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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스타트업 생존하려면…테스트베드 역할 해줄 지역 기업이 필수[이코노 인터뷰]

2025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말하다
고병철 포스텍홀딩스 대표·심희택 휴비즈ICT 대표·한원일 티센바이오팜 대표 대담
규제 샌드박스 등 활발해져야…스타트업 서비스·제품 인허가 허들 여전히 높아
2025년에도 어려움 이어질 것…”자신만의 에지(edge) 있어야 생존 가능”

넥스윌·레신저스·스퀴즈비츠·아이제스트·에이치에너지·이뮤노바이옴·인투스·캐럿펀트·티센바이오팜·휴비즈ICT. 포항공과대학(포스텍)과 포스텍홀딩스가 추천한 딥테크 스타트업들이다. 본지는 이들 스타트업 창업가 10명을 인터뷰했다. 인터뷰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투자사인 포스텍홀딩스의 고병철 대표와 포항을 본거지로 하는 스타트업 창업가 심희택 휴비즈ICT 대표·한원일 티센바이오팜 대표를 한자리에 모았다. 투자사와 창업가의 만남을 통해 지역 스타트업의 생존 방식과 한국 스타트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주>

(왼쪽부터)한원일 티센바이오팜 대표, 고병철 포스텍홀딩스 대표, 심희택 휴비즈ICT 대표.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포스텍홀딩스는 흔히 말하는 벤처·스타트업 투자사인 벤처캐피탈(VC)이나 액셀러레이터 등과 결이 다르다. 포스텍홀딩스나 서울대기술지주 등을 대학기술지주회사라고 부른다. 대학기술지주사의 역할은 대학 또는 연구기관이 보유한 기술을 투자와 보육을 통해 사업화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한양대 기술지주를 시작으로 1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해 2024년 10월 현재 80여 곳이 활동하고 있다. 

대학기술지주가 투자하거나 설립하는 스타트업은 대부분 딥테크 기업이다. 기업과 소비자 거래(B2C) 기업보다 기업과 기업간의 거래(B2B) 기업이 많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포스텍과 포스텍홀딩스가 추천한 기업들도 대부분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딥테크 기업들이다.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는 배달의민족이나 야놀자 같은 서비스 기업이 드문 이유다. 고병철 포스텍홀딩스 대표는 “포스텍은 공과대이고, 종합대학의 기술지주 포트폴리오가 훨씬 다양할 것”이라며 “포스텍이나 포스텍홀딩스가 투자하거나 육성하는 포트폴리오가 대부분 기술 베이스 스타트업인 이유다”고 설명했다. 투자사 대표와 스타트업 창업가는 포항이라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의 어려움과 장점 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Q 투자 유치나 인력 채용 면에서 지역에 본거지를 둔 스타트업은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가 많다. 심희택 대표와 한원일 대표 모두 포항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데, 일하는 것이 어렵지 않나. 

심희택 대표 : 나는 포스코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창업 이후 지역에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준다. 수도권에서 일하는 게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지만 지역은 또 지역 기업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많이 받는 게 장점인 것 같다. 다만 투자 유치나 인력 채용은 지역 스타트업이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다. 

한원일 대표 : 포스텍 대학원을 나왔고 포스텍 교수님들의 지도를 받은 경력은 내가 창업하고 투자를 받는 데 큰 장점이 됐다. 동문 선배들이 스타트업 생태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게 장점인 것 같다. 

고병철 대표 : 지역 스타트업은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포스텍을 중심으로 한 포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동질감이 있는 것 같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움을 주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게 포항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심희택 대표 : 포항이라는 지역적인 한계가 있지만 20년 넘게 포항에서 생존할 수 있던 것도 포항이라는 지역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2014년 디지털 트윈 기업을 인수한 후 수십억원을 투자하면서도 버틸 수 있던 것은 포스코가 지역 스타트업과 손을 잡고 기꺼이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또한 포항에 있는 포스텍과 포항산업과학연구원 등으로부터 기술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스타트업이 생존하는 데 큰 힘이 됐다. 투자를 잘 받고 좋은 인재를 잘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타트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고병철 포스텍홀딩스 대표 [사진 신인섭 기자]

