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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 위기…대학은 지역을 다시 살릴 수 있을까[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중소도시의 새로운 기회가 한국에도 올까④
대학의 ‘제3의 소명’에서 해답 찾아야
日 ‘교토-대학센터’, 프랑스 ‘학술상점’ 주목

서울대학교 정문 모습.[사진 연합뉴스]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전 국회의원] 대학을 상아탑(象牙塔, Ivory Tower)이라고 부르던 시기가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1960~80년대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대학이 학문과 사상,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공간으로 인식됐다. ‘진리의 상아탑’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점점 대학이라는 존재가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도피의 성격이 강조된 상아탑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산업과 노동의 생태계를 뒤흔드는 시대, 대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1990년대 초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대학의 역할이 변화하고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기업가적 대학(Entrepreneurial University)’은 그런 고민의 결과로 등장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는 순수 학문도 중요하지만 학문 중점 연구에서 탈피해 연구의 성과가 상업화(특허, 제품 및 공정혁신)로 연결되고 사회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실용적 교육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프랑스의 소피아앙티폴리스 등과 같이 첨단산업클러스터의 성장을 경험한 지역의 중심에는 늘 경쟁력을 갖춘 기업가적 대학이 있었다. 물론 대학이 천박한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학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와 기술에 중점을 둔다는 것에 더 많은 기대와 지지가 생겼다. 이제는 대학이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지역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유럽 대학들은 지역사회와 연계된 ‘대학의 사명’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 대학들은 지역 혁신 시스템의 핵심 주체로 지역의 경제적 가치 창출을 대학의 제3소명이라고 본 것이다. EU차원의 다양한 공모사업이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주제로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EU는 구조기금을 통해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 대학들이 지역혁신체계(RIS)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일본 ‘교토-대학센터’·프랑스 ‘학술상점’  

대학의 도시, 학생의 도시로 불려왔던 일본 교토시(京都市)는 1994년부터 일본 최초로 지방자체단체-대학 연계조직인 ‘교토-대학센터’를 설립했다. 2010년부터는 별도의 재단법인으로까지 성장했다. 이 단체는 교토시의 ‘매력있는 지역 만들기’, ‘다양한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과 대학생이 지자체와 연계 협력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토에서 생활하는 대학생과 지역 상점(시장) 상인, 지역 어린이들까지 자기 지역의 문제를 공유하고 그 해결에 참여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이다. 이런 활동들은 지역문제 해결에 대한 충분한 의견수렴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주민들이 시 행정이나 제도에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다. 시 행정에 대한 일방적인 불만보다 건설적인 대안에 더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리옹의 학술상점(Boutique des sciences)도 매우 흥미롭다. 학술상점은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의뢰한 지역문제 중 일반 대중의 이해관계와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는 과제들을 선정해 리옹시와 그 지역 소재 대학의 대학원생, 연구자들이 함께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지역사회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선정된 과제들을 학술연구로 추진할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문제 토론회, 학술축제 등의 다양한 활동으로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도시행정에서 버스 노선이나 특정 시설의 유치‧설치를 두고 지역 주민들 간의 갈등과 반목이 생기기도 한다. 이는 지역서비스의 수혜자인 지역주민들이 의사결정 과정을 잘 모르거나 배제되기 때문이며 또한 충분한 논의의 시간을 갖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민과 연구자들이 함께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중소도시에서 청년의 유출이 이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일자리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할 일과 역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정과 가치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기업이 주는 일자리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다면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지방의 살길은 대기업 유치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기업은 수가 제한돼 있고, 본사 이전 등에는 상당한 기회비용과 경영상의 결단이 필요하다. 더 큰 문제는 이제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고용 없는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에만 의존하는 지역경제 살기기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학‧지역주민‧지방정부 상생하는 생태계 필요

MZ 세대들은 직장과 집의 거리가 가까운 직주근접을 넘어 직주일체(일종의 재택근무)를 선호한다고 한다. 종신고용이나 풀타임 직업보다 유연하고 가치 지향적인 일자리를 선호한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신노년층도 마찬가지다. 은퇴 이후에도 일하고 싶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는 파트타임을 선호한다. 기왕이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자리를 원한다. 비록 직장에서는 은퇴를 했지만 지역사회에서까지 은퇴를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배우고 기회를 모색한다. 현재 대학 정원의 빈 공간을 채우는 건 이런 신노년 세대들의 열정이다. 이제 대학들은 졸업 후 대학과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이 다시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일과 평생교육에 적극적인 성인학습자들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유럽과 북미의 여러 대학은 고령친화대학(Age-Friendly University: AFU)이라는 새로운 대학의 운영방식이자 정책을 통해 지역사회 고령자들에게 평생학습을 비롯한 다양한 복지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와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청년층을 위해서는 대학 캠퍼스 안에 학생들을 위한 주거공간과 기업의 연구, 실험공간까지 아우르는 ‘대학도시’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노년층을 위해서는 대학이 지닌 전문성과 유무형의 인프라를 활용 평생학습은 물론 ▲복지 ▲보건 ▲여가 ▲문화 ▲일자리 ▲스포츠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 지역소멸이나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답이 지역대학의 생존과 새로운 역할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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