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포용금융이 경쟁력 될까”…정책과 평판 사이에서 속도 내는 은행들
- [금융이 펴는 사회 안전망]②
이익의 사회 공헌 넘어 ‘사회 환원’으로
정책이 방향을, 평판이 속도를 결정한다…“고신용자 역차별 논란도”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포용금융’이 은행의 수익 구조 다변화와 정책 대응, 평판 관리가 교차하는 핵심 전략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과거 은행권이 내놓는 포용금융 상품의 대부분은 단순한 ‘서민금융대출’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금융소외계층의 자립을 돕고 이들을 장기 고객으로 확보하는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은행이 복합 금융 플랫폼으로 발전하기 위해 금융 소비자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포용금융 상품으로는 저신용자와 청년층, 소상공인을 위한 대출 지원 상품이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지난 7월 ‘헬프업 앤(&) 밸류업 상생금융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대출 금리가 10% 이상인 가계 신용대출 소비자의 금리를 만기까지 9.8%로 낮춘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 자체 분석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로 4만2000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같은 달 1일 이후 새로 취급된 새희망홀씨대출 금리도 1%포인트(p)씩 하향 조정했다. 예를 들어 A씨가 받은 대출의 산출 금리가 7%라면 실제로는 6%만 적용한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3만3000명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나은행은 지난 8월 ‘폐업(예정) 소상공인 재기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폐업 예정이거나 폐업한 지 3년 이내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세무·사업정리 컨설팅, 취업교육, 건강검진 등을 지원하는 재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전문 컨설턴트가 사업장 현장을 방문해 폐업 절차와 일정, 사업 자산 정리, 재기지원 제도 연계 등을 종합적으로 안내한다. 소상공인들이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심리적 부담을 완화하고, 폐업 이후 다시 원활하게 경제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폐업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은 소상공인 가운데 취업 희망자 120명을 뽑아 온·오프라인 취업교육, 1대 1 맞춤형 진로상담, 취업처 발굴·매칭 서비스도 제공한다. 하나은행 측은 맞춤형 포용금융을 확대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BNK부산은행은 지난 9월 소상공인 경영 안정을 돕기 위해 ‘BNK 상생드림대출’을 출시했다. 6개월 이상 사업을 지속한 개인사업자에게 최대 3000만원을 빌려준다. 중도상환 수수료는 전액 면제되는 상품으로, 총 1000억원을 배정했다. 부산은행은 또 캐시노트를 활용한 인공지능(AI) 기반 사업진단 보고서를 제공해 소상공인 스스로 경영 상태를 점검하고 개선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책이 방향을, 평판이 속도를 결정한다
은행들이 일제히 포용금융을 강화하는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정부 정책의 방향성 변화가 꼽힌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9일 “초우량 고객에게는 (은행이) 초저금리로 돈을 빌려주는데, 0.1%p만이라도 부담을 더 지워 금융기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15.9%보다 좀 더 싸게 빌려주면 안 되나”라고 했다. 지난 9월에는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국내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금융권이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으로 금융 대전환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정부 정책의 방향이 사실상 어디를 가리키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발언이다.
실제 정부는 동반성장지수 평가 대상을 은행까지 확대해 금융소외층을 지원하는 정책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새 정부 경제성장전략’에서 동반성장지수를 금융 분야까지 확장한 중소기업 상생금융지수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동반성장지수 평가 대상은 현재 239개 대·중견기업과 134개 공공기관인데, 내년 상반기에는 기업·국민·하나·신한·우리·농협은행 등 중소기업 대출 규모 상위 은행부터 시작해 평가 대상 은행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서민금융안정기금은 새 정부 인수위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위원회가 포용금융 확대 방안의 하나로 제시한 정책이다. 정부와 금융권이 함께 기금을 조성해 정책서민금융 공급을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우리금융그룹이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성장펀드에 10조원 투자를 약속하는 등 생산적 금융 전환과 포용금융 확대를 위해 향후 5년간 총 80조원을 투입하는 ‘우리금융 미래동반성장 프로젝트’를 공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많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구체적인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은 곳은 우리금융 한 곳이지만, 다른 시중은행과 인터넷은행들도 가만히 있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투자 행렬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은행권이 포용금융을 확대하는 또 다른 배경은 ‘평판 관리’를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도 있다. 은행의 포용금융은 이익을 내기 위한 상품이 아니라, 은행의 신뢰도를 높이고 이미지를 개선하는 방패 역할에 가깝다는 것이다. 국내 시중은행들은 이른바 ‘이자 장사’로 손쉽게 매년 수조원에 달하는 이익을 내고, CEO와 은행원들은 고연봉을 챙겨간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런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은행들이 단순한 사회 ‘공헌’을 넘어 사회 ‘환원’을 위한 움직임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 압박에 떠밀려 무리하게 포용금융을 확대할 경우, 그 부작용이 오히려 서민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만약 은행이 저신용자를 우대하며 고신용자에게 금리를 올려받으면, 소득이 적어도 성실하게 경제활동을 이어온 ‘저소득 고신용자’가 애꿎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고신용자(신용점수 840점 이상)의 대출금리를 0.1%p 인상하면 고신용자는 1인당 연간 11만원씩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이자를 0.25%p 올리면 1인당 연 27만6000원가량 부담이 커진다. 올 2분기 기준 고신용자 차주 수는 1301만명이었다. 신용도가 높지만 소득이 중·저 수준인 차주는 각각 202만2000명, 424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고신용자의 절반에 해당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포용·상생금융이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무리하게 진행할 경우 은행의 건전성이 나빠지거나 성실하게 대출을 상환해 신용도를 높인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한국인 발견하면 즉각 구조”…‘범죄단지와의 전쟁’ 선포(종합)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클라라, 6년 만에 파경…남편과 무슨 일?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한국인 발견하면 즉각 구조”…‘범죄단지와의 전쟁’ 선포(종합)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연금 고갈 우려'…전통자산 한계에 VC에 눈 돌리는 유럽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美 공식 의료 인정’ 로킷헬스케어 급등...외국인 투심 몰린 휴온스도 강세[바이오맥짚기]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