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넷플릭스 '애마'로 본 韓 에로영화와 사전검열의 시대 [백세희의 컬처&로(LAW)]
- 영화의 사전검열과 등급분류제의 역사
'검열'이 곧 영화 서사였던 과거...이젠 '자본'이 대체

대립하는 것은 배우뿐만이 아니다. 은근한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감독과 달리, 영화사 대표는 대놓고 배우를 벗기고 젖가슴을 노출하는 장면을 넣는 데 혈안이 돼있다. 둘은 언성을 높이고 싸운다. 여기에 5공 정권의 서슬 퍼런 검열의 칼날까지 가세한다. 문화공보부(이하 ‘문공부’)는 말을 사랑한다는 ‘愛馬’(애마)가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제목의 변경을 강제한다. 이에 영화의 제목은 삼베의 원료인 마를 사랑하는 <‘愛麻’부인>으로 변경된다.
대부분 허구...검열 역사는 그대로 반영
대안 역사물이라는 장르가 으레 그렇듯이 작중 캐릭터와 그들의 언행은 대부분 허구이다. 하지만 <애마>는 <애마부인>이 겪었던 검열 과정을 비교적 잘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愛馬가 검열에 의해 愛麻로 바뀐 것을 반영했듯이 말이다.
당시 영화사는 제작 전 사전신고를 하고 제목과 시나리오 모두를 검열받아야만 했다. 문공부는 영화사의 제작신고서에 대해 “귀하가 1981. 10. 2. 제출한 <애마부인> 제작신고에 대하여는 그 대본 내용을 검토한바 영화법 시행령 제6조 제2항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통보하오니 전면 재검토하시기 바랍니다”라는 회신을 보낸다. 밑도 끝도 없는 ‘전면 재검토’라는 통보를 내린 것이다. 문제점으로는 ‘내용과 무관한 제명, 작품의 전개에 있어서 외설·퇴폐성이 짙어 성도덕이나 가정 윤리를 저해할 우려가 있음’이 지적됐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는 영화 검열이 버젓이 존재했다. 그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필자로서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떻게 이런 사전검열이 가능했던 걸까? 그리고 이 제도는 어떤 과정을 거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일까?
한국 영화가 탄생한 이래 ‘가위질’로 표현의 자유를 억누른 기간이 그렇지 않은 기간보다 훨씬 길다. 그 시작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 영화와 사전검열의 역사를 살펴보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영화 사전검열’의 역사
한국 영화는 일제강점기의 검열 속에서 시작했다. 영화에 대한 제도적인 검열은 1922년 「흥행장 및 흥행 취체 규칙」이 시작이다. 1940년에는 조선총독부 제령 제1호로 「조선영화령」을 발표해 영화 제작·배급엔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요(要)하는 방식으로 제국주의 선전 영화를 양산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이 「활동사진의 취체령」을 공포해 영화의 제작·배급·상영의 감독과 단속 권한을 미군정청 공보부로 이관해 사전검열을 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한국 영화는 자유를 찾지 못했다. 한국전쟁의 발발도 한몫했다.
1960년 4·19 혁명의 바람을 타고 영화 사전검열에 대한 폐지 논의가 이뤄졌지만 곧이어 일어난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흐지부지되고 만다. 군사 정권 초반부인 1962년 한국 최초의 영화 기본법인 「영화법」이 제정됐다. 이후 ‘시나리오에 대한 사전검열’과 ‘촬영을 마친 작품에 대한 삭제 및 상영금지’의 이중 제한 속에서도 한국 영화는 꾸준히 발전한다. 1984년에는 ‘검열’이라는 단어를 ‘심의’로 바꿨다. 이로써 형식적으로 영화에 대한 사전검열은 사라졌지만,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었다. 단어만 바뀌었을 뿐, ‘심의’와 ‘검열’의 의미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1987년에 이르러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시나리오’에 대한 사전심의 제도가 먼저 폐지된다. 시나리오 검열이 사라져 다소 숨통이 트였지만, 여전히 ‘필름’에 대한 검열은 남아있었다. 완성된 작품을 온전한 형태로 상영할 수 있는 권리는 여전히 보장돼 있지 못한 것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전검열 폐지에 대한 열망은 밀물처럼 몰려들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기에 이른다.
