사기 일당과 피해자의 계약 과정에서 과다한 수수료를 챙기는 등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공인중개사 7명에게는 각각 290만~12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검찰은 전세보증금 일부가 공인중개사 리베이트 등에 쓰인 것으로 판단했다.

공인중개사의 위법 문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경기도는 지난 5월 수원의 한 전세사기 가담이 의심되는 공인중개업소 28곳을 조사해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 47명을 공인중개사법 등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공인중개사법에서 금지하는 중개보수 초과 수수, 중개대상물 허위 설명, 공인중개사 자격 대여 등의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주요 사례를 보면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들이 임대인에게 법정 중개보수보다 높은 수수료를 받아 나눠 갖거나, 근저당을 실제보다 낮춰 설명한 뒤 거래를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또 건물 취득가보다 비싸게 임대차 보증금을 책정하고 임차인을 속인 뒤 무자본 갭투자를 동시 진행하는 방식 등 세입자를 속인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40대 A씨는 “최근 이사를 앞두고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앞으로 (공인중개사를) 어떻게 믿고 부동산 거래를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자금 사정이 팍팍해 빌라나 오피스텔 위주로 전세를 알아봤다는 그는 “시세가 정확하지 않아 공인중개사 말을 믿거나 주변 주택 가격을 보고 짐작해야 하는데 차라리 무리해서라도 아파트에 들어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전세사기와 공인중개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비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주택시장에서는 전세 기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전국 오피스텔의 월별 전월세 전환율은 3개월 연속 6.11%를 기록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8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40㎡ 이하 오피스텔의 경우 지난 5월 기준 전월세 전환율은 6.21%를 기록하며 평균을 웃돌았다. 40㎡ 초과 60㎡ 이하 오피스텔은 5.69%, 60㎡ 초과 85㎡ 이하는 5.63%, 85㎡ 초과는 5.17% 수준이었다. 상대적으로 전용면적이 작고 세 부담이 적은 1인 가구용 주택에서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난 셈이다.

부동산정보 플랫폼 다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바탕으로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전국 오피스텔 전월세 거래 10만5978건을 분석한 결과, 월세 거래량이 66%(6만9626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62%)보다 4%포인트 늘었다.

이런 현상은 빌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부동산 정보제공 업체 경제만랩이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1분기(1~3월) 수도권의 소형(전용면적 60㎡ 이하) 빌라 거래에서 월세 거래량은 2만7510건으로 54.1% 수준이었다. 역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사진은 이날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에 다세대, 빌라들이 밀집한 주택가 모습. [사진 연합뉴스]

못 믿을 부동산 공제보험, HUG 전세보험도 글쎄 

공인중개사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는 이유는 또 있다. 주택을 거래할 때 공인중개사 보여주는 ‘공제보험’이 전세사기가 발생할 경우 사실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제보험이란 공인중개사 잘못으로 주택 거래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공인중개사협회나 보증보험회사에서 피해자에게 돈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개인 공인중개사는 최소 1억원, 법인은 2억원 이상 한도로 의무 가입해야 했는데, 지난해부터 이 한도를 두 배로 늘렸다. 이를 알리기 위해 공인중개사사무소(부동산) 입구에는 ‘2억원 손해배상책임보증’이라는 스티커를 붙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공제보험이 전세사기 앞에선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대개 부동산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한도금액을 해당 계약에 대한 보험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전월세 보증금이 2억원 미만인 경우 걱정 없이 계약에 임한다. 하지만 이 보험은 계약 건당 한도액이 아니라 1년간 중개업소에서 발생한 책임 배상의 한도액으로 봐야 한다. 만약 2억원 손해배상책임보증에 가입한 부동산에서 올해 보증금 2억원 규모의 전세사기 10건이 발생했다면 20명이 2억원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보험한도액은 2억원이지만, 피해자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은 2000만원에 불과하다. 피해자가 늘면 그 금액은 더 줄어들 수 있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에서 오피스텔 전세 계약을 마친 B씨는 “부동산에서 ‘우리는 4억원 한도의 보험에 가입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만 했다”며 “여러 사고가 한꺼번에 터졌을 때 내가 받을 수 있는 보상이 이보다 적을 수 있다는 설명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실을 알고 전세보증보험에 따로 가입했다”고 했다.

하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HUG가 임대인이 제출한 허위서류로 보증계약을 맺었다가 보증계약을 일괄 취소했는데, 법원이 보증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2부(서근찬 부장판사)는 부산 수영구 전세사기 피해자 A씨 등 5명이 HUG를 상대로 제기한 보증채무 이행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허위 조건으로 체결된 보증계약까지 HUG가 보증금 지급 책임을 부담한다면 HUG가 거의 무조건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결과라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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