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통과되면 경영 불안정 확대·투자 위축 초래할 것”
[상법개정안 논란]⑤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 팀장
감사위원 분리 선임, 경영권 위협에 악용될 가능성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재계에서는 경영 불안정과 부담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상법 개정안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어 이대로 통과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유정주 팀장이 가장 우려하는 내용 중 하나는 ‘이사 충실 의무’를 주주까지 확대하는 내용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법 382조 3을 보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회사의 이익에 더해 주주까지 포함하자는 것이다.
유 팀장은 이 법이 통과되면 주주들의 개별 소송이 증가할 수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투자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많고, 확실한 이익을 장담하기 어려운데 만약 손실이 발생해 주주들이 소송하면 기업과 이사진들은 이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 팀장은 “이런 문제 때문에 이사들은 배임죄 등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주라는 개념이 단일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주주들의 구성을 보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일반 소액주주 ▲행동주의 펀드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그런데 상법 개정안을 보면 어떤 주주의 이익에 충실해야 할지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유 팀장은 “상법 개정안이 현실화할 경우 주주가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고, 이는 이사들의 의사 결정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기업의 장기적 투자는 물론, 인수합병(M&A) 같은 대규모 경영 전략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감사위원 분리 선임과 집중투표제 확대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유 팀장은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외국계 투자자와 행동주의 펀드에 의한 경영권 위협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감사위원 분리 선임은 감사위원을 이사와 분리해 별도로 선임하는 제도를 말한다. 중요한 것은 감사위원을 선출 하는 방식인데, 상법에 따라 3%룰을 적용한다. 특정 주주(대주주)의 의결권이 전체 발행 주식의 3%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A 기업의 주식을 30% 이상 보유한 주주와 3%를 보유한 주주 모두 3%까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팀장은 “이미 한국 대기업들은 외국인 지분율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위원 분리 선임이 도입되면, 외부 세력이 감사위원회를 통해 경영권에 개입할 여지가 커질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에게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유 팀장은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에 충분히 동의한다”면서도 “소액주주 보호는 상법 개정이 아니라 자본시장법 등 기존 법률의 개선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물적 분할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합병 비율 산정 방식 등의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지, 이사 충실 의무를 확대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해외에서도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임 같은 제도를 의무화한 국가는 거의 없다. 상법 개정안이 기업의 투명성과 소액주주 보호를 목표로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업 경영 환경에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지만, 이는 기업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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