발문 "투자 분야에서 아쉬운 것은 펀드 구조상 VC들이 시리즈 B·C 등에 집중하는 것 같다. 안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이 외면당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한원일 대표 : 지역적인 한계 때문에 어렵지 않다. 인재 채용이나 투자 유치 등의 한계는 있지만, 티센바이오팜이 인지도를 쌓고 성장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포스텍의 지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고병철 대표 : 지역 네트워크는 그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의 동질성을 높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포스텍은 한해 입학생이 360명으로 작기 때문에 서로 잘 안다. 네트워크가 상당히 탄탄한 것이다. 포항에 있는 스타트업은 포스텍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한원일 대표 : 포항을 넘어 지역의 스타트업이 뭔가를 진행하는 데 돌파구를 만들려면 학교나 기업이 연결되어야 한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도 도움을 줘야 한다. 이렇게 서로 잘 맞물려야만 지역 스타트업이 생존할 수 있는 클러스터가 만들어진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창업하겠다고 30대 초반에 결정했고 포스텍 학생 창업팀으로 창업했다. 스타트업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았는데, 포스텍에 있는 멘토 제도 덕분에 어느 순간에 성장하게 됐다. 지역 스타트업이 초기에 잘 정착하려면 학교나 기업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포스텍은 지역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을 잘하고 있다. 

심희택 대표 : 지역 스타트업이건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이건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게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실증 사례다. 포스코는 그런 면에서 열려 있는 기업이다. 포스코는 외부 기업과 협업을 적극적으로 하는데 스타트업에 큰 힘이 된다. 지역 기업들은 오픈 이노베이션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희택 휴비즈ICT 대표는 포스코 현장에서 일하다 1999년 휴비즈ICT를 창업했다. 처음에는 포스코의 협력업체로 인력소싱을 주로 했지만 2014년 포항에서 활동하던 디지털 트윈 업체를 인수하면서 테크 스타트업으로 변모했다. 포스코기술지주는 2억원의 시드머니를 휴비즈ICT에 투자했고 포스코는 기꺼이 휴비즈ICT의 기술을 실증할 수 있는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해줬다. 심 대표는 “포스코라는 포항의 대표적인 기업이 없었다면 10여 년 넘게 적자를 감수하면서 기술개발에 투자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한원일 티센바이오팜 대표는 동물 세포를 배양해 고기를 만드는 배양육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포스텍에서 인공장기를 연구하다가 배양육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티센바이오팜을 창업했다. 창업 2년 만에 77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할 만큼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후속 투자가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 역시 바이오 관련 분야에 대한 지원을 줄이면서 한 대표는 대중화와 기술개발이 아닌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한 대표는 “정부의 지원 정책이 스타트업 생태계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희택 휴비즈ICT 대표 [사진 신인섭 기자]

발문 "투자 시장이 얼어 있지만, 정부는 창업가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창업가가 실패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런 것들이 빠르게 순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좋을 것 같다."


Q 스타트업 성장을 위한 정부의 지원과 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 올해 R&D와 모태펀드 규모가 작아져서 대학뿐만 아니라 스타트업도 아주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고병철 대표 : 미국 스타트업의 역사는 반도체 역사와 같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페어차일드 반도체가 창업하고 거기서 또 인텔이 탄생하고 이와 함께 VC가 생겨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초기 미국 VC는 예일대나 스탠퍼드대 등의 대학 재단의 운용 자금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한국과 다른 점이다. 한국 대학의 투자 규모가 커지려면 대기업의 참여가 필수다. 기업이 대학의 창업생태계에 투자할 때 세금혜택 등이 있으면 좀 더 활발해질 것이다. 

한원일 대표 : 한때는 바이오 스타트업에 투자가 잘 이뤄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투자를 받기가 무척 어려워졌다. 현재 투자 분야에서 ‘혁신’은 미래의 높은 가치보다는 주로 리스크와 실패 가능성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아슬아슬하게 혁신과 생존의 줄타기를 한다. 여태 그 균형을 잡아 주었던 자금 수주에 큰 문제가 생겼다고 본다. 투자가 어려우면 정부에서 신용보증이나 기술보증의 규모를 늘려주는 등 자금 확보의 기회를 확대하여, 어느정도 균형을 잡을 기회를 주면 좋겠다. 투자 시장 상황에 따라 정부 대출도 달라지는 것도 문제다. 또한 딥테크 스타트업이 기술과 서비스를 시장에 테스트할 수 있는 지원 제도가 있어야 한다. 스타트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로 인허가를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심희택 대표 : 규제 샌드박스나 규제자유특구 등을 좀 더 활발하게 운영했으면 한다. 한국에서 스타트업의 서비스나 제품이 인허가를 받는 게 너무 오래 걸린다. 스타트업처럼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기업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기가 너무 어렵다. 투자 시장이 얼어 있지만, 정부는 창업가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창업가가 실패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런 것들이 빠르게 순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좋을 것 같다. 

