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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안에서 코 위로 이동한 컴퓨터…AR 안경 ‘오리온’ 쓴 저커버그 [한세희 테크&라이프]

‘일개 앱’ 비하 받던 메타의 설움, AR 안경으로 새 시장 선점 포부
MR 기기-AI 연계에 거는 기대…스마트폰 잇는 차세대 컴퓨팅 기기?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9월 열린 개발자 행사 ‘커넥트(Connect) 2024’에서 증강현실(AR) 안경 ‘오리온’을 공개한 후 직접 착용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당신은 이 안경을 쓰겠습니까? 두껍고 투박하지만 유용한 디지털 정보나 게임이 렌즈에 비친다면?

지난 9월 열린 메타의 개발자 행사 ‘커넥트(Connect) 2024’에서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증강현실(AR) 안경 ‘오리온’을 쓰고 나타났다. 메타가 오랫동안 개발해 온 스마트 안경이다.

렌즈 너머 사물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영상 통화를 하고 유튜브를 볼 수도 있다. 테가 전체적으로 매우 두껍기는 하지만 못 봐 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안경을 쓸까? 이 안경은 개인용 디지털 기기의 새 장을 열 수 있을까? 메타는 모바일 시장을 지배하는 애플과 구글에 당한 설움을 새 시장에서 털어낼 수 있을까?

혼합현실은 차세대 컴퓨팅?

PC 시대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나왔고, 스마트폰 시대는 애플을 낳았다. 인터넷은 PC나 스마트폰 같은 개인화된 컴퓨팅 기기들을 거미줄처럼 엮으며 가치를 더했고, 이 흐름을 타고 구글·메타·아마존이 탄생했다. 컴퓨팅 환경의 변화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장, 새로운 주인공을 만든다.

스마트폰 시장의 승자와 패자가 거의 결정되고 시장 구도가 굳어진 지금, 다음 세상의 컴퓨팅을 노리는 시도들은 이미 활발하다. ‘모바일 이후’의 개인화된 컴퓨팅 기기는 과연 무엇이 될까?

차세대 컴퓨터 시장을 두고 태블릿·스마트 워치·가상현실(VR) 헤드셋·AR 안경·스마트 반지 등 다양한 시도가 쏟아져 나왔다. 아직 기술적으로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고, 사회가 잘 수용할지도 미지수이긴 하지만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는 실제 세계와 디지털 정보를 함께 보여주는 혼합현실(MR) 기기이다. VR 헤드셋이나 AR 안경이 여기에 해당한다.

메타는 2014년 VR 헤드셋 기업 오큘러스를 인수하며 일찌감치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메타는 VR·AR·메타버스 등의 사업을 담당하는 리얼리티 랩스 부문에서 누적 500억 달러의 손실을 보면서도 VR 시리즈 ‘퀘스트’나 ‘레이반’과 제휴해 만든 스마트 선글라스 등을 내놓고 있다. 메타버스 관련 기술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애플은 올해 초 수년간 개발해 온 혼합현실 헤드셋 ‘비전 프로’를 출시해 판매에 나섰다. 구글은 2012년 스마트 안경 개념을 처음 선보였고, 이후 부침을 겪으면서도 혼합현실 기기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왜 AR 안경인가?

하지만 현재 시장에는 헤드셋 형태 기기만 있고, AR 안경은 찾아볼 수 없다. 비전 프로나 퀘스트 같은 헤드셋 기기는 눈을 완전히 덮은 상태로 머리에 쓰는 모양새다. 메타버스라는 말을 들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생각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헤드셋 기기는 디지털 환경에 몰입되는 경험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도 명확하다. 이런 헤드셋을 끼고 외출하거나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는 어렵다. 헤드셋 디스플레이에 여러 창을 크게 띄워 두고 업무를 처리하거나 디즈니플러스 영상을 실감 나게 볼 수는 있다. 생생한 영상 통화 기능으로 멀리서 사는 가족과 눈앞에 마주한 듯 대화할 수 있지만, 물리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과는 더 멀어질 것이다. 오래 쓰고 있으면 불편하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안경은 뚜렷한 장점이 있다. 인류는 수백 년 이상 안경을 써 왔고, 지금도 40억 명이 안경을 쓰고 있다. 안경은 가장 부담 없이 오랜 시간 지니고 다닐 수 있는 물건 중 하나다. 안경 쓴 모습은 VR 헤드셋을 쓴 것보다 주변 사람들도 받아들이기 편하다.

하지만 안경이라는 작은 물건에 생생한 디스플레이를 구현하고, 연산을 처리하고 앱을 구동할 회로와 배터리를 넣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구글이 한동안 AR 안경 개발을 접은 것도 이유가 있다. 메타 레이반 선글라스는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간단한 기능만 있다.
메타가 공개한 ‘오리온’은 증강현실(AR) 안경·손목 밴드와 ‘퍽’이라고 불리는 무선 컴퓨터로 구성된다. [사진 메타]

안경에 결집한 메타의 차세대 컴퓨팅 야망

이런 가운데 메타가 처음으로 AR 안경 ‘오리온’을 공개했다. 눈앞에 놓인 식재료들을 보고 AI가 레시피를 추천하거나, 문자메시지나 할 일 알림을 렌즈에 구현된 디스플레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간단한 게임도 가능하다. 시야각은 70도로 보통 VR 헤드셋보다는 작은 편이지만, 큰 차이를 만들지는 않는 듯 보인다. 무게는 100g 정도다.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듯 손가락을 움직여 기기를 조작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팔목에 차는 특수한 팔찌가 필요하다. 메타는 뇌와 근육 신경의 전기 신호를 읽어 기기를 조작하는 기술을 연구했는데, 이번에 AR 안경에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복잡한 연산을 처리하기 위해 작은 휴대전화 크기의 ‘퍽’이라는 별도 기기도 필요하다.

제법 괜찮은 AR 안경이 처음 세상에 나왔다 볼 수 있지만, 함정은 이것이 아직 시제품이고 상용 제품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다만 AR 안경이 실현 가능하다는 점, 기술적으로 근접했음을 보여줌으로써 시장 주도권을 잡고 개발자나 협력 기업들의 관심을 미리 확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메타의 MR 기기와 인공지능(AI)의 연계다. 오리온은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화면에 띄우거나 눈앞의 사물에 대해 AI가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기능을 가졌다. 레이반 선글라스는 AI 통역 기능을 새로 선보였다. 현재 PC나 스마트폰은 인터넷을 아교로 삼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여기에 AI가 더해져 더 큰 가치를 만들 것이다.

지금 메타는 AR 안경이나 VR 헤드셋 기기와 그 운용체계(OS)·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더할 AI 기술도 개발해 오픈소스로 풀며 우군을 만들고 있다. 차세대 컴퓨팅 시대엔 스마트폰의 하드웨어와 OS, 유통을 장악한 애플·구글에 ‘일개 앱’ 취급을 받은 설움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스마트폰을 잇는 차세대 컴퓨팅 기기의 시대는 아직 꽤 오래 기다려야 할 전망이다. 하지만 아이폰이나 챗GPT가 그랬듯,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바꿀 폭풍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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