1996년 10월 4일 헌법재판소는 역사적인 위헌 결정을 내렸다. 영화는 상영 전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하며, 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는 상영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영화법」 제12조 제1, 2항과 그 심의 기준을 정한 제13조가 심판 대상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심판 대상 규정은 명백히 헌법 제21조 제1항이 금지한 사전검열제도에 해당하며, 공연윤리위원회는 검열기관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1996. 10. 4. 93헌가13, 91헌바10 (병합) 전원재판부].
이 결정에서 재판부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사전검열의 금지 원칙의 의미를 선언했는데, 이는 이후 다른 모든 종류의 심의의 위헌성을 판단하는 시금석이 된다. 영화의 검열에 대한 판단이 종국적으로 모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된 것이다.
다만 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모든 형태의 사전적인 규제를 위헌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유통단계에서 영상물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사전에 등급을 심사하는 것은 사전검열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 논리에서 탄생한 게 바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분류제도’이다.
초창기의 등급분류에는 ‘상영등급 분류보류’라는 등급이 있었다. 등급을 매길 수 없다는 이유로 상영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보류’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사전검열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헌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2001년 8월 30일 「영화진흥법」 제21조 제4항의 상영등급분류보류를 위헌이라 결정했다.
비디오물 등급분류도 2009년 11월 9일 법률 개정에 따라 ‘분류보류’를 폐지하고 ‘제한관람가 비디오물’ 등급을 신설했다. 이제 더 이상 ‘보류’ 등급은 없다. 이후 몇 번의 정비를 거쳐 현재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의한 ‘전체관람가’, ‘12세이상관람가’, ‘15세이상관람가’, ‘청소년관람불가’, ‘제한상영가’ 5등급제가 확립됐다.


새로운 시대와 영화 – 행정에서 자본으로
다시 <애마부인>으로 돌아오자. 영화가 만들어지던 1980년대 초반은 ‘검열’이라는 단어가 아직 ‘심의’로 바뀌지도 않은 시대였다. 눈 가리고 아웅조차 하지 않았던 사전검열의 전성기였다.
<애마>에서는 제작사가 고분고분 문공부의 지적에 따르고 나아가 제작사와 검열 당국 사이의 물밑 교섭까지 더해져 검열을 통과한다. 이는 픽션이다. 실제로 <애마부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시나리오 검열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는 현존하는 공문서로서는 확인할 방도가 없다. 당시의 권위주의적이었던 충무로 문화와 부패한 공직사회를 반영한 추측일 뿐이지만, 반론을 제기하는 이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애마부인>이 시나리오 검열을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글래머 주연 배우의 알몸이 노출된다는 사실에 이목이 집중된다. 영화는 별다른 소란 없이 필름 검열도 통과한다. 그 이후의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에로영화의 중흥기가 열린 것이다. 영화가 우여곡절을 거쳐 행정청의 검열 또는 심의를 통과했다는 사실은 영화의 주요한 홍보 도구가 됐다. 이러저러한 역경을 이겨낸 서사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지금 만들어지는 모든 영화는 등급을 부여받는다. 창작되는 순간 제한상영은 될지언정 대중을 만날 수는 있는 것이다. 행정 절차는 더는 영화의 서사가 될 수 없다. 대신 자본이 그 역할을 맡는다. 거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거액을 주고 지식재산권(IP)를 샀다는 소식, 제작비가 역대급이라는 소식, 매출이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소식이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아무래도 흥행의 칼자루는 행정에서 자본으로 옮겨간 것 같다.
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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