고병철 대표 :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제 지원을 받아서 성장하는 단계는 지난 것 같다. 정부는 지원 대신 스타트업이 여러가지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스타트업 시장의 한계는 투자자금의 40~50%가 국가에서 나오는 세금이라는 것이다. 투자사나 창업가가 모태펀드를 운용하면 펀드의 만기를 정하고 또 만기 내에서 어떻게든 회수해야만 하는 구조다. 창업 후 엑시트까지 보통 13년 정도 걸리는 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펀드의 실질 투자 기간은 4~5년에 불과하다.

한원일 대표 : 투자 펀드의 운용 기간을 늘리는 것에 공감한다. 펀드 운용 기간이 짧아서 투자사도 매출에 신경을 쓰게 된다. 이 때문에 바이오 기업이 화장품이나 진단 키트 같은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장은 거의 포화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티센바이오팜도 그런 것을 해야 하나 싶다. 지금으로서는 그런 선택을 하라고 시장이 굉장히 압박을 주고 있다.

심희택 대표 : 한국 정부는 선진국 진입하는 과도기처럼 보인다. 스타트업 지원 예산을 비전문가들이 결정하는데 아직 스타트업 생태계를 면밀하게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생태계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고병철 대표 : 지난해부터 스타트업 생태계가 어려웠다. 수치만 봐도 어려운 게 보인다. 투자 분야에서 아쉬운 것은 펀드 구조상 VC들이 시리즈 B·C 등에 집중하는 것 같다. 안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리얼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이 외면당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한원일 대표 : 맞다. 티센바이오팜처럼 초기 스타트업에 대해서 정부나 기관이 조금 더 인정했으면 한다. 

한원일 티센바이오팜 대표 [사진 신인섭 기자] 

발문 "한때는 바이오 스타트업에 투자가 잘 이뤄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투자를 받기 어려워졌다. 정부도 투자 이후 엑시트를 생각하니까 그런 것 같다. 정부의 모태펀드로 투자하기 어렵다고 하면 신용보증이나 기술보증의 규모를 늘려줘야 한다."

Q. 2025년을 조망했으면 한다. 2023년 하반기부터 올해 무척 힘들었다. 내년에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나아질 것으로 예상하나. 

한원일 대표 : 올해는 초기 스타트업들이 중요한 선택을 해야 했던 시기다. 고민이 많았다. 2023년에는 2024년에 대한 희망이 있었는데, 내년을 생각하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환경이 좋지 않으니 규모를 더 줄인다거나 선택과 집중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생존 전략을 짜야 할 때라고 본다. 내년에도 창업가들은 결정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체질을 바꿔라”라는 이야기를 올해 가장 많이 들었다. 우리가 지키고 싶은 가치를 지키면서 숫자를 만들 수 있는지 고민이다. 

고병철 대표 : 매년 전망을 잘하지 않는 편이다. 고민하는 것은 포스텍홀딩스의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느냐와 우리의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밸류업 하느냐다. 올해보다 내년에 더 나아지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심희택 대표 : 고 대표의 말대로 내년이 좋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창업가들은 어떤 상황이 와도 생존해야 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한다. 내년에는 좋아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고병철 대표 : 시기와 상관없이 스타트업은 자신만의 ‘에지(edge)’가 있어야 인정받을 것이다. 

Q 올해 인공지능(AI)이 중심이었다. 내년에도 이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나. 

고병철 대표 : 그런 트렌드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포스텍홀딩스가 초기 투자에 집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시장은 규모가 작다. 미국의 경우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심사역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한 분야만 집중하면 1년 내내 투자를 못 할 수도 있다. 투자나 창업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효과적이지 않다. 그리고 올해 관심을 받았던 분야가 내년에도 큰 관심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관심을 받았던 분야는 점점 관심 밖으로 밀려갈 것이라고 본다. AI도 당연히 관심에서 제외될 수 있다. 이제 AI 분야는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기업이 전체 시장을 다 먹는 분야가 됐다. AI 분야에서는 이제 2, 3등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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