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도시’의 운명…성장과 쇠퇴 그리고 도전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중소도시의 새로운 기회가 한국에도 올까②
스웨덴의 제2도시 예테보리에서 배운다
韓 제2도시 부산, 위기와 대응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전 국회의원] 도시의 규모 분포를 설명하는 이론 중에 ‘순위-규모 법칙(Rank-Size Rule)’이 있다. 이는 도시의 인구규모가 도시의 순위에 반비례한다는 개념이다. 도시 인구뿐만 아니라 단어 사용빈도, 경제적 분포 등 여러 사회현상에도 적용된다.(Zipf’s Law라고도 한다) 도시 분포의 경우 국가의 산업이나 발전상태, 정치시스템 등의 다양한 변수 때문에 이 법칙을 모두 적용할 수는 없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제외한 비교적 많은 국가에서 제1도시와 제2도시간에 이 법칙이 유효하다는 평가다.
이 법칙은 제2의 도시의 인구가 제1도시 인구의 1/2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도 80년대 초반까지는 이 법칙이 작동했다. 당시 제2의 도시였던 부산의 인구가 서울의 절반 정도였다. 그러나 경제가 고도화되고 서울 및 수도권으로 인구 집중이 심화하면서 이 법칙은 깨지고 만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제1도시가 압도적으로 많은 인구와 큰 경제력을 가지는 초집중형 모델인 종주도시 이론(Primate City Theory)의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제1도시는 수도이다. 그리고 제2도시는 해안을 낀 산업과 교역 기능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지리적 여건으로 물류의 거점이거나 제조의 거점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문제는 산업구조가 변화하고 경쟁국가의 생산성이 더 높아지면 한 국가의 경제중심지였던 제2도시는 쇠퇴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실제로 거의 모든 제2의 도시들이 이런 위기를 겪었거나 위기에 처해있다. 1990년대 한국과 일본의 성장으로 위기를 겪었던 유럽과 미국의 주요 제조업 중심 도시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중국의 부상으로 우리나라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특히 저출생과 고령화가 함께 진행되면서 그 해법을 찾는 것이 과거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쇠퇴 위기를 혁신과 변화의 기회로 삼은 도시들은 주력산업을 내주고도 새로운 경쟁력으로 제2의 도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그렇지 못한 도시들은 제2도의 도시 지위를 다른 도시들에게 넘겨주기도 한다. 과연 제2도시들의 생존전략을 무엇이었을까
스웨덴의 제2도시 예테보리의 생존전략
스웨덴은 북유럽국가 중 가장 많은 인구(1050만, 2023년 기준)를 가진 나라이다. 제1도시는 수도인 스톡홀롬(인구 100만명)이며 제2의 도시가 바로 예테보리(G teborg, 인구 60만명)이다. 위에서 언급한 순위-규모 이론에 근접하고 있다. 예테보리는 스웨덴 서부 해안에 위치해 있다. 자동차‧조선업을 기반으로 한 물류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1970~80년대를 거치며 유럽의 자동차 산업과 조선업은 모두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말뫼의 눈물’은 스웨덴의 조선업 쇠퇴가 얼마나 도시경제에 타격을 주었는지 알 수 있는 유명한 일화이기도 하다. 실제 이 당시 유럽은 높은 실업율로 위기를 겪었는데 이 위기를 극복한 도시들은 모두 산업 및 경제구조의 재편과 산업다변화, 환경친화를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한 도시로의 변모에 성공한 경우이다. 예테보리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예테보리가 전통적인 조선업과 제조업 중심의 도시에서 첨단기술과 지속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산업구조로 전환하는데 성공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약점에 매몰되지 않고 강점을 극대화한 정부와 민간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조선업 불황과 글로벌 경쟁심화는 유럽과 미국의 주요 도시에 많은 타격을 줬다. 그러나 예테보리가 북유럽 최대의 항구도시라는 지리적 잇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즉 스칸디나비아와 유럽대륙을 연결하는 무역 중심지로의 역할이 여전히 유효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테보리는 지리적 잇점을 활용해 산업을 고도화하고 문화와 관광 등의 서비스 산업성장의 지렛대로 삼았다. 자동차 제조 대신 자동차의 첨단기술(전기차로의 신속한 전환, 배터리 산업, 자율주행, 커넥티드 카 등)로 부가가치를 높였으며 문화와 관광을 자산으로는 하는 서비스 산업을 확대했다.
찰머스 공과대학과 예테보리 대학교 등 세계적 연구기관들이 혁신기술을 지원한 덕도 컸다. 스웨덴 정부와 예테보리 시는 단기간의 성과보다는 장기적 안목과 계획으로 이러한 일들을 꾸준히 추진해 나갔다. 마침 EU가 심혈을 기울였던 지속가능도시 및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수혜를 받아 많은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예테보리가 받을 수 있었던 점도 있다. 친환경 정책과 지속가능성을 도시 전략 중심에 두고 ▲신재생 에너지 ▲전기차 ▲스마트 시티 기술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산업구조 재편에 따른 고용프로그램의 개편과 재교육 기회 증대, 스타트업 육성 등 신생기업 지원에도 많은 정책과 예산이 투입됐다. 특히 연구기관과 기업간의 협력모델을 강화하여 연구와 산업이 융합되도록 했다.
관광산업을 고도화시킨 점도 주목해볼 지점이다. 예테보리는 ▲예술 ▲음악 ▲요리 ▲디자인 등 문화적 요소를 강화해 다양한 국제행사를 유치하거나 개최하고 도시의 브랜드를 강화했다. 최근 MICE 산업이 성장하는 도시 중 예테보리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런 꾸준한 노력의 성과라고도 볼 수 있다.
부산의 위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부산이 서울과 인구격차가 순위-규모 법칙을 벗어난 지는 꽤나 오래됐다. 1988년 서울 인구가 1000만명을 달성했을 때 부산의 인구는 390만명으로 서울과의 격차도 더 커졌지만 이미 인구가 정점(peak)을 지난 상황이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은 인천과 인구수 차이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만약 지금처럼 수도권 집중현상이 이어지면 우리나라의 제2도시는 바뀔수도 있다. 비단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의 인구감소 원인에는 저출생도 있지만 청년층들의 이탈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바로 산업구조 재편에 기술지원과 전문인력 양성을 담당해야 할 지방대학의 위기로도 이어지고 있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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